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생명을 유지하고 있을 때에는 부드럽고 약하지만, 죽음을 당하게 되면 굳고 강해진다. 풀과 나무도 살아있을 때는 부드럽고 연하지만, 죽게 되면 마르고 굳어진다. 그러므로 굳고 강한 것은 죽음의 무리이고, 부드럽고 약한 것은 삶의 무리다. 그렇기 때문에 군대가 강하게 되면 멸망하고, 나무가 강해지면 꺾이게 된다. 강하고 큰 것은 아래에 자리하게 되고, 부드럽고 약한 것이 위에 자리를 잡는다.” –노자-

고양이 두 마리가 우리 집 1층 테라스 옆, 소공원에서 1개월의 시차를 두고 죽었다. 고양이는 영물로 취급되어 그런지 사체를 보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다. 죽은 두 마리 모두 우리 집으로 밥 먹으러 오는 길냥이들이라 그런지 마음이 짠했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아내와 달리, 필자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죽은 고양이를 그대로 놔 둘 순 없었다. 할 수 없이 소공원 구석 화단에 묻어 주기로 하고, 퇴근 후 한자 반 정도의 깊이로 성체 고양이가 들어갈 구덩이를 팠다. 그리고 삽으로 고양이 사체를 들었는데, 웬걸 죽은 지 하루밖에 안 된 고양이가 뻣뻣하게 굳어있었다. 그렇게 빨리 굳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해서 그런지 살짝 당혹스러웠다.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한 터라 서둘러서 고양이 사체를 구덩이에 넣었다. 폭이 조금 작았는지 고양이가 하늘을 본 상태로 비스듬히 들어가고 말았다. 순간 다시 해야 하나, 그냥 묻어야 하나 망설였지만, 그냥 묻는 것으로 결정했다. 그때만 해도 고양이에 대한 선입견이 있어서 그런지, 빨리 끝내야 한다는 생각 외엔 어떤 생각도 하기 싫었던 것 같다.

한 달 후, 또 한 마리의 길냥이가 같은 장소에서 발견되었다. 출근길이었기 때문에 당장 묻을 수는 없었고, 한 달 전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사채가 굳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묻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하루를 더 방치했다. 주말 이른 아침, 한 달 전보다 훨씬 넓게 구덩이를 파고 고양이 사체를 넣었다. 이번엔 고양이 눈이 바닥을 향하게 한 후 묻어주었다.

“산 것은 부드럽고 죽은 것은 뻣뻣하다”

길냥이를 통해 산 것과 죽은 것의 차이를 경험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나뭇잎의 삶과 죽음은 다를까? 수분과 양분의 통로인 잎맥으로 양분이 공급되지 못하면 나뭇잎은 생존하지 못한다. 한 여름 나뭇잎에 물이 가득 차면 윤기가 자르르한 초록의 기품을 뽐낼 수 있지만,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면 떨켜는 나무줄기와 잎의 경계를 차단하고 수분과 양분이 오고 가지 못하게 틀어막는다. 그렇게 되면 나뭇잎은 마르고 비틀어져 볼품없는 낙엽 신세를 면치 못한다.

고양이의 죽음과 마른 낙엽을 보면 노자가 말하는 삶과 죽음의 차이를 극명하게 구분할 수 있다. 즉 통(通)하면 부드럽게 생존하지만, 막히면(不通)하면 뻣뻣하게 굳는 죽음의 길을 가야 한다. 높은 담장도 훌쩍 뛰어넘을 만큼 유연한 고양이도, 물이 듬뿍 오른 초록 잎사귀도, 영양을 공급받는 통로가 막히면 결국 죽음의 길을 피할 수 없다. 이는 자연의 이치로 만물의 영장인 사람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이 글을 통해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언로(言路)의 막힘이다. 사람은 누구나 하고 싶은 말이 존재한다. 어떤 이유에서건 하고 싶은 말을 주고받지 못하면 내적으로 화가 쌓이고, 급기야는 좋지 않은 결말로 이어지는 예가 많다. 그렇다면 국민을 평화롭게 해야 하는 정치도 마찬가지다. 여당과 야당은 자기당의 정책을 인정받고 싶어 한다. 여는 야를, 야는 여를 상대로 자기당의 정책을 설득하지만 쉽게 결론짓는 일은 거의 없다. 자기당의 뜻이 관철되지 않으면 그다음 수순이 예측될 만큼 뻔한 행동을 시작한다. 제일 먼저 대화의 통로부터 차단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버틴다. 그래도 안되면 국회 투쟁과 장외 투쟁을 불사한다. 그래도 성과가 없으면 그땐 극단적 선택 중 하나인 단식 투쟁으로 이어진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두문불출 잠수를 타는 것도 일시적으로 통로를 차단하는 예라 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여, 야가 뒤 바뀌어도 개선되지 않고 있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자연의 이치는 통(通)해야 살 수 있게 만들어졌다. 통한다는 것은 이어진다는 것이고, 이어진다는 것은 손을 맞잡는 것과 다르지 않다. 어느 한쪽이라도 손을 놓아버리면 정국은 얼어붙고 만다. 그것은 모두가 상생하는 유일한 방법이 통(通)이라는 사실을 애써 거부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남·북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북한은 대북 전단을 빌미 삼아 남북 간 대화 채널을 모두 틀어막은 상태다. 스스로 고립을 자처하면서 자신들이 원하는 무언의 압력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대북 유연성도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서로 경직되는 상황을 피하기 어렵다. 노자는 말하기를 산 것은 부드럽고 죽은 것은 뻣뻣하게 굳는다고 일갈했다. 사는 것과 죽는 것의 길목엔 통(通)이 있다. 진정으로 북한 주민을 살리는 길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면, 남·북간 대화의 통로를 차단하며 스스로 고립되는 악수는 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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