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기 칼럼] 실패와 분노를 활용하는 방법
사표를 던지며 결심했다. 반드시 복수(復讐)하리라. 사기(詐欺)를 당한 후, 반드시 보복(報復)하겠다고 결정했다. 그러나 마음먹은 대로 복수를 하거나 보복을 한 건 아무것도 없다. 생각한 것만큼 복수를 하거나 보복을 할 인물도 되지 못함을 한탄하며, 오랫동안 속만 끓이며 살았다. 견딜 만 했다.

“그렇게까지 공부를 하고, 힘든 상황을 이겨낸 근본적인 힘은 어디서 나오나요?”

강의를 하면서 가끔, “청중들이 묻는 질문”에 답하기 힘들 때가 있다. 솔직히 말하면 바보 같고, 진실을 거짓으로 꾸밀 줄도 모르는 “진짜 바보”이기 때문이다. 더 솔직히 말하고 싶을 때가 많았으나, 그럴만한 용기도 없었고, 긴 얘기를 짧게 할 만한 재주는 더욱 없었다. 웃으면서 울음을 참았다. 나 자신을 비웃고 싶었지만, 그건 더욱 어려웠다. 상세한 대답을 하는 것보다 슬며시 입술을 깨물며 침묵을 지키는 게 쉬웠다. 그땐 그랬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은 사실을 진심으로 말하는 것이고, 더욱 힘든 건 침묵이다.

아랫집 아저씨는 우리 아버지를 수시로 무시했다. 착하고 무딘 아버지는 늘 이웃사람들에게 당하고 살았다. 없는 돈 빌려서 빌려 주고 끝까지 받지 못하고, 지나가는 아저씨들 집으로 불러 들여 술 따라 주고 욕먹고, 호미와 삽을 빌려주고 되돌려 받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빌려 준 물건 찾아 오라고 엄마가 잔소리 하면, 모른 체 돌아서며, 혼자 투덜거렸다. “그냥 쓰라고 해”

그런 아버지가 착한 게 아니라 바보처럼 보였다. 같이 살면서 농사지을 생각을 하니 아득한 생각과 아찔한 불안이 머리에서 발끝까지 휘감아 돌았다. 그래서 맨손으로 서울로 도망갔다.

공장에서 자동차 피스톤을 깎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하루 종일 만든 피스톤이 모두 불량이 났다. 도면을 잘못 봐서, 측정을 잘못해서 오류가 난 것이다. 다짜고짜 공구실(工具室)로 끌려들어가 몇 대 맞고, 나와서 시말서를 썼다. 시말서를 쓰는 종이에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이건 아니지. 매까지 맞아 가면서 이런 일을 해야 하는가?” 그래서 결심했다. 더 공부 하기로.

공장에서 3년 동안 일을 하다가 사표를 내고 대학 입학시험을 보았다. D 대학에서 떨어져서 뒤돌아서면서 그냥 시골로 내려가려고 했다. 그러나 한 번의 기회가 또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2차 대학에 시험을 보았는데 붙었다. 앞서 떨어진 D 대학보다 좋은 대학이었다.

공대를 나와서 회사 전산실에서 프로그램을 짜고 있는 어느 날, 난데없이 인사발령이 났다.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고민을 하면서 모르는 게 많고 수시로 노조간부들과 논쟁을 벌이며 회사를 그만두려고 했다. 마땅히 갈 곳도 없어서 꾹 참고 경영대학원을 갔다. 인사관리론, 근로기준법, 노동법, 남녀고용평등법 등을 살펴보면서 법과 시행령, 시행규칙이 서로 다르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그러다가 영어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뉴욕 보험대학에 연수를 갈 기회도 생겼다.

책을 내려고 원고를 보냈는데, 대부분의 출판사에서 거절을 했다. 포기하려고 하다가 원고를 수정해서 다른 출판사에 보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10년 동안 그 출판사에서 세 권의 책을 냈고, 지금 세 번째 책, “오늘도 계획만 세울래”는 3쇄를 찍으며 인기를 끌고 있다.

실패는 또 다른 기회를 이어주는 다리가 되고, 원수를 갚고 싶은 사람에 대한 복수는 다른 사람이 대신 해 준다. 가끔은 하늘과 땅이 대신 보복을 한다. 무서운 자연의 법칙이다.

홍석기 한경닷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