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이라는 짧지 않은 인연(因緣)은 때로는 의도하지 않게 한 사람의 인생 모습을 살피게 되고 희로애락(喜怒哀樂) 또한 고스란히 지켜보게 된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아버지는 현재 이름 있는 기업의 임원이다. 현재 50대 초반의 나이로 40대 중반 관운(官運)의 흐름이 오기 전까지는 우리나라에서 최고 학교 최고학부인 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와도 별수 없구나 할 정도로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그런 사회생활을 하였었다. 그도 그럴 것이 관(官)이 없는 사람이 직장생활을 하려고 하니 삶의 모순(矛盾)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타고난 가득 찬 그릇은 강한 자존심(自尊心)을 만들었고 우리나라 최고 학부를 졸업했다는 자부심(自負心)은 자신의 생각과 판단에 더욱 집중하게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과 판단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제 조건이 따라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그에 합당한 오행(五行)의 자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업(事業)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왕(旺) 한 재(財)의 자리가 필수이며 조직생활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명국(命局)에 관(官)의 자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서울대 상대(商大)를 나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취업(就業)은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직장생활에서 느끼는 현실과 자신의 생각과의 괴리(乖離) 감이었다. 타고난 팔자(八字)에 없는 자리를 써야 하는 불편함과 마치 끼워 팔기 행사처럼 동반되는 잦은 퇴직(退職)과 이직(移職)의 피로감은 무너질 것 갖지 않던 자존감을 떨어뜨리기에 충분하였다.

‘ 워낙 뛰어난 분이니 제가 특별히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만…
만약 계속 직장생활을 하셔야 한다면 관운의 흐름이 오는 시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수년 전 필자가 건넨 말이다.

경험(經驗)은 행동에게 신중(愼重) 함이란 교훈을 준다. 대기업의 요직(要職)으로 발탁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중학생 아들의 진로가 궁금하다며 필자와 만남을 가졌다. 이미 자신의 뜻과 의지만으로는 세상살이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경험했던 터라 신중하게 자신이 알고 있는 아들의 성향(性向)과 비교해 보고 싶다는 것이다.

아들의 명국(命局)을 살펴보았다.

배부른 그릇이라 공부보다는 다른 분야가 더 어울리며 손재주가 뛰어나니 이를 활용한 직업을 갖는 것이 좋다. 외국에 나가는 것에 부담감이 없고 가능한 조직생활보다는 개인의 역량(力量)을 활용한 직업이 어울리니 여건만 허락된다면 우리나라보다는 해외로 나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경험을 쌓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말이 끝나자마자 그렇지 않아도 아들이 요리에 관심이 많아 요리사가 되기를 원한다며 우리나라보다는 중국으로 나가 요리 공부를 하고 싶어 한다고 했다.

지난해 아들의 대학 진학 문제로 다시 만났다. 실은 지난 상담 후 아들이 중국으로 요리 공부를 떠났으며 생각보다 잘 적응하여 이제는 대학에 진학해야 한다며 몇 가지를 질문하였었다. 다행히 명문 대학에 입학하였다니 무척이나 기분 좋은 일이다.

최근 ‘서울 상대(서울에서 상당히 먼 대학이란 의미)’들이 청년들의 해외 취업 지원에 적극 나서고 있다고 한다. 해외로 눈을 돌려 ‘잡 노매드(직업을 따라 유랑하는 일종의 유목민)’가 되려는 청년이 늘어나면서 이들을 지원하는 대학들의 움직임도 활발하다고 하니 비록 때늦은 감은 있으나 좋은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이 서울 상대(商大) 아버지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자녀의 진로 문제에 대해서 조금 더 일찍 서울 상대(相大) 아들이 되는데 관심을 가져 본다면 자녀가 스스로의 행복을 찾는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되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