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공방(漢詩工房)] <특집 : 이 땅의 모든 약사님들을 위하여> 尋隱者不遇(심은자불우), 賈島(가도)
[한시공방(漢詩工房)] <특집 : 이 땅의 모든 약사님들을 위하여> 尋隱者不遇(심은자불우), 賈島(가도)
<사진 출처 : Baidu>

【특집 칼럼】 이 땅의 모든 약사님들을 위하여

약은 우리의 육신을 치유해주는 시이고
시는 우리의 영혼을 치유해주는 약이다

[원시]
尋隱者不遇(심은자불우)


賈島(가도)


松下問童子(송하문동자)
言師採藥去(언사채약거)
只在此山中(지재차산중)
雲深不知處(운심부지처)

[주석]
· 尋(심) : 찾다, 방문하다. / 隱者(은자) : 은자, 은사(隱士). / 不遇(불우) : 만나지 못하다.
· 賈島(가도) : 당(唐)나라 말기의 시인으로 자는 낭선(浪仙)이다. 애초에 승려가 되었다가 환속하여 장강 주부(長江主簿)를 지내기도 하였지만, 일생을 독신으로 가난하게 살았다. 퇴고(推敲)라는 말의 유래가 된 유명한 일화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 松下(송하) : 소나무 아래. / 問童子(문동자) : 동자에게 묻다.
· 言(언) : 말하다. 여기서는 대답의 뜻으로 쓰였으며, 시 끝까지가 동자의 대답이다. / 師(사) : 스승. 여기서는 은자를 가리킨다. / 採藥去(채약거) : 약을 캐러 가다. 약은 약초(藥草)를 의미한다.
· 只(지) : 다만, 오직. / 在(재) : 있다. / 此山中(차산중) : 이 산 속.
· 雲深(운심) : 구름이 깊다. / 不知處(부지처) : 있는 곳[處]을 알지 못하다.

[번역]
은자(隱者)를 찾아왔으나 만나지 못하고

소나무 아래서 동자에게 물었더니
“선생님께서는 약을 캐러 가셨는데
다만 이 산 속에 계시기는 하지만
구름이 깊어 계신 곳을 모르겠습니다.”라 하네.

[번역노트]
이 시는 퇴고(推敲)의 고사로 유명한 당(唐)나라 시인 가도(賈島)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이다. 흔히들 가도가 시어(詩語)의 조탁(雕琢)에만 고심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시의(詩意)의 연마(鍊磨)에도 각고의 노력을 경주(傾注)하였다는 점을 이 시 한 편만 보더라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우선 이 시는 문답체(問答體)로 구성되었다는 점이 이목을 끈다. 그리고 문답체이면서도 질문을 하는 주체인 “나[我]”를 생략한 것과 질문의 내용을 생략한 것은, 이 시가 간결함을 추구하는 언어의 경제성 원칙을 매우 잘 구현한 예(例)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제목에서 이미 “(내가) 은자(隱者)를 찾아왔으나 만나지 못하고”라 했기 때문에 질문을 하는 주체나 질문의 내용을 다시 언급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대신에 은자의 처소 주변에 있었을 소나무를 언급함으로써 송백(松柏)처럼 고결할 은자의 심성을 엿볼 수 있게 하였다. 이 역시 매우 치밀한 장치 설정이다. 하고 많은 나무 가운데 왜 하필이면 소나무였겠는가!

다음으로 이 시는, 시의 제목과 시의 본문이 하나의 문장으로 연결되는 유기적인 구조를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읊는 대상이 되는 명사(名詞)나 객관적인 사실을 제목으로 삼는 대부분의 시들과는 매우 차별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가도의 독창인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당대(唐代)에는 상당히 드물었던 작법(作法) 가운데 하나로 간주된다. 그리하여 역자는 이 구조에 유의하며 시 제목과 시 본문을 번역해 보았다.

이 시에 등장하는 동자(童子)는 당연히 은자의 제자(弟子)일 것이다. 제2구에서 이 동자는 “선생님께서는 약을 캐러 가셨습니다.”라고 하였다. 이 대답 속에는, “너의 선생님은 지금 어디 계시냐?”라는 질문이 들어 있다. 그리고 동자가 다시 제3구와 제4구에서, “이 산 속에 계시기는 하지만, 구름이 깊어 계신 곳을 모르겠습니다.”라고 한 대답에는, “너의 선생님은 지금 어디에서 약을 캐시느냐?”라는 질문과 함께, “네가 가서 좀 모셔올 수 없겠느냐?”는 질문이 함축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구름이 깊어 계신 곳을 모르겠습니다.”라고 한 대답은, 어른의 부탁을 당돌하게 거절하는 동자의 완악(頑惡)함을 얘기한 것이 아니라, 은자가 돌아오기 전까지는 은자를 찾기가 사실상 쉽지 않다는 현실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디에 계신지 몰라 제가 모시고 올 수 없습니다.”라는 직설적인 언어보다는, “구름이 깊어 계신 곳을 모르겠습니다.”라는 대답이 얼마나 더 시적이고 아름다운가! 이것이 바로 가도가 추구한 시의(詩意)의 연마(鍊磨)이다.

이 시 속의 은자에게 약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이 시만으로는 은자가 약을 캐러 간 목적이 먹기 위한 것인지, 팔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먹기도 하고 팔기도 하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지만, 적어도 은자에게 약은 이미 일상화된 그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사람의 육신과 영혼을 즐겁게 해주는 풀’을 의미하는 “藥”이 은자의 뜰에 널린 광경을 떠올려보자면, 은자는 달리 약사(藥師)로 불러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은자를 “선생님[師]”으로 호칭하는 이 동자는, 은자와 함께 살며 약은 물론 시와 글 등도 배우고 있었을 것이다. “약과 시”…… 이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고 있노라니 불현듯 “약은 우리의 육신을 치유해주는 시이고, 시는 우리의 영혼을 치유해주는 약”이라는 멘트가 순간적으로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아, 정말 어찌나 반갑던지! 그리하여 역자는 기쁜 마음으로 이 멘트를 앞세워, 이 땅의 모든 약사님들에게 약을 시로 삼고, 시를 약으로 삼기를 권하면서, 이 짤막한 칼럼 하나를 이렇게 헌정(獻呈)하는 바이다.

오늘 역자가 소개한 이 시는 오언절구로 압운자는 ‘子(자)’·‘去(거)’·‘處(처)’인데, ‘子’는 인운자(隣韻字)이다.

2022. 9. 27.

<한경닷컴 The Lifeist> 강성위(hansh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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