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수칼럼] 할머니 레시피
“샀어?”

“아니 10년쯤! 얘는 15년 정도 된 건데.”

“못 보던 거라서!”

“호호호.”

 지인들이 자주 묻는 말이다. 오랜만에 입은 옷을 보거나 못 보던 가방을 들고 있으면 물어본다. 이런 말을 들을 때 마다 사람들은 남에게 관심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든다. 호감, 좋은 관심일 수 있지만 매번 “샀어?”라는 말이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물론 근래 구입한 것도 있지만 “샀다!”고 알리는(?) 성향이 아니다.

 글을 쓰는 이 노트북은 아들이 중학교 2학년 때 쓰던 것이다. 아들은 지금 25세다. 공대에 들어갈 때 더 좋은 노트북이 필요할 것 같아서 입학선물로 사주고 물려받은(?) 것이다. 다행히 미니 노트북 ‘넷북’도 하나 더 있다. 커피숍에서 책을 읽다가 글감이 떠오를 때 쓰는 용도인데 이것도 10년이 넘었다. 재미있는 것은 둘 다 배터리가 고장 나 전기코드가 빠지면 글이 다 날아가 버린다.

 한 때 ‘새 것’에 미친 때가 있었다. 자주 입은 옷이 조금만 해져도 수선하지 않고 버렸다. “그릇도 이빨(?)이 나가면 재수가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버리기 일쑤였다. 게다가 유행에 미쳐 어울리거나 말거나 그대로 따라 한 적도 많다. “젊을 때 다 그렇지!”라고 말할 수 있지만 지금 생각하면 ‘삶의 줏대’가 없었던 것이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음식 종류도 ‘새 것’이 붐을 일으키면 지금껏 먹었던 음식은 ‘헌 것’이 되는 것 같다. ‘브런치’란 말이 생소할 때, 브런치 카페가 성행해서 한식 먹는 사람이 구식이 된 취급(?)을 받기도 했다. 근래 사람들이 자주 먹는 음식이 ‘꼬막 밥’이라고 한다. 아! 다시 한식이 대세인가 싶다.

 필자는 집에 손님 초대하는 걸 좋아한다. 물론 거창한 것은 아니다. 주로 식사를 대접한다. 음식점에서 대접할 수도 있지만 조금이라도 더 감사한 마음을 담고 싶어 직접 ‘집밥’ 요리를 한다. “부족한 나랑 잘 지내주어서 늘 감사합니다!”란 마음이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식사 후 “내 입에 딱 맞다!”라고 해 주는 것이다.

 사람들은 각기 음식에 대한 생각과 기준이 다르다. 그로 인해 개인 입맛 즉 취향이 만들어진다. 취향이 다르다보니 누구나 먹어서 ‘맛있는’ 소위 대박치는(?) 음식을 만들기란 쉽지 않다. 전문가들조차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만큼 매우 힘들다고 한다. 이 때 구원의 손길이라고 할 수 있는 ‘음식을 만드는 방법’인 <레시피>가 필요한 것 같다.

“음식에는 궁합이 있어!”

“할머니, 궁합이 뭐예요?”

“그냥 좋고 나쁜 거야.”

“좋고 나쁜 건 뭔데요?”

“앗따! 어울려야 한다는 거야!”

“?”

 필자 할머니는 동네사람들을 불러 음식 대접하기를 즐겨했다. 게다가 동네사람들이 할머니 음식을 무척 좋아했다. 매년 생신날이면 큰(?)잔치를 벌였는데 동네사람들은 그 날을 기억해서 기다릴 정도였다. 할머니는 음식을 만들 때마다 음식 궁합 이야기를 자주 했다. 그리고 “다음에 음식 만들 나이가 되면 꼭 궁합을 맞춰서 만들어라!”는 당부를 빼놓지 않았다.

“육군은 해군이 도와야 해!”

“해군은 육군이 도와야 하고!”

“가끔 육군 해군이 같이 도와서 나라를 구해야 해!”

무슨 말인지 도통 알 수 가 없었다.

“할머니!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육군은 육지, 땅에서 나는 재료를 말하는 것이고. 해군은 바다에서 뜯거나 잡은 것들이야!”

“아! 깔 깔 깔!”

 일명 <할머니 레시피>다. 예를 들어보겠다. 땅에서 나는 시금치는 ‘육군’이다. 시금치(육군)를 무칠 때 액젓(해군)으로 간을 맞추면 감칠맛이 배가 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바다에서 뜯은 해초(해군), 톳을 예로 들면 톳을 무칠 때는 땅에서 얻은 콩 간장 또는 된장(육군)으로 무치라는 것이다. 톳 무침에 두부(육군)까지 으깨서 무쳐주면 고소한 맛이 “끝내준다!”고 했다.

육군과 해군이 합쳐서 ‘나라를 구하는’ 할머니 레시피는 단연 미역국이었다.

 “미역국은 곰국처럼 푸욱 끓이는 게 최고인데. 미역을 씻어 물기를 꼭 짜. 냄비에 참기름과 조선간장 한 번 휙 두르고 마늘 약간 넣어서 볶아. 볶다가 미역 숨이 죽어갈 때 쌀뜨물을 부어 30분 이상 푹 끓이면 돼. 기다렸다가 쌀뜨물에 미역이 녹아 초록빛이 돌 때 액젓 한 숟가락 넣으면 나라를 구한 맛이 나오지!”

 지금 기억해도 당시 할머니의 ‘나라를 구한 맛!’ 표현이 참 생생하다. 그렇다. 나라를 구하는 맛을 얻는 데는 대단한 것이 필요치 않아 보인다. 할머니 말에 의하면 “집에서 따뜻한 미역국에 밥 한 그릇 뚝딱! 말아만 먹어도 되는 것”이다.  마치 누구든지 ‘배부르고 등 따습고 그렇게 살면 그것이 살만한 나라’라고 말하는 것 같다.
[이지수칼럼] 할머니 레시피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란 말이 있다.  ‘옛것을 제대로 알고서 새로운 것을 안다’는 뜻이다.  최근 문화를 넘어 사회 전반에 ‘퓨전현상’이 불고 있다.  퓨전은 라틴어의 ‘fuse(섞다)’에서 유래한 말이다. 어원적으로 ‘이질적인 것들의 뒤섞임, 조합, 조화’를 뜻한다고 사전에 나온다.

 방송과 매체를 통해 매일 새로운 음식이 나오고 있다.  대부분 퓨전요리다.  퓨전요리는 전혀 다른 형식의 요리를 섞은 것으로 1970년대부터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우리 음식에 퓨전요리는 ‘새 것’이라는 것이다. 새것은 옛것이 있을 때 새로운 것으로 인정받는다. 결국 옛 것이 새 것의 기준이라는 것이다.

 이제 <할머니 레시피>는 필자가 음식을 만드는 기준이 되었다. 어떤 음식 재료 앞에서도 나라를 구하는 맛을 낼 수 있는 자신감이 되었기 때문이다. “음식 궁합” “좋고 나쁘고” “어울려야 한다!”는 가르침은 레시피뿐 아니라 살아가는 데 새 것에 흔들리지 않는 ‘삶의 줏대’가 되었다. 

 꼬막 밥이 유행이라고 한다. 오늘은 꼬막을 사서 할머니 레시피대로 꼬막 밥을 만들어 지인들에게 대접해야겠다. 거기에 나라를 구하는(?) 미역국을 곁들여야겠다!

“유행 따라 사는 것도 제 멋이지만 나는 옛 것이 좋다!”

©이지수20190222(jslee308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