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 한시로 만나다] 저녁, 이정록

저녁



이정록



곧 어두워지리라


호들갑 떨지 마라


잔 들어라,


낮달은 제 자리에서 밝아진다



[태헌의 한역(漢譯)]


夕(석)



立卽天將暮(입즉천장모)


勸君莫佻輕(권군막조경)


但擧酒滿盞(단거주만잔)


晝月原地明(주월원지명)



[주석]


* 夕(석) :저녁.


* 立卽(입즉) : 곧. / 天將暮(천장모) : 날이 장차 저물 것이다, 날이 장차 어두워질 것이다.


勸君(권군) : 그대에게 권하노니. / 莫(막) : ~을 하지 말라. / 佻輕(조경) : 경박스럽게 굴다, 호들갑 떨다.


但(단) : 다만, 그저. / 擧(거) : ~을 들다. / 酒滿盞(주만잔) : 술이 가득 찬 잔.


晝月(주월) : 낮달. / 原地(원지) : 원래의 자리, 제자리. / 明(명) : 밝다, 밝아지다.



[직역]


저녁



곧 날이 어두워질 테니


그대들 호들갑 떨지 마라


술 가득한 잔이나 들어라


낮달이 제 자리에서 밝아지리니



[漢譯 노트]


시가 짧다고 이해하기 쉬운 것은 결코 아니다. 역설적으로 말해 시는 때로 짧을수록 이해하기가 어렵다고 할 수 있다. 그 짧은 시 안에 담아야 할 것을 모두 담아 하나의 우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정록 시인의 이 시도 바로 그런 범주에 속한다.


역자는 이 시가, 아직 해가 지지 않은 저녁 가까운 시간에 시작된 술자리에서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한다. 설령 시가 나중에 지어졌다고 하더라도 그 시점이 음영(吟詠)의 대상이 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왜 그런가? 곧 저녁이 되리라고 하였으니 아직 저녁은 아니라는 것이고, ‘잔 들어라’고 하였으니 술자리일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해가 지면 볼 수 없는 ‘낮달’을 언급하고 있으니 역자의 추정이 그리 무리는 아닐 듯하다.


그런데 이 시에서 시적 화자가 언급한 ‘호들갑’은 도대체 무엇을 두고 하는 얘기일까? 역자는 그 ‘호들갑’을 두 가지로 생각해 본다. 해도 안 졌는데 무슨 술이냐고 하는 말과, 이미 저녁이 다가오고 달빛이 좋을 테니 기왕이면 달이 잘 보이는 곳으로 술자리를 옮기자고 하는 말을 호들갑으로 간주하지 않았을까 싶다. 저녁이 곧 될 것이라는 말과 낮달이 제자리에서 밝아질 것이라는 말은 그런 ‘호들갑’이 있을 때나 가능한 언급이기 때문이다.


시에서 표면적으로 나타나지는 않은 ‘벗’이라는 개념까지 포함시킬 경우, 이 시의 뼈대를 형성하는 명사(名詞)는 벗과 저녁, 술, 달이 된다. 이 대목에서 역자는, 손님과 술과 안주와 달과 바람을 얘기한 소동파(蘇東坡)의 <후적벽부(後赤壁賦)>를 떠올려 본다. 벗이 있으면 술이 있어야 하고, 벗도 술도 있다면 아름다운 분위기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 시에서의 달이나 <후적벽부>에서의 달과 바람은 바로 그런 분위기를 얘기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시인의 생각은 벗이 있고 술이 있고 달이 있으면 되었지 더 이상 뭐가 필요하겠냐는 것이다. 굳이 전망이 좋은 누정(樓亭)이 아니더라도 달이 잘 보이는 곳이면 맑은 달빛을 감상하기에는 충분할 것이고, 그 달이 곧 제자리에서 밝아질 터인데 무슨 수선을 피우냐는 것이다. 이 얼마나 멋진 술꾼의 일갈(一喝)인가!


4행으로 이루어진 원시를 역자는 4구로 구성된 오언고시(五言古詩)로 한역하였다. 한역시의 압운자는 ‘輕(경)’과 ‘明(명)’이다.


여적(餘滴) : 이제 달이 휘영청 밝을 정월대보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역자가 오래전 어느 달 밝은 밤에 한 벗을 그리워하며 지었던 짧은 시를, 달을 대하면 누군가가 그리워질 분들에게 드리고 싶다. 그리움이란 아무리 퍼내도 마르지 않는 샘물인 걸까? 역자는 지금에도 그 벗이 전설처럼 그립다.


思君(사군)


彼天有月(피천유월)


此心有君(차심유군)


君卽心月(군즉심월)


月爲天君(월위천군)



그대를 생각하며


저 하늘에는 달이 있고


이 마음엔 그대가 있네


그대는 맘속에 있는 달


달은 하늘에 있는 그대



2020. 2. 4.


강성위 한경닷컴 칼럼니스트(hansh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