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아가는데 지켜야 할 것들이 많다. 그 가운데 하나는 분수이다. 흔히 분수에 맞지 않다는 말을 한다. 또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고, 분수에 맞게 살아간다면, 그는 누구에게 눈살 찌푸리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종종 분수를 모르고 도에 넘치게 살아가다가 탈이 생긴다.

나는 지금까지 인생을 살면서 크게 모험을 해 보지를 않았다. 아마도 모험심이 없는 성격 탓이기도 하다. 그러나 주어진 여건에서 그럭저럭 순응하면서, 현재 처한 환경을 그래도 잘 적응을 하고 살아가는 타입이다. 때로는 다른 사람과 비교를 할 때는 속상하기도 하고, 나는 왜 이것 밖에 안 되나 하고 볼멘소리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보통은 잘 지내는 편이다.

결혼을 하고 30년 세월이 흘렀지만, 내 집이 없어 이사를 자주할 때나, 자동차를 타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승합차만 탔다. 때로는 호텔이나 근사한 곳에 가노라면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을 때는 속상하기도 한다. 승합차를 한 대는 10년 탔고, 지금 타는 차는 8년째 탄다. 때로는 궁시렁거리지만 내 형편이 이것밖에 안되니 어찌하랴 하면서 넘어간다.

그렇다고, 나는 될 대로 되라는 주의도 아니다. 체념하고 살아가는 자도 아니다. 다만 내가 최선을 다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데도 환경이 이것밖에 안되면 어찌하랴 하는 것이다. 내가 내 형편을 잘 알기에 분수에 벗어나는, 모험을 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이런 나에게 선비의 글을 읽다가 마음으로 공감하기 한 표를 찍어주고 싶은 사람을 만났다. 그는 순암(順庵) 안정복(安鼎福)(1712년-1791)이다. 그는 자신의 집을 짓고 분수에 맞게 살아가야 한다는 뜻으로 당호를 분의당(分宜堂)이라고 지었다. 우선 그의 글을 보자.

“내가 선산 아래에다 높은 기둥 셋을 세우고 앞뒤로 여덟 칸의 집을 지었는데, 동북쪽 두메산골 백성들 집이 대개 이러하다. 비록 꾸밈새가 없고 누추한 것 같으니 쓰임새만은 매우 넓어 내 분수에 맞다. 이 때문에 편액을 분의라고 하고, 그 뜻을 여덟 가지로 넓히니, 책 읽기[讀書],밭 갈기[耕田],나무하기[採山],낚시 하기[釣水],약초 재배[種藥],채마밭 가꾸기[蒔圃],거친 밥 먹기[飯疏],베옷 입기[[衣布]로서 그 모두가 내 분수에 맞는 일이고 또 내가 즐기는 일들이다“

위 글은 순암 안정복의 분의당팔영(分宜堂八詠)의 서문이다. 분의당팔영은 여덟 가지를 분수에 맞게 살아가는 일상의 모습이다.『나 홀로 즐기는 삶』인용. 그중 책 읽기에 관한 시를 보자.“이 고요한 띳집을 짓고(築此茅堂靜)/그 속에 만권 서책 쌓아 두었지(中藏萬卷書)/책 보며 연구하는 날 언제라던가 (硏窮何日是)/객 떠나고 비바람 불 때라네(客散風雨餘).(순암선생 문집 1권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남을 의식하며 살아간다. 그러다보니 보여주기 식 삶을 살아가는 자도 있다. 자기 형편은 그렇지 않는데, 보여 주고 싶어서 분수에 맞지 않게 크게, 넓게, 비싸게 준비하려고 한다. 그러다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으면 그때 가서 두 손을 드는 경우도 있다. 보여주기 식 문화는 우리나라의 특이한 문화적 배경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과하거나 무리하면 결국에는 탈이 난다.

순암 안정복의 여덟 가지 분수에 맞게 살아가는 일상을 통해 지금 나를 돌아본다. 나에게 여덟 가지 분의는 무엇일까? 책 읽기,글쓰기, 본업에 충실하기, 소탈하게 살아가기, 음악듣기, 등 이다. 가끔 주변의 동료들이 취미삼아 즐기는 것들을 듣는다. 그런데 내 형편에 할 수 없는 것들은 아예 생각조차 안 한다. 왜, 아직은 그런 형편이 안 되는 서민에 불과하니 그렇다. 뱁새가 황새를 쫒아가는 형국이 되면 안 되기에, 내 형편에 맞게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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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의당팔영(分宜堂八詠)을 들어보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