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디



               김종태





뒤엉켜 살아야 서럽지 않아
제 원하는 곳 아니면 잡초라 뽑네
홀로 있는 잔디는 없어
홀로 불리는 이름도 없네




살았다 할 것 없던
처절한 뗏장의 추억을 안고
허리띠 졸라매고 이 악물면
내 한번 살아보리라 용솟음치네

가장 거친 땅에서도 살아나
밟힐수록 악착 메마를수록 등등
산다는 건 먼지라도 부등켜 잡아
흔들리지 않게 뿌리 내리는 것
떠도는 부평초 신세도 있었는데
한 줌 흙 한 떨기 빛이라면 만세

잔디밭 출입금지 황제대접
깊은 산 골패장 귀족대접
도시 잔디구장 영웅대접
공동묘지 산소 칙사대접
들판 뚝방 풀밭 서민대접
어쩌다 밭고랑 죽일놈 푸대접
길들여지는 사람만큼 기구한 팔자




* 골패장: 골프장을 빗대어 쓴 말

80년대 이후 특히 90년대에 경기도에만
얼마나 많은 골프장이 생겼나
우리나라의 지형상 산을 까뭉개고 굳이
그렇게 많은 골프장을 지어야 하나
골 패는 분들의 골 패는 정책이다
그래서 골프를 모르는 나는 골프장을 골패장이라 부른다

5-6월에 요런 꽃이 피고 곧 까만 씨가 생겨요. 벼과에요
잔디는 먹지도 못하고 약도 안 되고 꽃도 안 예쁘고 사료도 못되고
그럼 뭐에 쓰지요?
쓰는 일은 쓰는 사람에게 달렸지요
우리가 무엇에 쓰느냐의 주인이에요









잔디

              김 성 호





늘 낮은 데로만 이끌어
사람이며 짐승까지 불러와
순간의 신바람을 와락 일으켜
저렇게 천둥벌거숭이 모습을 하는가
머리채를 뽑히고 몸 상하여도
지렁이, 뱀 , 여치, 방아깨비, 개미 떼
몰려왔다 떠날 때마다
네 숨통조차 옥죄고 발가락 잘려도
지평으로만 손길을 이끌면서
도란도란 이슬과 단비를 뿜어내면서
지친 몸 초주검이 되도록
어깨와 가슴이며 등판을 밟혀도
한번을 원망하지 않고
눈부신 꽃무늬 펼치지 않아도
떠난 사람과 짐승들이 돌아와
다사한 몸 부비면서 따사한 손길 내민다.

 









잔디



              김소월





잔디,
잔디,
금잔디,

심심산천에 붙는 불은
가신 님 무덤가에 금잔디.
봄이 왔네, 봄빛이 왔네

버드나무 끝에도 실가지에
봄빛이 왔네, 봄날이 왔네
심심산천에도 금잔디에.


잔디에 누워

/ 유호 작사 / 한용희 작곡

1.풀냄새 피어나는 잔디에 누워
새파란 하늘가 흰 구름 보면
가슴이 저절로 부풀어 올라
즐거워 즐거워 노래불러요



2.우리들 노래소리 하늘에 퍼져
흰 구름 두둥실 흘러가면은
모두 다 일어나 손을 흔들며
즐거워 즐거워 노래불러요

 

고향의 푸른잔디





꿈속에 그려보는 머나먼 고향아 
그 모습 변치 않고 지금도 잘 있느냐
사랑하는 부모형제 어릴 때 같이 놀던 친구
푸르고 푸른 고향의 잔디야
타향살이 서러워도 꿈속에 그려보는
고향 푸르고 푸른 고향의 잔디야
앞마을 냇가에 물레방아 소리
뒷동산 종달새 지저귀는 노래 소리 아 ~
꿈속에 들려오는 어머님의 자장 노래 소리
푸르고 푸른 고향의 잔디야
꿈속에 그려보는 머나먼 고향아
옛 모습 변치 않고 지금도 잘 있느냐
사랑하는 부모형제 어릴 때 같이 놀던 친구
푸르고 푸른 고향의 잔디야
아 꿈속에 들려오는 어머님의 자장 노래 소리
푸르고 푸른 고향의 잔디야

 







