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상 정사장의 어둠속 삶




정 사장을 만난 4년 전의 모습은 지금의 모습이 아니었다. ​

진한 니코틴 냄새를 풍기며..50대 중반의 나이를 훌쩍 넘은 듯한 얼굴은 현재 하고 있는 일이 잘 안 되고 있음을 말해 주고 있었다.
[현재 하시고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

“학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만 생각대로 잘 되고 있지 않네요. 다른 일을 고민해볼까 하는데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말이 희망사항이지 특별히 다른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십 년째 학원을 유지해 나가고 있다고 하였다. ​초기 몇 년 동안 잘 되어 학원을 좀 더 크게 확장을 하였으나 그 후로는 계속 내리막 길이며.. 이제는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어 자포자기 중이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었다.

명국(命局)을 살펴 보니 기문서(奇門書)에서 이르기를 비귀즉천(非貴則賤)이라 귀(貴)하지 않으면 천(賤)한 삶을 산다고 하였다.

이러한 사주는 입격(入格)을 하면 능히 일가(一家)를 이룰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그 반대의 삶을 살아야 한다.

입격(入格)이란 온실 속의 화초가 온도와 습도가 모두 갖추어져야만 꽃을 피울 수 있는 것처럼 사주의 기본 자리가 갖추어져야 자신이 원하는 뜻을 펼칠 수가 있다는 말이다.

귀(貴)한 삶과 천(賤)한 삶의 기준은 무엇으로 정해질까?

판단을 하는 가치 기준에 따라 다르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당사자의 가치관이라 하겠다.

주의를 돌아보면 명예퇴직이나 자퇴를 한 사 오십대의 가장들을 종종 볼 수가 있다.

개인마다 처해진 사연이야 다르겠지만 모두 다 한때는 자신만의 꿈을 가지고 열정의 삶을 기대하며 사회의 발을 디뎠을 것이다.

당연하리라 여겼던 삶의 연속성이 단절되고 또 다른 인생의 길을 찾아야 된다는 불안함이 커지면 인생 내리막길에서의 자신감은 급격히 떨어지게 된다.

때로는 이런 삶의 크레바스가 주는 경제활동의 고충으로 인해 어쩔수 없이 원하지도 않은 일들을 해야 할때도 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해서 망설이는 가장들이 적지 않는 현실이다..
[운의 흐름이.. 어느 덧 해가 저물어 노을이 타오르는 시기로 접어들었습니다.. 그나마 그것도 잠시 후면 어둠 속으로 묻히게 됩니다…]

“그러면 제가 앞으로 어둠 속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까!”

[어둠 속의 삶도 인생입니다…]

어둠 속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요..

담배 한대 피워도 되겠냐는 양해를 구하며..

나이 오십이면 지천명(知天命)이라는 공자님의 말씀을 빌리지 않더라도 막상 이 나이가 되서야 인생을 이해하게 되었다며.. 현재 자신이 처해진 모습을 애써 자위하며 아쉬움을 토로했던 기억이 오랫동안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었다.



정 사장은 고민 끝에 학원을 정리하고 고물상을 시작하였다.

처음 일년은 주위의 시선을 극복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어려웠다고 한다. 사업은 말 그대로 여러 가지 중고품이나 기타 물건들을 취급하는 고물상이다.
“일이 생각보다 재미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신간(身幹)이 편해 좋구요!”

“이제는 고정 고객도 생겨서 수입도 점점 나아지고 있습니다.”

정 사장의 현재 얼굴은 4년 전의 모습보다 훨씬 얼굴 밝고 좋아 보인다.

필자의 입장에서 보면 어쩌면 자신의 타고난 정명(定命)에 어울리는 당연한 삶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막상 그러한 일을 다시 시작한 정 사장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우리네 삶이란 음지(陰地)가 있으면 양지(陽地)도 있기 마련이요, 내리막 길이 있으면 오르막 길도 반드시 오는 법이다.

이왕 거쳐야 할 길이라면 고물상 정 사장처럼 현재를 기꺼이 받아들이며 다음을 준비하는 것도..어찌보면 당연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주어진 내 삶에 대한 멋진 예의가 아닐까 생각된다.

평균수명이 증가하여 나이 들어도 평생을 할 수 있는 인생의 업(業)이 필요한 사회로 변하고 있다. 시대가 변화하면 내 자신도 역시 흐름의 변화를 따라야만 한다.



인생살이에 결코 늦음이란 없다. 문제는 자신의 그릇을 알고 언제 시작하느냐는 것이다.

비귀즉천(非貴則賤)이란 인생의 가치관은 결국 당사자인 내 자신이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