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이 시끄럽고, 빈 수레가 요란하다. 물이 얕으면 자갈조차 소리를 내며 떠내려간다. 세상이 시끄럽고 요란하다. 서로 자기 주장만 내세우고, 자기만 옳다 한다. 너와 나는 어디서나 마주보고, 저쪽에서 보면 내가 네가 된다는 사실을 모른다.

석가는 노자의 무언지교(無言之敎)를 몸소 실천한 성인이다. 경전보다는 마음으로 가르치고, 말보다는 자신의 삶으로 깨우쳤다. 석가는 참으로 큰 스승이다. 송나라 스님 도언은 석가 이후 고승들의 법어를 기록한 ≪전등록≫에서 “석가는 말이나 글이 아닌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제자들을 가르쳤다”고 적었다. 불교의 진수는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면서 고통받는 중생에게 ‘마음의 길’을 터줬다. 석가는 제자들의 물음을 늘 칭찬했고, 자신의 가르침을 강요하지 않았다.

송나라 스승 보제의 ≪오등회원≫에는 석가가 이심전심으로 제자들을 가르치는 장면이 나온다. 어느 날 석가가 영취산에 모인 제자들에게 연꽃 한 송이를 집어들고 줄기를 살짝 비틀어 보였다. 제자들은 스승의 그 뜻을 헤아리지 못했다. 오직 가섭만이 석가의 뜻을 깨닫고 미소를 지었다. 말이 아닌 마음으로 통한다는 염화미소(拈花微笑)는 이 영취산 설법에서 나왔다. 석가가 연꽃을 집어드니(拈華), 제자 가섭이 그 뜻을 헤아려 미소를 지었다(微笑)는 의미다.

연꽃은 탁한 연못에서 피어난다. 하지만 더없이 청아하고 맑고 깨끗하다. 속세도 탁하다. 흐리고 탐심이 가득하다. 하지만 스스로 깨달으면 탁한 연못에서 피어나는 연꽃처럼 중생도 맑고 깨끗하게 거듭난다. 그 깊은 뜻을 석가는 마음으로 전했고, 가섭은 오롯이 마음으로 받았다. 불립문자 교외별전(不立文字 敎外別傳), 오묘한 진리는 말이나 경전보다 이심전심으로 전해진다.

참고로 사성제(四聖諦)는 불교의 기본 교리다. 사제(四諦)로도 불리는 이 교리는 고(苦)·집(集)·멸(滅)·도(道) 네 진리가 골자다. 고(苦)의 진리(고제)는 고통으로 가득찬 현실을 바로 보라는 거고, 집(集)의 진리(집제)는 탐심 욕망 이기심 등 고통이 생기는 원인을 바로 보라는 거다. 멸(滅)의 진리(멸제)는 온갖 번뇌를 벗고 해탈을 얻으라는 가르침이다. 멸제는 불교가 중생에게 주는 희망이자 구원이다. 도(道)의 진리(도제)는 해탈에 이르는 구체적 수양이다. 바르게 보고,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말하고, 바르게 행동하고, 바르게 목숨을 유지하고, 바르게 노력하고, 바른 신념을 갖고, 바르게 마음을 안정시키는 팔정도(八正道)가 그것이다.

큰 것은 담담하다. 바다는 고요하고, 태산은 늘 그 자리다. 큰 가르침은 말이 적다. 큰 부모는 자식을 윽박하지 않는다. 말로 깨우치기보다 스스로 모범을 보인다. 그런 부모 밑에서 자란 자식은 세상을 살면서 어긋남이 적다. 행동으로 깨우치는 상사는 어디서나 대접을 받는다. 가정이든 직장이든, 사회든 국가든 이치는 같다. 작은 것은 번잡하다. 따지고, 훈계하고, 목청을 높인다. 권위는 위엄이 세운다고 착각한다. 속이 비어서 시끄러운 줄 모르고, 아는 게 많아서라고 오해한다. 짐이 가벼워서 덜컹대는 줄 모르고 많이 실은 때문이라고 오판한다. 그러니 세상만사 요지경이다.

신동열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바람난 고사성어](5) 이심전심(以心傳心)-진심은 마음으로 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