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호의 그리스신화] 에로스와 프시케

나폴레옹이 러시아원정 때 있었던 일입니다. 러시아원정은 나폴레옹과 프랑스군이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고난의 장정이었습니다. 러시아군의 기습을 걱정한 나폴레옹은 병사들에게 밤에 보초를 제대로 서지 않으면 총살시키겠다고 경고합니다. 어느 늦은 밤 나폴레옹은 병사들의 막사를 돌아보며 군대를 점검했습니다. 모든 병사들이 지치고 피곤한 상태에서 눈을 부릎뜨고 보초를 서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어린 병사가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잠이 든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세상 모르고 한 참을 잔 병사는 잠을 깼고, 누군가 자기가 보초를 서야하는 자리에서 자기 총을 들고 보초를 서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병사는 누가 자기 보초를 대신 서는지 궁금했고, 그가 바로 나폴레옹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린 병사는 보초를 서다가 잠이 들었으니 이제 꼼짝없이 죽은 목숨이라고 생각하고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못하고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병사가 잠이 깬 것을 본 나폴레옹은 병사에게 아무말 없이 총을 건네주고 막사로 돌아갑니다. 다음 날 전쟁에서 많은 프랑스병사들이 죽었습니다. 병사들의 시신을 둘러보던 나폴레옹은 어젯밤 보초를 서다가 잠이 들었던 그 어린 병사의 시신을 보게 되었습니다. 어린 병사는 조국 프랑스와 나폴레옹을 위해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한 것입니다.

사람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한다면 대부분 사람들은 ‘신뢰’라고 말합니다. 신뢰가 있어야 친구도 많아지고, 성공할 수 있다고 합니다. ‘신뢰’의 사전적 의미는 ‘굳게 믿고 의지함’입니다. ‘신뢰’는 사람들이 ‘사랑’ 만큼이나 좋아하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타인에게 신뢰를 얻고 싶고, 신뢰하는 사람과 깊이 있는 관계를 맺기 원합니다. 또 ‘신뢰’는 자기 목숨을 바꿀 수 있을 만큼 사람관계에서 위력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반대로 ‘신뢰’를 저버린 사람은 다시는 상종하지 않으려 하고, 심한 경우 복수하기도 합니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남녀의 사랑이야기 중 가장 안타까운 이야기를 뽑으라면 사랑의 신 에로스와 프시케의 사랑이라고 하겠습니다. 어느 왕국에 공주 세 자매가 있었습니다. 세 공주 모두 아름다운 여인이었지만, 그 중에서 막내 프시케의 미모가 가장 뛰어났습니다. 사람들은 프시케를 한 번 보기만 해도 그 아름다움에 넋을 놓을 정도로 예뻤습니다. 프시케의 미모에 정신을 놔버린 사람들은 급기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 신전을 찾지 않게 됩니다. 하늘에서 인간 세상을 내려다보던 아프로디테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프시케를 혼내 주기로 합니다. 아프로디테는 아들인 사랑의 신 에로스에게 금 화살을 프시케의 가슴에 쏴서 아주 못생기고 형편없는 남자를 평생 사랑하게 하라고 시킵니다. 그날 밤 사랑의 신 에로스는 잠이 든 프시케의 방으로가 금 화살을 쏘려다가 너무나 아름다운 프시케에 반해 실수로 금 화살에 찔리고 말았습니다. 에로스의 화살통에는 두 종류의 화살이 있는데 금 화살에 맞으면 처음 만난 이성을 평생 동안 열렬히 사랑하게 됩니다. 은 화살은 반대로 처음 만난 이성을 평생 싫어하게 됩니다. 금화살에 긁힌 에로스는 영원히 프시케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프시케는 아프로디테의 저주로 어떤 남자에게서도 청혼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프시케를 걱정하는 왕과 왕비는 신전에 찾아가 프시케의 운명에 대한 신탁을 청합니다. 신탁의 내용은 ‘프시케는 절대로 인간과 결혼하지 못한다’는 것과 ‘올림푸스 산꼭대기에 가면 신도 인간도 대적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존재가 있으니 그 곳으로 보내라’는 것이었습니다. 더 이상 아무런 희망이 없는 프시케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산꼭대기에 올라갑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아름다운 궁전과 시종들이 프시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궁전의 여주인이 된 프시케는 왕국의 생활보다 더 행복함을 느끼게 됩니다. 밤이 되면 찾아와 사랑을 나누는 남편과의 시간이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친절하고 품위있는 행동과 감미로운 목소리와 진심으로 자기를 사랑하는 남편이 너무 좋았습니다. 단 한 가지 남편이 나타나면 모든 불을 끄고 암흑 속에서 남편의 부드러운 손길과 목소리만 들을 수 있지만, 사랑에 빠진 프시케는 불만이나 의심을 품지 않았습니다. 모든 불을 끄고 밤에만 만나자는 것은 사랑하는 남편의 단 한 가지 간곡한 부탁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밤 프시케는 남편에게 자기가 살던 왕국에서 부모님과 언니들을 만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한참을 고민하던 남편은 ‘가족들을 이곳으로 초대해서 만나도록 하라’라고 말합니다. 궁전에 와 융숭한 대접을 받고 행복해 보이는 동생에게 샘이 난 언니들은 남편에 대한 의심을 불어 넣습니다. “괴물이 아니라면 불을 끄고 암흑에서 너를 만날 이유가 없어. 언젠가 너를 잡아먹을지 모르니 남편이 잠을 잘 때 촛불로 비춰보고, 괴물이면 칼로 목을 베.”라고 말했습니다. 프시케는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한 번 확인해 보고 싶은 의심이 들었습니다. 그날도 남편이 깊은 잠에 빠진 것을 확인한 프시케는 미리 준비해 둔 촛불과 칼을 들고 남편의 얼굴을 비춥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불빛으로 남편의 얼굴을 확인한 프시케는 너무 놀라 촛대를 놓칠 뻔 합니다. 남편은 다름아닌 아름다운 청년으로 성장한 사랑의 신 에로스였습니다. 감격도 잠깐, 너무 놀란 나머지 촛농 한 방울이 벗은 에로스의 어깨로 떨어집니다. 잠에서 깬 에로스는 촛불과 칼을 든 프시케를 보고는 분노와 슬픔이 가득한 얼굴로 하늘로 날아가 버립니다. 프시케는 한 순간의 의심으로 남편을 믿지 못하고 언니들의 말에 따른 자신을 후회했지만 이미 때 늦은 후회였습니다.

