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살아가는데, 의사소통을 하고 자기존재를 나타내는 것 중에 가장 흔하고, 중요하게 여기는 수단은 말이다. 말은 인간에게만 있는 유일한 것이다. 다른 동물에게는 언어, 말이 없다. 그런 말은 혼자가 아닌, 둘 이상 공동체를 형성하고 살아가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있다.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언어장애가 없는 한, 인간은 누구나 말을 배우고. 말을 한다. 모든 관계를 맺고, 형성하고 유지하는 데에도 말은 늘 필요하다.



그런데, 종종 어떤 모임을 가거나, 사람들이 모여 회의를 하는 자리를 가면, 때로는 상처를 입고 오는 경우가 있다. 이유는, 사람들의 말이 걸러진 말도 아니고,생각나는 대로 하는 말이거나, 목소리가 크면 말이 먹혀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나는, 말을 하기보다는 듣기를 좋아한다. 나서기를 좋아하기 보다는 전체의견을 합리적이면 따라가기를 좋아한다. 그러기에 말을 유창하게 잘하는 자를 보거나, 주저함 없이 말을 막 하는 자들로 인해, 나는 왜, 말을 잘 못할까?혹은 저 사람은 될 말 안될 말을 저렇게 큰 목소리로 주장할까? 하는 생각 때문에 상처를 입는다.



인간이, 생각을 표현하는 것은 두 가지가 있다. 그것은 말과 글이다. 어떤 사람은 말을 잘하는 달란트가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글을 잘 쓰는 달란트가 있다. 아니면 두 가지를 다 잘하는 사람도 있다. 하나님은 나에게 말을 잘하는 은사를 주지 않았다. 그래서 힘든 것 중 하나가 말이다. 우선은 말을 잘 안 한다. 말수가 적다. 사람과 둘이 대면하고 있다 보면, 머릿속으로 어떤 말을 해야 하는가? 하는 긴장감이 늘 있다. 그러다가 침묵이 조금 흘러가면 “왜 나는 말을 잘 못할까?”“말하는 것이 힘이 들까?”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그러다 보니, 가까이 지내는 사람으로부터 듣는 이야기가 “너는 어떻게 말수가 그렇게 없냐?”“답답하다“고 한다.사실은 말을 주로 해야 하는 생업에 종사하는 직업군인데도 말이다. 물론, 내게 정한시간, 정한 주제를 가지고 말을 할 때는 제법 한다. 논리적으로. 다만 그런 자리가 아닌 자리에서는 딱히 무슨 말을 해야 하나? 구지 말을 많이 해야 할 필요를 못 느끼기에 말수는 적고 듣는 편을 택한다. 그러다보니, 과묵한 사람으로 인상이 남는다. 사회생활, 인간관계에서 말수가 적은 것은 때로는 불리하기도 한다. 나를 드러내는 것 중 하나가 말이기 때문에.



그런 나에게, 조선시대 선비의 글이 큰 위안을 주고, 그런 모임도 있었나 하는 생각을 하는 글을 보았다. 그 선비는 미수(眉叟) 허목(許穆)(1595-1682)이다. 허목의 사람됨은 여러 일화가 있다. 허목은 연천이 집이다. 그가 사는 집은 낮고 좁으며 허물어져서 사람이 들어갈 때 항상 구부리고 들어가야 했다. 그래서 자신의 집을 곱사등이란 뜻의 구루암(傴僂庵)이라 지었다. 그는 숙종 왕의 극진한 우대를 받아 우의정에 임명되기도 했다. 그는 84세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낙향할 때 숙종 왕이 거택을 하사했다. 조선 왕조 초기부터 숙종 왕까지 200년간 거택을 하사 받은 사람은 세 사람 밖에 없다. 황희, 이원익, 허목이다. 그런 허목이 77세 때 연천에 살면서 가까운 이웃들과 모임 하나를 만들었다. 그것이 불여묵사(不如默社)이고, 83언으로 쓴 불여묵사지(不如默社誌)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함부로 하는 데서 나오는 것은 모두 잘못이니, 모두 잘못이라 한다. 말은 따라 갈 수 없으니, 네 필의 말로 달려도 혀에는 미치지 못한다. 때문에 입은 욕을 부르며, 욕은 입을 상하게 한다. 입을 조심하지 않으면 화를 부르게 된다. 그런데 하물며 말을 많이 하여 낭패함이 많음에 있어서랴? 잘못을 부끄러워함은 마음을 경계하는 것만 같음이 없고, 입을 단속함은 말을 삼가 침묵하는 것만 같은 것이 없다. 삼가 침묵하면 말이 적고 말이 적으면 오로지 경계하게 된다. 오로지 경계하면 허물이 적다. 때문에 우리 모임을 [침묵하는 것 같지 않다]는 뜻의 불여묵사로 이름을 붙이고, 그것을 써서 나 자신을 경계한다.“

그러면서 16가지 경계해야 할 말을 열거한다. ”희롱하는 말, 성색, 재화의 이익, 분노, 교만, 아첨, 구차하게 사사로움을 추구하는 말, 자랑하는 말, 타인의 능력을 시기하여 다투는 말, 잘못을 부끄러워하는 말, 그른 것을 풀이하는 말, 사람을 논하며 헐뜯는 말, 간사한 말로 과장하는 말, 남이 잘하는 것을 무시하는 말, 남의 잘못을 떠벌리는 말, 세상의 변화에 저촉되는 말“이다.(강혜선 저,『나 홀로 즐기는 삶』에서 인용)

말이 무성하고, 말로 모든 것을 소통하고,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새삼 다시 새겨볼 이야기들이다. 다시금 허목이 그리워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불여묵사(不如默社)를 아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