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서울 명동 한복판에서 아버지가 느닷없이 물었다. 은행에 다닐 때다. 점심을 먹고 아버지가 담배 피우는 동안 길에서 지나치는 직장 동료들에게 내가 두어 번 한 말이었다. “별일 없지? 언제 밥 한 번 같이 하자구라는 말을 아버지가 지켜보다 지적했다. 점심시간에 만나는 직장 동료들인데 딱히 할 얘기는 없어 인사치레로 하는 거라고 강변했다. 아버지는 바로 정신 나간 놈 같으니라고라며 역정을 냈다.

가까운 다방으로 자리를 옮겨서도 여전히 큰소리로 익은 밥 먹고 선소리한다라면서 야단쳤다. 아버지는 실없는 말을 하는 언행을 크게 나무랐다. 또 지킬 마음도 없이 약속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다. 상대편도 어차피 약속으로 제 말을 받아들이지는 않는 동료 간의 통상인사법이라고 재차 말씀드렸지만, 아버지는 막무가내였다. “그중에는 네 말을 곧이들은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지킬 생각도 없는 약속을 하는 가벼운 언행은 상대에 대한 존중이 아니다. 앞으로 상대편이 네가 하는 말을 그 정도로만 여기는 게 더 큰 문제다라고 질책했다.

아버지는 지금껏 자라며 아버지와 어머니 둘 중에 누가 너를 더 많이 때렸는지 아느냐? 어머니가 너를 더 많이 때렸다. 그러나 너는 내가 때린 것만 기억날 것이다. 동물은 먹이를 주는 이에겐 적의(敵意)를 품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그래서 시간을 내 식사비즈니스를 하는 건데 그 중요한 일을 가벼이 여기는 것을 아버지는 못마땅해했다. 그때 일러준 고사성어가 식언(食言)’이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고사에서 비롯된 건 그날 처음 알았다.

아버지는 식언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나온다고 했다. ()나라 애공(哀公)이 월()나라에서 돌아올 때 조정 중신 계강자(季康子)와 맹무백(孟武伯)은 왕을 맞으러 멀리까지 달려가 축하연을 열었다. 자신이 없는 동안 둘이 자신을 여러 번 비방하고 헐뜯었다는 걸 알고 있었고 애공이 그 일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둘이 또한 알고 있었다. 술자리가 유쾌할 수 없었다. 평소 식언을 일삼아 탐탁지 않게 여기던 맹무백이 곽중(郭重)에게 살이 많이 쪘다고 하자 애공이 그를 대신해 그야 말을 많이 먹었으니 살이 찔 수밖에 없지 않겠소[是食言多矣 能無肥乎]?”하고 둘이 자신을 비방한 일을 꼬집었다.

글을 쓰려고 찾아보니 식언은 말을 번복하거나 약속을 지키지 않고 거짓말을 일삼는다는 뜻이다. 좌씨전보다 앞서 공자(孔子)가 쓴 서경(書經)의 탕서(湯書)에 나온다. ()나라 탕왕(湯王)이 하()나라 걸왕(桀王)의 폭정을 보다 못해 군사를 일으켜 정벌하기로 했다. 그는 백성을 모아 놓고 그대들은 나 한 사람을 도와 하늘의 벌을 이루도록 하라. 공을 세운 자에게는 큰 상을 내릴 것이니라.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朕不食言]”라고 했다. 자신이 한 말을 번복하지 않고 약속을 지킨다는 뜻으로 한 말에서 식언은 유래했다.

아버지는 자신이 한 말이나 약속에 대해 책임지지 않고 거짓말이나 흰소리를 늘어놓는 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특히 아버지는 자기를 드러내려는 현시성(顯示性) 허언(虛言)은 병이다. 실제로 겪지도 않은 것을 사실로 단정하는 회상착오(回想錯誤)를 가져올 수도 있으므로 다시는 쓰지 말라고 다짐을 두고서야 말을 끝냈다. 돌이켜보니 그 후 그렇게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 반드시 약속을 잡았고, 지켰다. 그날 아버지가 말씀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이 언뜻 보면 멋있어 보일지 몰라도 상대는 이미 알아차리고 있다. 진정성(眞情性)이 떨어지는 말은 화려하나 힘이 없다. 손주에게도 서둘러 익혀줘야 할 인성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