[이지수칼럼] 옆집에 여배우가 산다!
“지수씨, 어제 방송 잘 봤어요.”

“아, 고마워요. 언니들.”

“근데 지수씨는 방송 보다 실물이 나아.”

“하하하. 언니, 욕이야 칭찬이야?”

“에고. 예쁘단 뜻이지!”

“깔깔깔. 그 말이 듣고 싶었어요!”

필자가 방송하던 때 지인들과 나눈 이야기다. 방송했다고 글을 쓰니 왠지 무언가 있어(?) 보일까 겁난다. 왜냐하면 여기 저기 몇 군데 짧게 나온 게 전부기 때문이다. 게다가 필자 역할은 아주 작았고 소위 남들이 알아주는 방송이 아닌 일부러 찾아야 볼 수 있는 케이블 방송이었다. 특히 주부들이 전혀 볼 필요가 없는 취업준비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이었다. 그런데도 필자를 위해 보아 준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대화 끝이 늘 한결 같다는 것이다.

“연예인들은 어쩜 그렇게 얼굴도 작고 예쁜지.”

“화면에 저렇게 예쁘면 실물은 얼마나 예쁠까요?”

“지수씨 옆집에 사는 여배우, 나이가 들어도 얼마나 예뻐요!”

“역시 연예인은 연예인이야! 다르긴 달라.”

필자 옆집에는 여배우가 산다. 지금은 나이가 들었지만 한때 최고의 여배우였다. 꾸준히 드라마에 출연하기에 누구나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다. 이 여배우와 십 년 넘게 이웃으로 살았다. 그렇다보니 자주 보고 남들보다 많이 알게 된다. 그래선지 지인들이 필자에게 여배우 근황을 곧잘 물어보는 것 같다.

여배우는 이웃들과 스스럼없이 잘 지낸다. 오랫동안 이웃으로 살아서 한 때 최고의 스타 배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냥 이웃이다. 어쩌다 만나면 안부를 묻곤 하는데 딱히 서로 공감할 부분은 적은 편이다. 일반인 필자와 여배우가 짧게 나누는 이야기는 대략 이 정도다.

“요즘 드라마 잘 보고 있어요. 아주 재밌어요.”

“호호호. 늘 하는 일인걸요.”

여배우는 ‘반려견’사랑이 지극하다. 그래서 어떨 때는 사람보다 반려견에 대한 안부를 우선 묻는다. 자신의 반려견을 무척 아끼다보니 이웃집 반려견까지 챙기는 것이다. 또, 이웃 반려견이 아프거나 죽었을 때는 더한다. 마치 ‘자식’을 말하듯 슬퍼해 준다.

“요즘 실버(우리 집 강아지)가 안보여요. 추워서 안에 있어 그런지.”

“아! 아파서… 떠났어요.”

“에고, 어떡해요…”

“한동안 많이 힘들었는데. 이제 좀 괜찮아요.”

“많이 힘들었겠다. 우리 애(여배우 강아지)랑 잘 놀았는데.”

이런 대화를 할 때면 여배우는 역시 남다른 것을 느낀다. 흔히들 말하는 얼굴생김새가 예뻐 남보다 뛰어나다는 게 아니다. 상대방 말에 금방 감정이입이 되어 공감하는 것을 말한다. 한마디로 ‘반응하는 능력’이 탁월한 것이다. 그래서 훌륭한 연기를 해내는 것 같다.

여배우 : “집사님! 집사님!”

집사님 : “네!”

여배우 : “집사님, 이 것 좀 도와주세요!”

집사님 : “네. 제가 그쪽으로 갈게요.”

필자가 정원 정리를 하고 있을 때 일이다. 여배우의 집일을 도와주는 분이 새로 온 것 같았다. 바로 옆집이라 사람이 바뀌면 금방 알아보는 편이다. 이번엔 여배우가 그 분을 부를 때 마다 “집사님! 집사님!”하는 것이다. 아마도 교회 다니는 분인 것 같았다.

하루는 여배우 집, 그 집사님과 마주쳤다.

“집사님, 안녕하세요! 어느 교회 다니세요? 저는 00교회 집사예요!”

“네? 아… 저… 교회 안다니고 집사도 아니에요!”

“에고. 여배우가 집사님이라고 불러서 제가 오해했어요.”

“호호호. ‘집안 일 도우는 사람’이라고 집사님이라고 부르네요.”

“네? 아! 호호호.”

“아뿔사!” 얼마나 미안하던지. 국어사전을 찾아보았다. 집사는 ‘주인 가까이 있으면서 그 집일을 맡아보는 사람’이라고 나온다. 또 다른 의미로 ‘교회에서 봉사하는 교회 직분의 하나’이다. 필자가 후자이다 보니 호칭만 듣고 그렇게 단정 지은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재미있고 당황했던 일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누구나 자신만의 생각 프레임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생각 프레임 속에서 보이는 대로 판단하는 일이 많다. 필자가 ‘집사’를 ‘교회 집사’로 본 것과 지인들이 여배우에 대해 “이럴 것이다!” 묻는 것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여배우는 TV 드라마 속 인물을 통해 오해받기도 한다.

옆집 여배우는 이웃으로 볼 때 별반 다르지 않다. 평소 민낯으로 산책하고, 음식도 나눠 먹는다. 집에서 촬영할 때는 동네 시끄럽게 해서 미안하다며 와인을 돌리기도 하고 그게 전부다. 다만 그녀는 무대에 ‘오르는 사람’이고 우리는 ‘무대를 보는 사람’일 뿐이다.

사실 여배우가 집에서 촬영할 때는 불편한 게 제법 많다. 특히 밤늦게까지 대낮보다 밝은 조명을 비출 때다. 이 글을 쓰는 오늘 밤이 그렇다. 어서 마무리 지어야겠다. 필자 옆집에 여배우가 산다.

필자도 이제 여배우처럼 “아줌마!”가 아닌 “집사님!”이라고 불러야겠다. 호칭 하나로 말의 온도가 조금은 오르는 것 같다.

“집사님!” Ⓒ이지수20190125
[이지수칼럼] 옆집에 여배우가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