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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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고학년 때다. 교실 바닥 청소하다 싸움이 벌어졌다. 내가 일방적으로 맞은 폭행이었다. 수업이 모두 끝나고 책걸상을 한쪽으로 밀치고 마루를 물걸레질할 때 우리는 모두 오른쪽부터 병렬로 늘어서서 닦아나갔다. 전학 온 아이 혼자만 반대쪽인 왼쪽부터 닦아나갔다. 무릎을 꿇어 엉덩이를 들어 걸레를 힘껏 밀고 가다 중간에서 우리 둘은 머리를 맞부딪쳐 뒤로 나자빠졌다. 몸을 먼저 일으킨 그 아이가 내 얼굴을 주먹으로 힘껏 치자 코피가 터졌다. 나도 팔을 뻗어 쳤었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아이들 싸움은 코피 터진 쪽이 바로 진다. 싸움은 그렇게 싱겁게 끝났다.

콧구멍을 종이로 틀어막고 집에 오자 어머니가 놀랐다. 집에 막 돌아온 아버지가 코피 묻은 종이를 빼내라고 하고 물었다. 아버지 질문은 집요했다. “그 애는 너희와 다르게 왜 왼쪽부터 닦았느냐. 그렇게 한 이유를 들어봤느냐. 너를 왜 때렸다고 하더냐? 너희는 왜 오른쪽부터 닦느냐.” 한 마디도 답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네가 잘못한 거다라고 판정하면서 그 애 집에 찾아가서 사과하고 물어보고 오라 했다.

집에 없어 만나지 못하고 돌아온 내게 아버지는 네가 아는 게 다 맞는 게 아닐 수도 있다. 그 아이가 맞을 수도 있다. 네가 맞다는 걸 증명해 보이자면 먼저 까닭을 물어보는 게 우선이다라고 했다.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라며 그 아이가 왼손잡이일 수도 있다. 그래서 편한 왼쪽부터 닦아나갔을 수도 있다. 우리나라 사람 10%는 왼손잡이다라며 그 아이를 두둔했다. 설명을 이어간 아버지는 왼손잡이의 외다그르다의 옛말이다. 여성복 단추는 왼쪽에 달려 왼손잡이에게 편하게 고안된 거 같지만, 아니다. 단추 달린 옷은 옛날에는 귀족이나 입었다. 하녀가 옷을 입혀주기 때문에 단추를 왼쪽에 달았을 뿐이다. 모두 오른손잡이들이 그렇게 만든 거다. 그렇다고 왼손잡이가 틀리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아버지는 텃새는 철새의 반대말이다. 철새는 계절에 따라 옮겨 다니지만, 텃새는 일 년 내내 한 곳에 머문다. 너는 텃세 부린 거다. 나중 온 사람을 무시하거나 힘들게 하는 게 텃세 부리는 거다. 사정을 잘 아는 네가 얘기해줬어야 한다. 너는 옹졸했다라고 지적했다. 말을 이어나간 아버지는 너와 다르다고 틀리는 건 아니다. 다른 것을 틀리다고 여기는 건 편견이다. 그러면 차별이 생긴다. 나와 같지 않으면 다른 게 아니라 틀린 것이 되어버려 나쁜 것이 된다. 옳고 그름이 없으면 다른 거다. 옳고 그름이 있어야 틀리다라고 구분해 일깨워줬지만, 그때는 솔직히 알아듣지 못했다.

내가 결혼해 낳은 첫 아이가 발걸음을 뗄 무렵에 아버지가 저 얘기를 다시 끄집어냈다. 그래서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6.25때 전상을 입은 아버지는 오른쪽 다리를 절단해 의족을 착용했 다. 절뚝거리는 아버지는 네 아이가 저와는 걸음걸이가 다른 나를 보고 틀리다고 생각하면 어쩌나 해서 한마디 보탠다. 네가 요령 있게 잘 설명해야 한다며 걱정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긴 지나간 일을 생생하게 회억해내며 당부했다.

초등학교 때도 인용했다면서 다시 일러준 고사성어가 불양불택(不讓不擇)’이다. ‘태산은 흙을 마다하지 않고 하해는 작은 물줄기도 싫어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사기(史記) 이사열전(李斯列傳)에 나온다. 초나라 사람 이사(李斯)는 진시황(秦始皇)이 천하를 통일할 때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중앙집권적 전제국가를 설립한 일등공신이었다. 순자(荀子)에게 법가사상을 배운 그는 외국인으로는 가장 높은 객경(客卿)의 지위에 이르렀다. 외국인 첩자가 진나라를 해치려 한 것이 들통나 진나라 출신이 아니면서 높은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이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저 성어는 그가 만류하는 청원을 쓴 글 간축객서(諫逐客書)’에서 유래했다.

중국에서 지금까지도 제갈량의 출사표와 더불어 최고의 문장으로 꼽힌다며 아버지는 성어를 해석했다. “태산은 흙을 마다하지 않았기에 저렇게 높을 수 있었으며, 하해는 가는 물줄기도 마다하지 않았기에 저렇게 깊고 넓을 수 있습니다[泰山不讓土壤, 故能成其大, 河海不擇細流, 故能就其深]. 군왕은 민중을 물리치지 않으므로 덕을 밝힐 수 있을 것입니다.” 진나라 왕은 이 글을 보고 감동해 축객령을 해제하고 이사를 원직에 복직시켰다.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보듬어 안는 성품이 가장 소중하다라고 한 아버지는 살며 부딪치는 크고 작은 모든 갈등은 나와 다른 것을 틀리는 것으로 여기는 데서 생긴다. 문은 안에서 열어줘야 자연스럽다라고 했다. 아버지는 당신의 손주에게도 안에서 문을 열자면 도량을 넓히고 용서하고 끌어안을 수 있는 포용력을 길러야 한다고 시간 날 때마다 역설했다. 그러나 포용력이란 가지라고 쉽게 가지기도, 가르치기도 쉽지 않은 인성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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