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수칼럼] 연애의 맛!


  아들 친구인 상훈 엄마 이야기다. 상훈이 형이 여자 친구를 소개하겠다고 해서 만났단다. 결혼 적령기도 아닌 대학생 커플이라고 생각할 때 상훈 엄마는 굳이 만나지 않아도 되지만, 한편 아들 여자 친구가 궁금했다고 한다.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여자 친구가 들고 나온 가방이 눈에 들어오더란다.

‘어머 명품 가방인데, 내 것이랑 같은 거구나.’

 문제는 집에 돌아와서다. 상훈 엄마는 옷장에 고이 모셔둔 그 가방을 찾았다. 그런데 가방이 있을만한 곳을 다 뒤져도 못 찾았다고 한다. 저녁 늦게 상훈이 형이 들어왔다.

“너 여자 친구 명품 가방 들고 나왔더라!”

“아!”

“내 가방이랑 같더라고. 근데 아무리 찾아도 없네.”

“어, 그거 엄마 껀데. 안 쓰시는 건줄 알고 제가 여자 친구 줬어요.”

이후 이야기는 차마 글로 옮기지 못하겠다. 다만 아들 가진 필자에게 흥분하면서 말한 상훈 엄마의 이 세 마디가 꽂혀 남아 있다.

“내 가방 훔쳐서 여자 친구 갖다 줄줄은 생각도 못한 일이야!”

“너무 화가 나는데. 아들 잘 못 키운 맛을 제대로 봤어!”

“지들이 연애하는데 내가 왜 이런 맛(?)을 봐야 하냐고.”

이후 문자로 주고받은 내용이다. 죽지 않을 정도로만 처벌(?)했다고.
[이지수칼럼] 연애의 맛!
 필자 아들이 연애중이다. 그래선지 참 힘들고(?) 지쳐(?) 보인다. 연애중인 아들 얼굴이 ‘샤방샤방’ 해야 하는데, ‘힘들고 지쳐 보인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될 것이다. 상황인즉 아들은 작년 가을에 군복무를 마치고 올해 복학 준비 중이다. 아들 일과를 보면 주중에는 용돈 벌이 알바를 하고 친구들을 만난다. 주말이면 교회 찬양팀 연습과 중등부 교사와 청년부 활동까지 필자가 보기에도 벅찬(?) 일정을 보낸다.

 아들은 친구가 참 많다. 만나는 친구를 보면 그룹별 분류가 될 정도다. 가령 오늘은 중학교 친구, 내일은 고등학교 친구, 모레는 대학교 친구 또는 선배다. “그 다음은 누구냐?” 물어보면 교회 친구들이다. 심지어 아직 미혼인 목사님이나 전도사님과도 형, 동생 사이처럼 꽤 자주 만난다.

 어떤 때보면 매일 출퇴근하는 직장인보다 더 사교모임(?)이 많아 정신없어 보인다. 저러다가 직장인이 되면 아들 얼굴 보기는 힘들지도 모를 일이다. 가끔 ‘아들이 집이 싫거나, 필자가 싫어서 밖으로 도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래도 좋게 말하면, 사람 좋아해 사교성이 좋은 것이고. 조금 삐딱하게 말하면 그냥 노는 자체를 좋아하는 것이다.

 이 와중에 여자 친구가 생겼다. 여자 친구는 직장인이다. 문제는 시간 많은 아들이 직장인 여자 친구를 배려해야 하고, 여자 친구가 시간이 날 때 마다 함께 한다. 그래서 매주 같은 날 하던 아들 알바가 매번 바뀐다. 이것이 ‘연애 전’과 ‘연애 후’의 큰 변화다. 이제 아들의 시간은 여자 친구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설명이 길었다. 대개 연애를 하면 연애세포가 생성되어 얼굴에 ‘사랑 꽃’이 핀다고 믿는다. 이 믿음은 ‘연애의 맛’을 제대로 못 본 사람들의 환상일까? 아무튼 아들 얼굴은 연애 전보다 더 시들었다. 많이 지쳐 보인다. 그만큼 연애에 쏟는 시간과 정성이 대단하기 때문일 것이다. 연애도 음식처럼 제대로 만든 맛을 내기 위해서 많은 시간과 정성이 필요해 보인다.

 이것이 연애의 맛이 아닐지. 그런데 그 연애의 맛은 당사자만 맛보면 좋은데 그렇지만 않다. 필자가 바라던 바라지 않던 함께 본다는 것이다. 가령, 가족 모임과 행사 날짜를 결정할 때 아들은 여자 친구 일정을 먼저 알아본다. SNS 프로필 사진도 여자 친구다. 아들하고 문자를 주고받다가도 순간순간 놀란다. 지금 내가 누구와 대화를 하고 있는지 싶다.

미세먼지 경보가 있던 날이다.

“미세먼지가 심하니 마스크를 꼭 착용해라.”

“네 엄마”

“엄마! 마스크 새것 하나 더 있어요?”

“왜?”

“여자 친구 주려고요”

“…”

‘이건 뭐지?’ 묘한 생각이 들었다. ‘있다고 해야 하나, 없다고 해야 하나’ 순간 머리를 얼마나 굴렸는지 모른다. 그래도 필자는 무심한 척 하지만 마음이 좀 넓은 느낌을 주고 싶었다.

“그래, 엄마 책상 위에 있어. 갖고 가”

“네, 엄마 고마워요!”

새 마스크를 손에 들고 좋다고 뛰어 나간다. 아들 뒷모습을 보며 필자는 혼자 궁시렁 댔다.

“저 놈 보소. 지가 돈 주고 사지. 내 걸 갖고 가네…”

 그래도 필자는 상훈이 엄마 상황에 비하면 ‘새 발의 피’ 다. 명품 가방과 미세먼지 마스크를 어떻게 비교할 수 있겠는가. 솔직히 “이게 시작인가” 싶어 걱정이 아주 안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들은 필자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워낙 ‘내 것에 대한 집착’이 강한 성격인 필자. 즉 후한이 두려워서라도 ‘엄마의 물건’을 함부로 갖다 바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위로해 본다. (실은 혹시 몰라서 장롱을 열쇠로 잠그고 그 열쇠도 감추긴 했다!)

“연애의 맛은 니들끼리 봐라. 제발!” Ⓒ이지수2019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