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소액금융시장이 뜨겁다. 핀테크나 P2P 금융에 대한 기사가 경제신문에 연일 오르내린다. 성장 가능성은 크지만 건전성과 보안문제 등 부작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그 가운데 전통적 소액금융수단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금융구조와 기술로 이들과 경쟁하는 회사가 있다. 인도네시아 국영전당회사(PT. Pegadaian)가 그것이다. 인도네시아에는 국영전당포가 있다.

자카르타 시내를 다니다 보면 군데군데 녹색원으로 된 로고와 함께 ‘쁘가다이안(pegadaian)’이라고 쓰여진 간판이 많이 보인다. 전당포라는 뜻이다. 처음에는 인도네시아에 아직 전당포가 많다고만 생각했다. 나중에 이 회사가 정부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 회사임을 알고 깜짝 놀랐다.

막상 지점에 들어가면 흔히 생각하는 전당포의 이미지와는 많이 다르다. 밝고 깨끗한 분위기에 카운터와 번호표, 깔끔한 제복을 입고 맞이하는 점원들을 보면 다른 금융기관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지점마다 다르지만 직원과 고객 사이에 쇠창살이나 유리창을 세워 놓은 경우 좀 더 전당포 분위기가 나긴 한다.
[인도네시아 톡톡] 인도네시아에는 국영 전당포가 있다고?
이 회사는 인도네시아가 독립하기도 전인 1901년, 전당사업을 국가가 독점하여 운영하겠다는 정책에 따라 세워졌다. 지금은 다른 사업자들도 참여가 가능하지만 금융감독당국인 OJK의 감독에 따라야 한다. 전당사업에 대한 규정은 자본금 규모나 저당물 보관장소, 감정평가사 보유 의무 등 다른 금융회사에 준하는 엄격한 준수사항을 담고 있어 영세사업자가 참여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이 국영회사가 95% 이상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다른 사업자들은 국영회사의 서비스가 미치지 못하는 틈새를 노린다. 예를 들면 고급자동차 같은 고가의 저당물을 맡기고 돈을 빌려가는 고객들을 위해 보안이 확보된 저당물 보관 공간을 마련한다던지 고급스럽고 비밀스러운 공간에서 상담을 한다던지 하는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전당포가 있지만 요즘 인기있는 금융 방식은 아니어서 전당업에 기반한 금융서비스 라는 것이 다소 생소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의 금융현실을 보면 이해가 간다. 통계마다 다르긴 하지만 인도네시아 경제활동 인구 중 약 40% 정도는 은행에 계좌가 없다. 마이너스 통장이나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등 단기에 소액을 융통할 수 있는 제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정도의 신용이나 담보를 제공할 수 있는 금융소비자는 많지 않다. 저축이나 보험같이 유사시에 활용할 수 있는 금융자산도 부족하다. 때때로 꼭 필요한 지출처가 있는데 수입이 이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에는 지인을 통해 부족분을 융통하기도 한다. 그게 아니라면 당장 가지고 있는 자산을 활용하여 이를 맡기고 돈을 마련하는 전당업 형태의 금융도 유용한 방편이다.

큰 금액도 아니다. 학자금을 낼 때가 돌아오거나 아파서 급히 병원에 가거나 약을 사야 하는 상황에서 수중에 돈이 없으면 다음 번 급여가 돌아오거나 수입원이 생길 때까지 한화로 10만원이나 20만원 정도를 빌리는 것이다. 이자율은 2주에 5%, 1달에 10% 정도로 만만치 않지만 소액이고 단기간 사용하는 돈이니 큰 부담은 아닐 수 있다. 전당물로는 금이나 귀금속, 노트북 컴퓨터, 자동차 및 오토바이 등록증, 스마트 폰 등 표준화되어 있어 가치평가와 현금화가 쉬운 품목들이 주로 쓰인다. 단기 소액금융의 방편이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보편적인 방법이 아닐지 모르지만 인도네시아 뿐 아니라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도 아직 많이 활용하는 원초적인 형태의 금융이다.

전당업이라는 말 자체는 멋있지도 않고 그렇게 혁신적으로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전당업 내에서도 얼마든지 혁신의 여지가 있다는 것을 인도네시아 전당업계는 보여준다. 전당업을 단순히 물건을 저당잡고 돈을 빌려주는 업종이 아닌, 소액 단기금융 수요를 충족시켜주는 하나의 금융형태로 정의하면 영역확대도 혁신도 가능한 것이다. 실제 이 회사가 다루는 금융상품들을 보면 전당서비스 뿐 아니라 중소기업에 대한 소액대출, 금 금융,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에 기반한 금융 등 非전당업 서비스의 비중이 급격히 확대되고 있다. 최근에는 새로운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여 디지털 서비스 기반도 강화하였다. 시중은행들도 전당업 기반 금융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자산을 기반으로 하면서 리스크는 최소화하고 수익은 확대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또 소액을 단기로 다수의 고객에게 제공하는 특성상 소매 고객 기반도 강화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는 금융접근성의 측면에서 보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은행 거래 자체를 하지 않는 경제활동인구도 많을 뿐 아니라 신용기반 금융이 정착했다고 보기 어렵다. 신용평가도 어렵고 신용정보도 잘 공유되고 축적되지 않은 상태이다. 그러다 보니 개인이건 기업이건 대출 한 번 받으려면 담보를 제공하고도 이것저것 복잡한 서류를 내고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이런 불편함들 때문에 새로운 금융형태에 대한 수요는 더욱 크다. 인도네시아에서 디지털 화폐니 핀테크니 p2p 금융 등에 대한 관심은 우리나라보다 더 뜨거운 것 같다. 소액 금융서비스 시장 잠재력이 꽤 큰 편인 것이다. 소액금융은 건별 금액은 크지 않지만 모아놓고 보면 무시할 수 없는 크기가 된다. 인도네시아 전당포 회사들은 이런 소매금융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해 왔다.

우리나라 금융기관들의 인도네시아 진출이 활발하다. 은행, 보험사, 증권사 뿐 아니라 저축은행, 종합금융회사, 카드사들의 진출도 이어지고 있다. 핀테크 등 기술 기반 금융으로 보다 많은 잠재적 금융소비자에 접근할 수 있는 금융서비스에 대한 시장기회도 열려있다. 인도네시아인들의 생활 가운데 밀착한 전통적인 금융서비스로 시작하여 비전통적인 서비스로 영역 확대를 모색하는 국영전당회사의 모델에서도 얻을 수 있는 실마리가 있을 것 같다.

* 위 내용은 필자 소속기관의 견해를 반영하지 않습니다.

양동철 한경닷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