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참 오랜만에 만난 친구였습니다.



아니, 만나야 할 이유가 없던 사람이었습니다. 우연히 강의실에서 만났습니다. 그가 일부러 제 강의를 들으러 온 것이니 우연은 아니었습니다. 필연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는 제 강의를 여러 차례 들어 본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별도로 만나 달라고 해서 단 둘이 마주 앉아 소주잔을 기울였습니다.



그는 아주 외딴 시골에서, 어려운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나, 학교 다닐 처지가 못 되는 상황에서 서울로 올라와 공부를 했습니다. 해보지 않은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 당시 누구나 그랬듯이, 3년의 전쟁이 끝난 지 10년도 되지 않은 50년대 후반에 태어나 60년대의 가난을 거치면서 자라고, 유신을 반대하고 7.4공동성명과 10.26사태, 5.18광주사태를 모두 겪으면서 분노와 울분에 사무친 70~80년대를 보냈습니다.



지금 공직에 머물고 있는 그가 현직을 불안해 하고 있습니다.





아래 위로, 다루기 힘든 상사와 부하를 모시고, 각종 민원과 단순한 업무에 시달리며 “힘들게 살아 온 상처와 그 대가”에 대해 많은 갈등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40대 중반이 된 그가 다른 사업을 해 보고자 하지만,



혈투로 묘사되는 비즈니스 세계를 알지 못하고, 피상적으로 배운 대학교육 내용은 잊은 지 오래고, 모아 둔 재산은 현재를 유지하기에 급급하고, 남에게 내세울 기술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성장해 온 어려운 시절의 것보다 훨씬 큰 분노와 울화와 갈등과 고민, 원한에 사무쳐 있었습니다.



쉴 틈 없이 따르는 술잔은 넘치고 있었고, 마주 앉은 제가 어떤 이야기를 해 줘도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세가지를 제안했습니다.





우선, 톨스토이의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읽어 보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읽어 보라.



자신의 존재가 얼마나 미미하고 역사적으로 얼마나 별 볼일 없는 자연의 일부인가를 생각해 보라. 아무리 발버둥치고, 잘난 척 하고,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해 보려 했지만, 그 어느 시대의 유명한 스타나 저명한 과학자나 세계를 호령하던 지도자들도 지금은 흙 한 줌 남지 않고 사라졌으며.



지금 전 세계를 주무르는 듯한 권력을 지닌 지도자들이나 최고의 갑부들도 머지 않아 바람에 날리는 먼지만도 못하게 되리라. 그러하니 사는 동안 웃으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라. 그래도 그들은 당신을 그리 오랫동안 기억하지 못할 터이니, 너무 날뛰지 말고 죽음을 기다리라.





둘째, 감사하라.



지금 두 발로 걸어 다닐 수 있고, 남의 말을 알아 들으며 웃을 수 있고 화 낼 수 있고, 눈으로 뭔가를 보면서 기쁠 수 있고 슬플 수 있고, 손가락 10개로 물건을 만질 수 있다면 정말 감사해야 한다. 부모님께 감사 드리고, 조상님께 고마워해야 한다. 글을 읽을 수 있고, 소리를 들을 수 있고, 고민할 수 있고,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시원한 물을 꿀꺽꿀꺽 마실 수 있고, 마음 속으로 결정을 하지 못해 갈등을 하고 있고, 음악을 듣고 춤을 출 수 있다면, 이 어찌 고마운 일이 아니겠는가? 하물며, 내일 아침에 출근 할 곳이 있고, 다른 일자리나 사업거리를 찾아 볼 수 있다면 어찌 지금 고마워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 고민을 하면서 술을 마실 수 있고 고기를 씹을 수 있는 지금, 그렇게 살아 있다면 더 무엇을 원하는가?





끝으로, 시간을 아껴라.



원한에 사무치고 분노가 치미는 일들은 모레 위에 새겨서 바람에 날리게 하고, 감사하고 고맙게 여기는 이야기들은 철판 위에 새겨서 오랫동안 기억되게 하라.



살아 있는 동안 많은 친구를 사귀고, 그들에게 기쁨을 주고, 그들에게 전화를 하고 편지를 쓰고, 고객들에게 도움을 주려면, 그런 과정을 거쳐 돈을 벌고 수익을 내고, 성공하는 인생을 마치려면, 자신이 그럴만한 능력과 지혜와 경험이 있어야 한다.



그런 지혜와 경험과 역량은 하루 아침에 얻어지거나 마음먹은 대로 구해지지 않으니, 지금부터 단 1초, 1분이라도 아껴서 가치 있는 것들을 모으고 쌓아 놓아라. 일상의 푸념과 불평과 고민으로 보낼 시간이 없어야 하거늘 어찌하여, 주말마다 들로 산으로 돌아 다니며 가벼운 즐거움만 만끽하려 하는가? 그렇게도 살아 갈 시간이 많다고 생각하는가? 그렇게도 오랫동안 존재할 것이라고 느껴지는가?



해야 할 일을 하려면 하고 싶은 일은 잠시 멈추게 하거나 거두어 둬도 좋으리라.





그렇게 살면 너무 빡빡해서 어떻게 하냐고?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그러면, 그냥 그렇게, 늘 재미있게 놀면서 즐기면서, 똑 같은 고민과 걱정 매일 하면서 살아도 되느니라. 누가 뭐라겠는가?



그것도 선택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