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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틀린 질문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어지간해서 질문을 하지 않던 사람이 어렵사리 용기를 내어 필자에게 이렇게 말을 꺼내는 때가 종종 있다. 평범한 직장인뿐만 아니라 명함만 보면 내놓으라 하는 전문직에 있는 사람들조차 이런 운을 떼며 질문을 해오곤 한다.

원인은 간단하다. 지금까지 자신이 익숙해온 방식과 다르면 대수롭지 않게 ‘틀리다’고 표현하는 것에 익숙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쉽게 감지된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학교에서도 학생들은 궁금한 것이 있어도 질문을 잘 하지 않는다. 궁금한 것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잘못된 질문을 하지 않을지 친구들에게 눈치를 보는 경향이 강해서다.

공공 기관은 물론 일반 회사에서도 이런 풍경은 크게 다르지 않다. 기업과 유관 단체장이 주관하는 회의에서 치열하게 질문을 하고 토론을 하는 모습 보다는 누군가 말하면 그것을 받아 적기에 바쁘다. 혹여나 자신이 쓸데없는 질문을 해서 회의 시간이 길어지거나 일거리가 더 많이 생겨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작용한다. 오랫동안 대기업에서 CEO를 경험해봤던 필자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참신한 질문을 자주 해오는 직원은 가뭄에 콩 나듯했다.

왜 우리는 질문하는 것을 이토록 낯설어 할까.

세계에서 가장 빠른 추격자(fastest follower)로 오늘의 경제적 기적을 거둔 효율성을 추구해 오던 방식에 익숙한 것도 한 요인으로 꼽힌다.

더 크게는 ‘맞다’ ‘틀리다’라는 이분법적 사고에 익숙하다 보니 ‘다른 것’은 설 자리가 없었던 사회문화적인 영향이 팽배했기 때문이다.

집단주의를 발전 전략으로 선택한 우리나라는 한마디로 응축하면 개인이 없는 사회로 성장해왔다. 자신보다는 조직과 사회를 더 중시 여겨왔다. 물론 이것이 고도 성장의 한 축이었음은 부인할 수는 없다. 한마디로 사회적 자아(自我)로 살아오느라 본질적 자기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산업경제는 효율성에 기반을 둘 수밖에 없는 구조다. 산업화에 늦게 참여한 우리나라는 경제를 부흥하려면 효율성 제고가 제 1순위로 부각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적 상황이었다. 그러다 보니 과거 70년 동안 오로지 솔루션을 찾아 정답을 찾기 위해서 빠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방법(How)을 찾는 습관에는 매우 익숙하지만, 내가 누구인지 하는 정체성(Who)도 없고, 무엇을 향해 달려가야 하는 지 명확한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What) 찾는 것은 뒷전이었다는 얘기다.

뉴 노멀(New Norma)이라고 부르는 디지털 4 차 산업혁명의 세상은 ‘Unique or Burst’로 대표되는 특별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세상으로 변했다.

소수의 승자 즉 1등만 살아남는 세상에서 특별함을 발휘하면 다수의 승자가 살아남는 세상으로 변한 것이다. 우리 인간은 제 각기 다르다. 이제 그 ‘다름’을 믿어야 한다.

남과 다르게 하려고 노력하고, 남들이 어떻게 나를 보는 지 관심을 두지 말고 나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야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고유한 자아실현욕구를 발현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북돋을 수 있는 유연성을 끄집어 내야한다. 모든 사람이 각자 다르게 생각하고 다른 것을 알고 독특한 방식으로 실행해야 한다. 시대에 뒤떨어진 접근법을 계속 사용하면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문제가 더 많아진다.

이제 한 사람 한 사람의 잠자는 재능을 깨워야 한다.

‘Nobody gets to be wrong (아무도 틀린 사람은 없다)’ 즉 모든 개인은 각자 고유한 특성을 타고 이 세상에 태어났다. 이것이 코칭의 기본전제다.

나는 누구인가? 소크라테스만 떠올리는 이 질문은 자신의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던지는 기초적이지만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유연성이 필요한 개인의 시대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달고 사는 것이 질문이 곧 답이다. 테스형에게 물어보지 말고 자신에게 질문하라. 나는 누구인가?

☞ CEO에게 던지는 질문: “나중에 어떤 CEO로 직원들에게 기억남고 싶은가요?”

김재우 前 한국코치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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