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닷컴 더 라이피스트
당기는 것과 그것을 쏘는 이리 ‘사이’에 공부길의 묘맥과 밑절미가 있습니다. 누구나 당기고 누구나 쏘지만, 당김과 쏨을 한몸에, 한손에 쥐고 버티며, 그 이치를 말해 줄 수 있는 이는 희귀합니다. 활을 당기되 쏘지 않는 일은, 마치 ‘알면서 모른 체하기’처럼 그저 알기도 아니며 그냥 모르기도 아닌 것입니다.

쏘기 전에는 영영 알 수 없는 것이며, 쏜 후에는 잊어버려야 하는 것이 공부의 이치라면, 정년 행할 수 없기에 성급히 알아 버리는 일, 그리고 외려 모르기에 행할 수 있는 일! 이 두동진 갈래길에서 행하면서 알아 가는 수행성의 지혜는 어떻게 나의 것이 될 수 있을까요?

익으면 진리가 도망치듯, 도망치는 진리를 도망치는 대로 놓아 두는 것! 그처럼 기다리되 기대하지 않고, 알되 묵히며, 하아얀 의욕으로 생생하지만 욕심은 없으니 그것이 당기되 쏘지 않는 것입니다.

의도와 실천사이의 위태로운 길에 서서 아직 아무도 품어보지 못한 그 사이의 이치에 천착하는 일은 인문학 공부가 열어 줄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이자 전래의 가치입니다.
[조민호의 인생백과사전] 당기되 쏘지 않는다

김영민의 ‘공부론’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저자는 오늘을 사는 우리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를 “활을 당기되 쏘지 않는 것”에 비유하고 있다. 이것은 어쩌면 있는 그대로 바라보라는 불교의 가르침과도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기대하고, 아쉬워하고 바라는 마음을 접고 우리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아야 의도와 실천 사이의 위태로운 길을 걸어갈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당겼지만 쏘지 않을 수 있는 여유를 가지라고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왠지 마음에 드네요.

<한경닷컴 The Lifeist> 조민호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