잔디와 제국주의



                              황대권





몇 년 전부터 읍내에 나갈 때마다 국도 양편에 잔디밭이 하나둘 늘어나더니 올해는 보이는 곳마다 잔디밭이다.
멀리서 보면 무슨 골프장이 들어섰나 하고 착각할 지경이다.
대체작물을 찾다 찾다 잔디가 돈이 된다니까 너도나도 뛰어든 모양이다.
모르긴 몰라도 골프장 건설과 펜션 바람이 주요하게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하긴 인접해 있는 장성군에서 잔디로 떼돈 벌었다는 소문이 나돈 지도 꽤 오래되었다.
수입농산물 등쌀에 주곡 생산면적이 날로 줄어드는 이 현실을 어찌 바라보아야 할지 정말 난감하다.
이대로 나가다간 주곡은 모두 수입해서 먹고 겨우 부식류나 조경용 농산물만 재배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아무리 돈이 되는 대체작물이라지만 논에 심어진 잔디를 보고 있노라면 은근히 부아가 난다.
도대체 사람들은 이 잔디가 제국주의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나 있을까?
영국인들이 발명하여 세계에 퍼뜨린 것 중에서 영국인들 스스로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잔디이다.
영국은 습기가 많고 겨울에도 온난하여 목초가 자라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영국에선 일찍이 목축과 양모산업이 발달했다.
 영국을 두루 돌아다녀보면 영국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양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목초지가 많다.
17세기 무렵 영국의 귀족들은 잡풀과 관목이 우거진 정원을 걷어내고
그 자리에 한 종류의 목초를 깔고 기하학적인 문양의 정원을 가꾸어 즐기기 시작한다.
아직 풀 베는 기계가 발명되기 전이었으니 엄청난 인력과 비용이 드는 귀족들의 호사취미였던 것이다.
그들은 드넓은 잔디밭 위에서 파티를 열고 장난 삼아 그 위에서 놀 수 있는 여러 가지 놀이를 생각해냈다.

 







오늘날 세계에 퍼진 대부분의 잔디 스포츠는 거의가 영국이 발상지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골프와 축구이다. 그 밖에 하키, 볼링, 테니스, 크리켓, 폴로, 럭비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잔디의 제국주의적 속성은 스포츠에서보다 조경용 잔디에서 더 잘 드러난다.
제국주의의 가장 큰 특성은 폭력과 획일적 지배이다. 잔디밭은 이 두 가지를 모두 갖추었다.
원래 그 자리에 있던 다양한 생물종들을 모조리 제거하는 과정 자체가 엄청난 폭력이다.
잔디를 깐 후에도 다른 풀이나 꽃이 자리잡지 못하게 지속적으로 뽐아내고 약을 치는 것도 폭력이다.
사람들이 휴식과 안정을 느끼는 잔디밭은 사실은 폭력과 억압의 결과인 것이다.

 





1960년대 미국 히피혁명의 이론적 배경이 되었던<일차원적 인간>을 쓴 허버트 마르쿠제는
 어쩌면 미국의 광활한 잔디밭을 보고 힌트를 얻었는지도 모르겠다.
잔디가 제국주의와 관련이 있다는 것은 잔디의 물리적 특성 때문만이 아니다.
실제 역사에 있어서도 한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던 영국은 새로 개척하는 식민지마다
총독부 건물을 지으면서 주위를 잔디로 장식했다.
잔디조경을 가장 열광적으로 받아들인 나라는 미국이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넓은 면적의 잔디밭을 가지고 있는 나라가 미국이다.
세계의 식량창고라는 미국의 밀밭이나 옥수수밭도 잔디밭보다는 그 면적이 작다.
세계 최강의 국가 미국이 최대의 잔디밭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우연의 일치만은 아닐 것이다.

 





한번은 영국인 친구를 따라 웨일즈의 산속에 버려진 그의 집을 구경하러 갔다.
그는 그 집을 떠난 지 6년이 지났다고 했다. 그런데 마당에 들어서는 순간, 나도 모르게 아! 하고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오랫동안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았던 영국식 정원이 너무도 활홀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온갖 풀과 화초  제멋대로 나고 죽고를 반복하면서 기막힌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나는 거기서 확실히 깨달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정원사는 신의 손길이라는 사실을.
오늘날 잔디밭은 지구상에 생물종의 가짓수를 현저히 감소시킬 뿐 아니라
농경지를 잠식하고 강과 대기를 오염시키고 있다.
그럼에도 잔디밭은 그 쓰임새에 비해 너무 과분한 대접을 받고 있다.
이제라도 그 면적을 줄이고 제한된 용도에 맞게 조성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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