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지?’ ‘진짜 추워’

‘춥다’라는 말로 인사를 주고받는 요즘이다.

30년만에 찾아온 강추위라하니, 그럴 법도 하다. 일상이 다 얼어붙을 법도 하다.

그런데 이렇게 일상이 다 얼어붙을 정도로 춥다면, ‘춥다’는 표현도 더 강렬해져야 하는 것 아닐까? 하지만 막상 다른 말을 쓰려해도 쉽게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그저 ‘진짜 추워’, ‘너무 추워’ 정도의 부사 몇 개를 붙여보는 것으로 만족할 뿐이다. ‘추워’라는 단어 대신 다른 표현을 할 수는 없을까?

가령, 이런 표현은 어떠한가 ?

“패딩, 목도리, 귀마개 다 했는데도, 바람한번 불면 피부 하나하나가 생선 비늘처럼 다 일어나”

“영하 2도라고? 그럼 여름이지. 서울은 온도계로 표현할 수가 없어. 바람이 얼굴을 다 할퀴어 놓는 것 같아.“ 말만 들어도 추위가 온몸에 느껴지지 않는가? 어쩌면 이미 찬바람이 얼굴을 핥고 지나간 느낌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평소에 ‘추워’라는 말만 하던 사람이라면, 이러 표현은 잘 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추워’라는 간결하고 편리한 단어를 두고, 굳이 이렇게 해야하는지 의문이 들 수도 있다. 심지어 요즘에는 #해시태그를 달아 ‘#추위스타그램’ 간결하고 짧은 ‘키워드’ 하나로 압축해서 표현하는 것이 트렌드이기도 하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편리함과 간결함이 당신의 표현력을 갉아먹는 ‘함정’이다.
[슬기로운 ‘표현’생활]  #추위스타그램?

[이미지출처 : 한국경제신문]


‘맛있다. 춥다. 바쁘다. 외롭다. 좋다’

유용하고 편하다. 하지만, 나의 모든 감정과 경험들을 늘 단골로 사용하는 이른바 ‘즐겨찾기 단어’들로 말하는 것이 습관이 되면, 내가 표현하고 그려낼 수 있는 세상의 모습도 딱! 거기에서 멈추게 된다. 내가 본 것, 꿈꾸는 것을 소개하고 싶어도 ‘적절한 단어와 표현’이 떠오르지 않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영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단어들이 쉽게 생각이 안나듯이 한국어도 마찬가지이다. 자주 사용하지 않는 단어와 표현들은 잊혀 지기 마련이다. 게다가 새로운 표현을 시도하지 않고, 정해져 있는 단어만을 사용하는데 어떻게 ‘슬기로운 표현‘이 가능하겠는가? 내 세상은 이미 ‘즐겨찾기 단어’에 갇혀버린 것이다.

특히, 요즘은 SNS를 통한 대화가 오프라인 못지않게 활발하다. 그런데 SNS에서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단어는 약 700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가 새로운 외국어를 배울 때, 4000개의 단어 이상을 암기하는 것에 비교하면, 얼마나 어휘 사용의 폭이 좁은지를 알 수 있다.

과연 해시태그로 편리한 단어들만 애용하는 것이 효과적일까? 즐겨찾기 단어에만 편식한다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표현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순간이 분명 나타난다. 편리하려다 내 세상에 갇혀버리는 ‘슬기로운 감빵생활’이 될 수도 있다.
[슬기로운 ‘표현’생활]  #추위스타그램?

[이미지출처 : 슬기로운 감빵생활 제공/ 한경닷컴]


사실 나는 생애 첫 방송 때 이러한 답답함을 경험 했다.

‘맛집 소개프로그램’이었는데 어떤 음식을 먹어도 ‘달다’ ‘맵다’ ‘고소하다’ ‘짜다’라는 기본적인 단어들 이외에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시청자들에게 ‘맛’의 느낌을 설명해줘야하는데, 표현을 해낼 수 없으니 ‘내 세상’에 혼자 갇혀버린 느낌이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맛있다’라는 편리한 단어만을 사용했을 뿐, 다른 표현을 고민해본 경험이 없는 것이 문제였다. ‘말’을 업으로 삼은 사람으로서 표현력을 키우는 것이 시급했다. 어떻게 훈련해야할까?

