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 한시로 만나다] 낚시꾼과 시인, 이생진
낚시꾼과 시인

이생진

그들은 만재도에 와서 재미를 못 보았다고 한다
낚싯대와 얼음통을 지고 배를 타기 직전까지도
그 말만 되풀이했다
날보고 재미 봤냐고 묻기에
나는 낚시꾼이 아니고 시인이라고 했더니
시는 어디에서 잘 잡히느냐고 물었다
등대 쪽이라고 했더니
머리를 끄덕이며 그리로 갔다

[태헌의 한역]
釣客與詩人(조객여시인)

衆曰吾等到滿財(중왈오등도만재)
而今不得享滋味(이금부득향자미)
竟至上船重言復(경지상선중언부)
于余忽問滋味未(우여홀문자미미)
答曰余非釣客是詩人(답왈여비조객시시인)
還問詩者何處可易漁(환문시자하처가이어)
伊余對以燈臺邊(이여대이등대변)
衆客點頭向彼如(중객점두향피여)

[주석]
* 釣客(조객) : 낚시하는 사람, 꾼. / 與(여) : ~와, ~과. 명사를 병렬하는 접속사이다. / 詩人(시인) : 시인.
衆曰(중왈) : 여러 사람들이 ~라고 말하다. / 吾等(오등) : 우리, 우리들. / 到(도) : ~에 오다, ~에 도착하다. / 滿財(만재) : 만재도(滿財島) : 만재도(晩才島) 혹은 만재도(晩材島)로 표기하기도 하는, 전남 신안군 흑산면에 딸린 작은 섬으로 낚시로 유명하다.
而今(이금) : 지금, 지금까지. / 不得(부득) : ~을 하지 못하다. / 享滋味(향자미) : 재미를 보다. ‘滋味’는 맛있는 음식이나 맛이라는 뜻 외에도 흥취, 재미라는 뜻도 있는 한자어이다.
竟(경) : 마침내.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는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 至上船(지상선) : 배를 탈 때까지. ‘上船’은 ‘승선(乘船)’과 같은 말이다. / 重言復(중언부) : 같은 말을 다시 (되풀이하다). 간단히 중언부언(重言復言)의 줄임말로 이해해도 된다. ※ 지금까지의 3구는 원시의 첫 3행을 약간 의역해서 표현한 것이다. 원시의 “낚싯대와 얼음통을 지고”는 시화 시키지 않았다.
于余(우여) : 나에게. / 忽(홀) : 문득, 갑자기.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는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 問(문) : ~을 묻다, ~라고 묻다. / 滋味未(자미미) : 재미가 있었는가? 재미를 보았는가? 역자는 이 대목의 ‘滋味’를 재미를 보다는 뜻의 동사로 사용하였다. 시구(詩句) 말미에 쓰이는 부정(否定) 부사 ‘不(불)’, ‘否(부)’, ‘未(미)’, ‘非(비)’ 등은 시구 전체를 의문형으로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梅花著花未(매화착화미)”는 “매화가 꽃을 피웠던가요?”의 뜻이다.
答曰(답왈) : ~라고 대답하다. / 非釣客(비조객) : 낚시꾼이 아니다. / 是詩人(시시인) : 시인이다.
還(환) : 다시, 또. / 詩者(시자) : 시라는 것, 시. / 何處(하처) : 어디에, 어디에서. / 可易漁(가이어) : 쉽게 잡을 수 있다. 원시의 “잘 잡히다”를 약간 달리 표현한 말이다.
伊余(이여) : 자신을 이르는 말. 나. ‘余’와 같다. / 對以(대이) : ~로 대답하다. / 燈臺邊(등대변) : 등대 주변, 등대 쪽.
衆客(중객) : 여러 사람들. / 點頭(점두) : 머리를 끄덕이다. / 向彼(향피) : 그쪽을 향하여. 곧 등대를 향하여. / 如(여) : 가다. 여기서의 ‘如’는 동사로 간다는 의미이다.

[한역의 직역]
낚시꾼과 시인

사람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만재도에 와서
지금껏 재미를 보지 못했어요.”라고 하였다.
끝내 배를 탈 때까지 같은 말을 되풀이하더니
나에게 문득, “재미 보셨는지요?”라고 물었다.
“나는 낚시꾼이 아니고 시인입니다.”라고 답했더니
다시 묻길, “시는 어디에서 쉽게 잡죠?”라고 했다.
내가 등대 쪽이라고 대답을 했더니
사람들이 머리를 끄덕이며 그쪽을 향해 갔다.

[한역 노트]
"Going?"
"Gone."
"Many?"
"Few."
"Large?
"Small."

