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기 3  - 인간은 씨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
매달기 3


대성리 북한강가 관목(자잘한 나무들)에 열매가 열렸다.
아기 머리통만한 갈색 열매가 열 댓 개 열렸다.
나무들은 보통 꽃을 피운다.
꽃이 지고 나면 씨를 맺는 나무가 있는가 하면
과일이 달리는 나무가 있다.
사과 배 감 포도 자두 복숭아 등등
과일이 열리는 나무를 과수라 부른다.
그냥 씨만 열리는 나무들보다 이런 과일이 열리는 나무를
누구나 좋아하고 가꾸고 개량한다.
작가는 과일이 열리지 않는 강가의 이름 모를 관목에
사기를 쳐도 너무 심하게 사기를 쳤다.
저렇게 큰 과일이 달릴 수가 없다.

과일은 무엇인가?
나무가 씨앗을 퍼트리기 위한 작전의 하나이다.
저 나무에는 맛있는 과일이 달린다.
그걸 안 인간은 그 나무를 정성 들여 가꾼다.
대부분의 과수는 병과 해충에 약하다.
그래서 맛있는 과일을 먹으려면 사람들은
정성으로 약을 치고 가꾸고 과일의 크기와 당도와
저장성과 새로운 맛과 향을 위하여 종자개량을 한다.
과수는 과일을 만들면서 과일 속의 씨앗으로 번식하기보다는
줄기를 접붙이기 함으로써 번식한다.
아무튼 과수의 입장에서 보면 과일을 인간에게 제공함으로써
과수 자신의 안전과 번영을 약속 받은 것이다.

모든 생물은 태어나고 자라고 죽는다.
탄생과 죽음 그 사이에 생명이 있다.
그 생명의 시간에 그 생물이 하는 일과
그 일의 사회적 공간적 시간적 역할로 인하여
그 생물의 가치가 판정되는 현실이다.
사과나무는 사는 동안 맛있는 사과를 만들어냄으로써
어느 시인은 사는 동안 감명 깊은 시를 지어냄으로써
어느 여인은 살림을 키우고 자식을 훌륭하게 키움으로써
어느 사람은 전과 28범으로 남의 물건이나 훔침으로써
생명이 판정되는 현실이다.

돼지풀이란 잡초가 있다. 북한에서는 누더기풀이라고 한다.
이 풀은 인간에게 해만 끼칠 뿐 도무지 쓸모가 없다.
알레르기의 주범이다. 짐승이 먹지도 않는다.
번식은 무지무지 잘하여 온통 우리나라를 덮고 있다.
그 돼지풀이 반항을 했다 치자.
나는 열심히 훌륭하게 살려고 하는데 내 환경이 그렇다.
그건 내 잘못이 아니다 라고 한다면 우리는 뭐라고 할까?

배나무의 원종은 돌배나무이다.
돌배나무는 호두알보다 작은 돌배를 매단다.
돌배씨를 심어야 돌배가 나온다.
신고배는 시원하고 달콤하고 과육이 연하다.
그 신고배 씨를 심으면 신고배나무가 되지 않는다.
돌배보다 조금 나은 얼치기 배가 열린다.
과수원 주인들은 그래서 접을 붙인다.
돌배나무에 신고배 줄기를 접 붙이면 신고배가 된다.

씨는 생명의 근원이다.
씨 속에는 그 생명의 모든 비밀이 들어있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지 않다라고 부르짖은 혁명가를 안다.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다.
인간은 그 의지가 만물을 지배한다고 할 정도로 중요하다.
비록 가난한 집안에 태어났다 해도 자라면서 얼마든지
황후장상의 재목으로 클 수가 있다.
재벌 2세로 태어나나 해도 다 잘 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돌배로 태어났다 해도 신고배 줄기를 접붙이면 신고가 열린다.
인간은 씨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
씨 한탄만을 할 것이 아니다.
피나는 노력, 그것이 신고배 줄기를 접붙이는 슬기이다.

나는 돌배에요. 돌배로 태어났어요, 돌배밖에 열 수 없어요.
이런 말만 하는 철부지를 누가 좋아하고 임무를 맡기고 키워주랴.
강남의 귤이 강북으로 가면 탱자가 된다는 옛말을 안다.
자본주의 민주주의의 장점의 하나는 선택의 자유가 있다는 것이고
맨 처음은 기회가 동일하게 주어진다는 것이다.
나는 강가에서 저 작품의 작가를 우러러 보았다.
열매도 안 열리는 관목이지만, 돌배가 달리는 돌배나무지만
작가는 아이 머리통만한 젖과 꿀이 흐르는 과일을 꿈꾸고 있다.
더 이상 씨앗 타령을 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