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인사로 시작하니 칼럼이 아닌 줄 알았죠. 맞습니다. 칼럼 아닙니다. 이 글은 한 달에 최소 한 번 한경닷컴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기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쓰는 것이죠.




지난 4년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2004년 봄 칼럼니스트에 대한 소원을 한경닷컴에서 첫 발을 딛었고요, 서른의 마지막 나이에서 마흔 중반으로 진입을 하고 있습니다. 15년 대기업, 벤처기업 경험을 가지고 홀로 세상에 나와 열심히 버티고 있습니다.




변변한 무장 없이 세상에 나오니 고생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저보다 훌륭한 분들이 너무 많고, 박사학위에 해외에서 MBA 받은 분들, 비즈니스 내공 9단의 고수들, 범접하기 어려운 높은 위치에 있는 CEO 등 열등감을 갖기에 매우 충분한 조건이었습니다.




사실 초반 그런 문제 때문에 마음고생을 했습니다. 그러나 나름대로 대처를 해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열심히 노력해서 그 분들의 반열에 들어가는 것이죠. 열심히 노력을 하되 그 반열에 동참하는 것은 제가 가는 길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참가하고 싶은 좋은 행사에 자기소개 순서가 있으면 참가 포기를 하는 그런 성격에 무슨 큰일을 하겠습니까?




그래서 고안해 낸 것이 세상을 바라보는데 기존에 주어진 규정, 표준에 얽매이지 말고 ‘나만의 고유한 시각과 철학’을 갖자는 노력이었습니다. 글을 쓸 때도 다른 이의 생각을 인용하기 보다는, 개똥철학 일지라도 저의 생각을 담자는 것이었죠. 처음에는 쉽지 않았습니다. 우선 저의 생각이 맞는지 그렇지 않은지 검증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검증보다 자신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경영이론 경우인데요, 처음에는 ‘식스 시그마’, ‘블루오션 전략’ 같은 경영논리를 그대로 믿고 인용했습니다. 처음에는 다 그런 것이겠죠. 우선 그 논리 자체를 알아야 되니까요. 시간이 지나고 나서 ‘해당 경영이론을 왜 우리가 자주 얘기해야 하는지, 경영이론이 없으면 경영을 못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현재로서의 결론은 경영이론 자체보다, 그것을 수용하는 사람들의 경영내공과 주체적 견해, 통찰력이 앞서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자신의 생각이 튼튼하지 않으면 자주 남에 기대게 되는 셈입니다. 일본의 수 백 년 된 노포는 지금의 경영이론 같은 것을 숙지했을 리 만무합니다. 진짜 튼튼한 기업은 경제 위기 같은 외부적 조건을 탓하지 않습니다. 근 십 수 년 동안 경제가 좋은 적이 있나요?




몇 년 전 별들이 모인 자리에 초대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CEO, 명사들이 많았습니다. 참석을 해보니 저절로 기가 죽더군요. 얼마 전 다시 별들 자리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이번에는 진행까지 덤으로 붙었습니다.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우선 아무리 대기업 경영자이지만 그들은 월급 사장이고, 저는 이미 3년 이상 세상을 미리 경험한 소중한 자산이 있고, 내가 마음대로 운신할 자유에 대한 가치가 그들의 위치보다 크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더 나아가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기’가 어느 정도 진척이 되자 제가 생각하는 많은 것들이-제가 보기에(?)-매우 수준 높은 창조적 견해와 실천이 되어 저의 변변하지 못한 프로필을 극복하는 소중한 자산이 되었습니다.




많이 배우고, 많이 아는 것과 잘 사는 것은 크게 상관이 없어 보입니다. 경제 위기가 쓰나미 처럼 몰려온다 해도 개인들이 주체적 견해를 가지고 있다면 지금처럼 온 나라가 시끄럽지 않을 것입니다. 오래전부터 국가가 한 편으로는 글로벌 인재를 얘기하면서, 한 편으로는 우민화 정책을 펴는 것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한 번 사는 인생인데 내 생각, 내 판단에 전율을 느낄 만큼의 깨달음이 있으면 좋겠지요.




저는 최근 매우 행복합니다. 정기 기고하던 칼럼도 끊고, 원래 강의는 하지 않았고요, 약속도 별로 없으니 하루의 대부분을 저를 위해 사용합니다. 그 만큼 ‘자유’로운 것이죠. 자유의지는 대학 때 부터의 화두입니다. 경제 위기 시대 ‘자유’ 얘기가 너무 한가한 주제가 아니냐고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제된 자유공간에서 더 큰 것들이 만들어 지기도 합니다. ‘착한 일도 하고, 돈도 버는’ 그런 구상도 하고 있고요.




주체적인 자아는 비즈니스도 잘 하지만, 우주와의 교감도 가질 수 있습니다. 자신의 견해를 이끌어 내면서 우주의 한 부분과 만나게 되기도 합니다. 그 희열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큰 기쁨입니다. 다른 이 얘기 하나 꺼내면 공지영 작가의 미모와 건강 비결은 음주와 흡연 그리고 ‘내일은 꼭 세수하고 자야지’ 하는 희망 이렇게 세 가지라고 합니다. 이 말을 듣고 그 행간을 알 수 있으면 내공이 꽤 깊은 분입니다. 그야 비슷하게 저도 지인들이 뭐 하고 사냐고 물으면 ‘막걸리 마시며 산다’고 말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영혼이 없는 것은 공무원뿐만 아니라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 주범은 돈이고 탐욕입니다.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유학자 즉 철학을 아는 관료들이 중앙과 지방의 정치를 맡았습니다. 저는 저자거리에 있는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것이 우주의 이치에 닿아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입니다. 오래 전 선종의 ‘심우도’를 보고 살짝 깨달은 것이죠. 그것이 지금 시대가 얘기하는 ‘차별화’라는 코드에도 부합하는 것 같습니다. 일종의 덤인 셈입니다. 남들이 모두 상향으로 나가는데 거꾸로 가니 말입니다.




이곳에서도 하루에 하나씩 제가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얘기를 꺼낼 까 하는 생각도 있습니다. 이제 올 해도 많이 남지 않았습니다. 어떤 이는 한 해가 한 번의 인생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한 번도 아니고 수 십 번의 인생을 사는데 얼마나 감사한 것이 아니냐 말합니다. 그리고 제가 이룩한 팔 할은 부모님과 지인들의 염원 덕분입니다. 늘 머리 숙여 감사 할 뿐입니다. 새해 새로운 또 한 판의 멋진 인생과 여러분들의 건투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