의심하지 마라. 의심은 상대방을 절망하게 만든다

신뢰를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사람을 가장 실망시키는 행위는 상대방을 의심하는 것입니다. 의심을 받는 것은 자기 본질에 대한 거부감을 비춰지기 때문입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 가운데 신뢰가 생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진정성을 가지고 나를 대하는 사람, 솔직한 사람, 말과 행동에 일관성이 있는 사람에 대해 우리는 신뢰를 가기게 됩니다. 우리는 사회 생활을 하며 상대방의 생활을 속속들이 알지 못하지만 그 사람이 나와의 관계에서 보여주는 몇 가지 모습을 통해 신뢰하게 되는 것입니다. 가족관계가 어떤지, 학교 다닐 때 어떤 생활을 했는지, 개인적인 취향이 무엇인지 자세히 모르지만 우리는 상대방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상대방에 대해 우리가 모르는 사실은 궁금할 뿐 의심을 할 사항은 아닙니다.

일관성 없는 사람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

우리가 사람을 신뢰하는 이유를 파고들어 보면 상대방이 예측가능한 행동을 하기 때문입니다. 신뢰가는 사람의 특징은 일관된 생각과 행동을 하기 때문에 예측이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이럴 땐 이렇게, 저럴 땐 저렇게, 이랬다 저랬다 행동하는 사람을 신뢰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불안합니다. 프시케가 에로스를 신뢰하게 된 이유도 이런 이유가 있었습니다. 캄캄한 밤에 나타나 항상 감미로운 목소리와 손길로 자기를 사랑해 준 에로스의 일관성이 깊은 신뢰를 준 것입니다. 프시케도 에로스를 의심하지 않고 일관된 사랑을 했습니다. 한순간 언니들의 말에 현혹되어 절대로 켜지 않기로 했던 촛불을 켜 남편의 얼굴을 보려고 한 큰 실수를 한 것입니다. 일관성 없이 약속을 지키지 않은 프시케의 행동에 에로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녀를 떠나 버린 것입니다.

잘못된 정보를 들을 바에는 아예 귀를 닫아라

제3자가 나와 상대의 관계를 판단하게 만드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프시케는 숲 속의 궁전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친절한 하인들의 주인으로 행복하게 살면서, 밤마다 자기만을 사랑해 주는 감미로운 남편과의 밤을 보냈습니다. 사랑하는 남녀 사이에 캄캄한 어두움은 결코 불편하거나 괴로운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질투심에 사로잡힌 언니들이 보기에 프시케의 숲 속 궁전의 생활은 비정상으로 보였습니다. 특히 보이는 것만을 믿는 언니들에게 남편의 얼굴을 보지 못한다는 것은 의심이 가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언니들은 프시케의 경험과 느낌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자기들 생각데로 의혹을 말한 것입니다. 마음여린 프시케는 듣지 않아도 될 언니들의 판단에 따랐기 때문에 문제가 된 것입니다. 상대방과 관계에서 타인이 개입하여 의견을 줄 때,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제3자의 의견이 참조할만한가에 대해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 판단을 할 수 있는 경험이 있는지? 그런 판단을 내릴 경험을 가지고 있는가?

아직도 신뢰한다면 포기하지 마라

그러면 에로스와 프시케는 영원히 헤어졌을까요? 프시케는 자기의 의심으로 에로스와 헤어진 것 때문에 실성한 사람이 되어 에로스를 찾아 헤맵니다. 남편을 찾아 헤매던 프시케는 남편의 엄마인 아프로디테를 찾아가 남편을 만나게 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합니다. 평소 프시케를 미워했던 아프로디테는 프시케가 도저히 할 수 없는 과제를 줍니다. 프시케는 목숨을 걸고 과제를 하나하나 해결해 가지만 결국 그녀는 목숨을 잃게 됩니다. 하늘에서 프시케를 안타깝게 바라보던 에로스는 땅으로 내려와 목숨을 잃은 그녀를 제우스에게 데리고 갑니다. 둘의 사랑을 알고 있는 제우스는 프시케에게 신의 생명을 불어 넣어 주어 에로스와 영원히 행복한 부부로 살 수 있게 해 줍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한순간의 실수로 신뢰를 소중한 가치로 생각하는 사람에게 실망과 상처를 안겨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신뢰를 잃었더라도 다시 최선의 노력과 열정을 보여주어 상대의 마음을 돌려 놓을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타인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대부분의 사람은 관심도 가지지 않고 파악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상대방이 신뢰라는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기만 한다면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JUNG JIN HO

정진호_IGM 세계경영연구원 이사, <일개미의 반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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