그래서 첫 번째로 선택한 방법이 ‘구체적으로 말하기’이다. ‘추워’라고 말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추우면 내 몸은 어떻게 반응하지? 예전에 이런 추위를 느낀 적이 있었나? 추위를 피하기 위해서 내가 준비한 것이 부족했나? ‘얼마나 추워? 어제보다는 많이 추워? 조금 더 상세하게 상황을 설명해 보는 것이다. 이렇게 연습을 하다 보니 내가 쓰는 어휘자체가 부족하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 새로운 input을 만들기로 했다. ‘춥다’는 표현과 대체될 수 있는 다른 단어들은 무엇이 있을까? 표현력이 좋은 다른 사람들을 모니터하기 시작했다. 그 때 눈에 들어온 것이 고사성어, 속담, 한자어등이다.

“오늘 봄을 알린다는 절기 경칩이지만, 개구리가 깨기는 어려울 것 같네요. 수은주는 여전히 0도 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춥다’는 단어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아도 ‘절기’를 활용해서 충분히 메시지 전달이 가능한 것이다.

실제로 방송에서는 ‘동어’ 사용을 되도록 지양한다. 같은 단어를 반복해서 쓰면 듣는 사람이 지루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TV에 나오는 기상캐스터마다 ‘춥다’라는 말만 반복한다면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이 원칙을 나의 생활에도 적용해보기로 했다. 가령, ‘추워’라는 단어를 일주일간 내가 쓸 수 없는 ‘금지어’로 설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추워’라는 메시지를 전달해야하는 수 많은 상황을 나의 경험이든 속담이든 끌어와서 이야기해본다. 처음에는 정말 답답했다. 하지만, 일주일 후에 ‘추워’라는 단어 대신 표현해낼 수 있는 수많은 컨텐츠가 생긴 나를 발견했다.

이 때, 가장 도움을 많이 받은 것은 ‘시집’과 ‘에세이’이다. 왜 그럴까? ‘사랑’ ‘행복’ ‘커피’ 우리가 쓰는 일상 단어들을 특유의 감성과 묘사로 표현해 내기 때문이다. 그러할 시간이 없다고 하면, 드라마나 노래를 들을 때, 대사나 가사들에 집중해 보자. 멋진 표현들을 생각보다 많이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모든 방법을 머릿 속으로만 하면 안된다는 사실이다. ‘소리’를 내면서 내 ‘혀’와 ‘입’으로 이 모든 것을 기억하면서 연습해야 효과가 있다. 우리는 ‘말’을 더 맛있게 하기 위해서 이 훈련을 하고 있다. 눈으로 읽고, 머리 속으로 말을 해보는 것은 몸이 기억하지 하기 때문이다.

어휘력과 표현력은 체력과 같다.

타고는 것도 어느 정도의 영향이 있겠지만, 꾸준히 기르고 쌓아가는 사람을 따라가지 못한다. 나는 원래 ‘말재주’가 없어. ‘경상도 스타일’은 과묵한 것이 매력이야. 이렇게 비겁한 변명은 하지 말자. 내가 늘 읽는 컨텐츠가 SNS에 국한되고, 대화를 하는 사람들 역시 비슷한 표현을 하는 사람들로 한정되어 있다면, 내가 표현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는 열리지 못한다.

오늘부터라도 ‘추워’라는 말 대신 다른 표현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추위스타그램’ SNS 한 줄 올리지 말고, 추운 감성을 표현한 감미로운 노래 하나를 따라부르는 것이 훨씬 나의 ‘슬기로운 표현 생활’에는 도움이 될 것이다.
[슬기로운 ‘표현’생활]  #추위스타그램?
김미영 아나운서

(현) JTBC 골프

(전) 한국경제TV/이데일리TV/OBS 경인방송/강릉 MBC

지방 자치 인재개발원 외래교수

국립외교원 미디어브리핑, 프레젠테이션 외래교수

삼일회계법인/현대자동차/삼성전기 미디어 스피치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