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숭아

봉숭아는 한자말로 봉선화라고 부른다. 봉숭아는 인도, 중국이 원산인 열대식물이고
우리나라에는 고려 이전부터 전해진 듯 하다. 초여름부터 꽃이 피고 팔구 월에 씨가 맺는데
잘 익은 씨는 건드리면 톡하고 터지면서 씨가 사방으로 퍼져 외국에서는 나를 건드리지 말아요의 터치미낫(touch me not)이라 부른다.

 



봉숭아는 예부터 못된 귀신이나 뱀을 쫓아낸다고 알려진 식물이다.
우리 선조들은 집의 울타리 밑이나 장독대 옆 또는 밭둘레에 봉숭아를 심으면
나쁜 일이 생기지 않고 뱀이 집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고 믿었다.
봉숭아에는 뱀이 싫어하는 냄새가 나므로 봉숭아를 심으면 뱀이 가까이 오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봉숭아를 뱀이 싫어하는 꽃이라고 금사화(禁蛇花) 라고 부른다.
봉숭아꽃으로 손툽을 붉게 물들이던 풍습도 귀신이 붉은빛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또 봉숭아는 단단한 것을 물렁물렁하게 하는 불가사의한 힘이 있다.
흰꽃이 피는 봉숭아는 요통, 불임증, 적취(뱃속에 딱딱한 덩어리가 뭉쳐있는 병),
어혈, 신경통, 요로결석, 등에 놀라운 효과가 있다,
목에 가시가 걸렸을 때 봉숭아씨를 가루로 내어 마시면 효과가 있다 한다.
봉숭아씨를 급성자(急性子) 라 하는데 약성이 급하여 즉시 효력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갖가지 문명병들 비만증, 과음과 과식으로 생긴 병, 두통, 공해 독으로 인한 병,
체했을 때, 종기 등에도 효과를 볼 수 있다. 봉숭아 씨는 딱딱한 것을 연하게 하는 작용을 한다.  고기나 생선을 삶을 때 씨앗을 몇 개 넣으면 부드러워진다.

우리나라에선 꽃밭에 봉숭아를 많이 가꾸는데 몇 가지 슬픈 전설이 있다.
백제 때 한 여자가 선녀로부터 봉황 한 마리를 받는 꿈을 꾸고서 딸을 낳아 그 이름을 봉선(鳳仙)이라 지었다 . 봉선이는 거문고를 너무 잘 타서 임금 앞에 나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봉선은 집에 돌아와  임금을 사모하는 말할 수 없는 상사병에 걸려 자리에 누웠다.
어느날 임금의 행차가 집앞을 지나간다는 소문을 듣고 봉선은 자리에서 일어나 죽을 힘을 다하여 거문고를 연주하였다. 그 소리를 듣고 찾아간 임금은 봉선의 손에서 붉은 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흰 무명 천에 백반을 싸서 동여매어 주었다.
그 뒤 상사병이 더한 봉선이 죽고 그 무덤에서 이상스런 붉은 꽃이 피었다.
사람들은 봉선의 넋이라 하여 봉선화라 부르고 그 사랑을 기리는 뜻에서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였다 한다.

 

고려 충선왕은 한때 원나라에 볼모로 끌려간 적이 있었다. 한 궁녀가 손가락에 흰 천을 감은 것을 보고 알아보니 고려에서 온 소녀인데 고국에서의 풍습을 잊지 못하고 봉숭아물을 들인 것이라 했다. 왕은 크게 감명을 받았다. 고국으로 돌아온 왕은 소녀를 불러들이려 했으나 소녀는 이미 죽은 뒤였다. 왕은 소녀를 기리기 위해 대궐에 많은 봉숭아를 심게 했다.

 



나라 잃은 슬픔을 노래했다 하여 일제 때 금지곡이었던 봉숭아는 김형준 작사 홍난파 작곡으로 가사는 이렇다.
울밑에 선 봉선화야/네 모양이 처량하다/
길고 긴 날 여름철에/ 아름답게 꽃필 적에/
어여쁘신 아가씨들/너를 반겨 놀았도다.

 

어렸을 때 곧잘 봉숭아물을 들이곤 했다. 한여름 봉숭아 꽃잎과 잎사귀를 섞어 따고 돌 위에 놓고 소금과 백반을 조금 섞고 돌로 콩콩 찧었다. 백반이 없으면 따먹으면 새콤한 괭이밥이나 며느리밑씻개란 풀을 넣고 찧었다. 시퍼런 즙을 열 손톱에 올려놓고 까마중잎, 콩잎, 봉숭아 잎이나 헝겊 등으로 싸 동여매고 실로 풀어지지 않게 찬찬 동여맸다.
자고 나면 손톱에 빨간물이 들었다. 시퍼런 물에서 빨간물이 든다는 것이 여간 신기하지 않았다. 괭이밥이나 백반은 손톱을 부드럽게 만들어 착색이 잘 되게 해 주고 소금은 매염제 역할을 한 것이다.


