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만고만한 사람들이 모이면 생각도 고만고만하다. 고만고만한 새들이 모이면 날갯짓도 고만고만하다. 그래도 그중에서 자기가 제일 잘났다고 목청을 높인다. 조금 더 높이 난다고 우긴다. 세상사 모두 저 잘난 맛에 산다. 뱀 꼬리가 용 머리라고 우기고, 시냇물이 강이라고 억지를 쓴다. 참으로 아리송한 세상이다.

양혜왕이 맹자를 초청해 물었다. “선생께서 천리를 멀다 하지 않고 이리 와주셨으니 저희에게 어떤 이익을 주시려는지요.” 맹자가 답했다. “어찌 이익만을 말씀하시는지요. 위로는 왕에서 아래로는 선비까지 이익만을 논하면 나라가 망합니다. 저는 인(仁)과 의(義)를 먼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뒤통수를 맞은 양혜왕이 다시 물었다. “주변국 왕들과 견줘보면 나는 그들보다 백성을 잘 다스리고 있습니다. 한데 이웃 나라 백성들이 우리 땅으로 넘어오지 않는 까닭은 무엇인지요.” 맹자가 살던 시절에는 백성들이 더 낫다 싶은 군주가 다스리는 나라를 찾아 국경을 넘나들었다.

맹자가 다시 답했다. “왕께서 전쟁을 좋아하시니 비유를 하나 들어보지요. 양쪽 군사가 북을 울리고 싸움을 하는데 한 병사가 겁을 먹고 도망을 쳤습니다. 그런데 오십 걸음쯤에서 멈춰서 백 걸음 도망친 자를 보고 비겁하다고 삿대질을 한다면 가한 일인지요?” “말이 안 되지요. 오십 보나 백 보나 비겁하게 도망친 것은 마찬가지 아닙니까.” 맹자가 속뜻을 꺼냈다. “그렇습니다. 오십 보나 백 보나 그게 그거지요. 왕께서 이웃 국가보다 정치를 잘한다고 하지만 그건 오십보백보 차이입니다. 그 차이로는 백성들이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지 않습니다.” 흔히 쓰는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는 이 대화가 유래다.

오십보백보는 피차의 차이는 있지만 본질은 같다. 겉만 다를 뿐 속은 그게 그거다. 뿌리가 같으면 가지도 비슷하다. 생각이 고만고만하면 행동도 거기서 거기다. “30%보다 300% 늘리는 게 더 쉽다”고 했다. 발상의 전환을 강조한 말이다. 기존의 것을 업그레이드하면 나아는 지지만 한계가 있다. 기껏해야 매출 30% 늘어나는 정도다. 한데 발상 자체를 바꾸면 얘기가 달라진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이 그걸 증명한다. 흔히 거꾸로 보고, 뒤집어 보고, 흔들어 보라 한다. 통념이나 상식에서 서너 걸음 떨어져 사물을 바라보라는 얘기다.

창의가 시대의 화두다. 성적보다는 아이디어를 높게 평가하고, 튀는 자가 인정받는다. 인간은 오십보백보로 옹기종기 모여 있는 무리 속에서 안도감을 느낀다. 그 안도감이 창의를 마르게 한다. 어떤 새는 굶어도 새장을 거부하고, 어떤 새는 새장 속 먹이에 안주한다. 나는 걸 포기하고 배를 채운다. 날개를 접고 자유도 접는다. 그렇게 ‘새다움’을 잃어간다.

옹기종기한 무리에서 벗어나라. 생각을 상자 속에 가두지 말고, 세상사를 상식이란 잣대로만 재지 마라. 상식의 잣대는 의외로 어긋남이 많다. 멀리 보고, 넓게 보고, 깊게 봐라.  창의는 거기서 나온다. 닮지 말고 앞서가라. 오십 보 거리에서 백 보 뒤에 있는 자를 흉보지 마라. 오십보백보는 그게 그 자리다. 깃털 하나 더 들고 힘자랑 하지 마라.

신동열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바람난 고사성어] (3)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겉만 다른 고만고만한 생각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