이 영어를 보고 단박에 뜻을 알아차렸다면 영어에 아주 조예가 깊거나 역자가 학창시절에 보았던 어떤 영어 참고서를 마찬가지로 보았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역자는 이 영어를 한문 수업 시간에 거의 예외 없이 소개해 왔는데, 이 대목에서 한문 선생이 무슨 영어냐고 한 소리 할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미안하게도 한문은 우리말보다는 영어에 훨씬 더 가깝기 때문에, 영어를 예로 드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역자는 ‘한문이 문장(文章)이 되기 위한 조건’을 설명하면서 동사(動詞)의 유무(有無)를 강조하면서도 여기에만 너무 매달리면 안 된다는 실례로 이 영어를 자주 거론하였더랬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일상적인 언어 등에서는 동사가 없어도 문장이 될 수 있다. 이점은 영어나 한문뿐만 아니라 어느 언어에서나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일 것이다. 역자가 예로 든, 각 행마다 그 어떤 동사도 없이 형용사(形容詞) 한 단어로만 이루어진 문장은 과연 무슨 뜻일까? 아픈 것은 참아도 궁금한 것은 절대 못 참는 역자의 술친구 같은 독자들을 위하여 바로 번역을 소개하기로 한다.

"가려고 하니?"
"갔다 왔어."
"많아?"
"조금이야."
"커?
"작아."

번역까지 해주었는데도 도대체 무슨 소린지 아직까지 감이 안 잡히는 독자들이 얼마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자신을 책망할 필요는 전혀 없다. 이것을 이해하고 말고 하는 문제와 지적 수준과는 전혀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이 문장들은 바로 오늘 소개하는 시에도 등장하는 낚시꾼들의 대화이다.

"(낚시 하러) 가려고 하니?"
"(낚시 하러) 갔다 왔어."
"(잡은 고기가) 많아?"
"(잡은 고기가) 조금이야."
"(잡은 고기가) 커?
"(잡은 고기가) 작아."

동양의 경우, 낚시꾼은 예로부터 소설 등의 장르에서 은자나 숨은 고수로 많이 묘사되어 왔다. 이 시에 등장하는 낚시꾼들이 은자나 숨은 고수가 아닐 수는 있어도 최소한 바보는 아니라는 얘기를 하기 위하여, 역자는 지금까지 낚시 이야기를 다소 장황스럽게 해왔다. 시는 어디에서 잘 잡히느냐고 묻고, 머리를 끄덕이며 그리로 갔다는 얘기에 파안대소하지 못한 독자라면 시를 읽을 자격(?)이 없는 사람인 건 아닌지 모르겠다.

낚시꾼이 물고기를 낚는 것이나 시인이 시를 낚는 것은 같은 맥락이다. 재미삼아 얘기해 보자면 시인을 ‘낚詩꾼’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고, 또 낚시꾼을 뜻하는 한자어인 ‘釣魚人(조어인)’을 패러디해보면 시인을 ‘釣語人(조어인)’, 곧 말을 낚는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을 듯하다. 이래저래 낚시꾼과 시인은 닮은 구석이 많다.

시와 낚시의 공통점은 무엇인가를 낚는다는 것인데 항상 대물만 낚는 건 아니라는 것 역시 닮은꼴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지은 <노인과 바다>에서의 노인 산티아고처럼 청새치 같은 대물도 더러 낚겠지만, 겨우 망둥이만 낚을 때도 없지 않을 것이다. 시인이 쓴 시가 걸작이면 대물이라 할 수 있겠고, 평범하거나 좀 못났다면 망둥이 정도에 비유할 수 있겠다. 시인이 시에서 비록 “재미”라는 표현을 쓰기는 했지만 낚시꾼이 물고기를 소중히 여기듯, 시인 역시 언어를 소중히 여긴다. 이 역시 하나의 닮은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낚시꾼이 시를 물고기와 동일시하여 등대 쪽으로 향한 것은 결코 멍청함이 아니라 수준 높음일 수도 있다. 시인이 연출한 것이기는 하여도 그 낚시꾼은 말하자면 숨은 고수인 셈이다.

역자는 정말이지 시가 이렇게 재미있어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편의 장편소설(掌篇小說)로 간주해도 손색이 없을 이생진 시인의 이러한 시가 있어, 우리의 삶이 기름을 친 기계처럼 부드러워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발면 용기에 뜨거운 물을 붓고 무엇인가로 뚜껑을 눌러둘 때 한 손에 잡히는 시집을 활용한다손 치더라도, 우리가 시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도 있는 것은 아닐까?

역자는 연 구분 없이 8행으로 이루어진 원시를 칠언(七言) 6구와 구언(九言) 2구가 혼합된 8구의 고시로 한역하였다. 비록 구언 2구가 사이에 끼기는 하였으나 첫 두 글자가 “答曰(답왈)”과 “還問(환문)”으로 말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므로 내용 자체는 칠언이라고 할 수 있다. 짝수 구마다 압운하였으나 전반 4구와 후반 4구의 운을 달리하였다. 그러므로 이 한역시의 압운자는 ‘味(미)’·‘未(미)’, ‘漁(어)’·‘如(여)’가 된다.

2022. 3. 15.

<한경닷컴 The Lifeist> 강성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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