손톱에 봉숭아 물을 들일 때 색을 진하게 하기 위해 백반을 넣는다.
다른 색이 있는 꽃에 백반을 넣고 물을 들여도 진한 물이 들까, 아니면 봉숭아꽃만 가능한 것일까. 봉숭아 물이 드는 것은 그 안에 들어있는 염료 때문이다. 염료란 색을 띠고 있는 물질로, 이 물질이 물건의 표면에 달라 붙는 것이 바로 물이 드는 현상, 즉 염색이다.
따라서 봉숭아 물을 들일 때에는 백반(또는 명반)이나 소금과 같은 매염제를 넣어야 고운 색깔로 진하게 염색을 할 수 있다.
물론 백반이나 소금 이외에도 다른 매염제를 사용할 수 있으며,
매염제 종류에 따라 손톱에 물드는 색깔이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봉숭아를 이용해 물을 들일 수 있는 까닭은 봉숭아 꽃이나 잎 등에 들어있는 주황염료 때문이다. 꽃 색깔에 관계없이 흰 봉숭아꽃나 초록색 잎으로 물을 들여도 붉은 물이 드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볼수 있는 꽃이나 잎은 매염염료의 성질을 띄는 주황색소를 갖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봉숭아보다 빛깔이 더 진한 장미는 이 주황색소가 없기 때문에 아무리 백반을 많이 넣어도 손톱에 물이 들지 않는다.

진하게 봉숭아 물을 들이려면 일단 손톱을 청결하게 손질한다
치약을 이용해서 손톱을 자라는 방향으로 잘 닦는다
그다음 봉숭아 꽃보다는 잎을 많이 넣는다 약국에서 백반을 사서 잘 으깬다
백반가루와 소금과 봉숭아 잎, 꽃을 잘 찧는다
손톱 위에 많이 놓고 랩으로 싼다 잘 고정되도록 실로 동여맨다
잠을 자고 나면 아침에 실과 랩을 풀고 손을 씻으면 물이 들어있다
아주 빨갛게 들이려면 세 번 정도는 들여야 한다
봉숭아물을 들이면 수술할 때 마취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거짓말이다

 

요즘은 봉숭아가루로 30분만에 쉽게 물을 들이는 방법도 생겼다
1,000원만 있으면 문방구에서 봉숭아물 들이는 키트를 살 수 있다
또 봉숭아로 천도 염색을 한다. 염색할 때는 봉숭아꽃이나 잎을 절구에 넣고 찧은 후 물을 부어 끓인다. 염액에 백반을 타면 색이 더 진해진다. 무명이나 삼베, 모시에는 염색이 잘 안되고 동물성 섬유인 비단에는 굉장히 잘 든다. 봉숭아물이 손톱에 잘 드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단백질 성분인 명주에만 주황색 빛으로 염색되고 무명이나 모시에는 노란색 계열로 염색된다. 그래서 식물성 섬유에 염색을 하려면 우유나 콩물에 담갔다가 건조한 후 사용하면 비단처럼 염색이 잘 된다. 물을 들일 때는 먼저 백반으로 살짝 선매염한 다음에 다시 염색하면 좀 더 색이 짙게 나온다.

 



봉숭아물을 들이는 것은 여인들이 손톱을 아름답게 꾸미려는 뜻도 있지만
붉은 색이 사악한 악귀를 물리치는 힘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누이들이 장독대 뒤에서 봉숭아물을 들일 때에는 나도 졸라대어 열 손가락에 봉숭아물을 들였다. 잠을 험히 자서 손톱에 싸 맨 것이 죄다 빠지는 바람에 물이 잘 안 들었고
나중에는 만세를 부르며 조심스레 자던 생각이 난다.

 



매니큐어 페티큐어가 지천이고 거기에 은빛 금빛 가루도 뿌리고
나비나 꽃들을 수놓기도 하고 마음에 안 들면 금세 지워 버릴 수도 있는 시대이다.
마광수가 좋아하던 모조손톱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손톱의 사회적인 상징은 육체노동을 할 필요가 없다는 표시이다.
즉 상류신분의 전시행위이다.
봉숭아물이 첫눈 올 때까지 남아있으면 첫사랑이 생긴다는 아름다운 미신을 믿고
가슴 설레던 우리의 할머니 어머니 누이들이 그립다.
그들의 고운 꿈이 그들이 꾸었던 꿈보다 아름답다. 그래서 사랑도 다른가보다.

 

고생을 하고 하룻밤이 지나야만 물이 드는 봉숭아물.
그러나 그 물은 시간이 지나가야지만 지울 수 있는 것이다.
어떤 리무버로도 지워지지 않는다.
몸 속에 파고 스며든 물이라 지우려야 지울 길이 없다.
매니큐어는 어떤가? 칠하고 싶을 때 아무 때나 칠하면 된다.
지우고 싶을 때 지우면 감쪽같다.
색깔도 다양하다.
꼭 현대인의 마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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