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출발자는 많고 도착자는 적다. 출발과 도착 사이에 곡절이 많은 까닭이다. 누구는 두려움에 발목잡히고, 누구는 좌절로 주저앉는다. 누구는 무수한 갈래에서 길을 잃고, 누구는 뒷심이 부족해 끝을 밟지 못한다. ‘시작이 절반’이라는 말은 절반쯤만 맞는다. 진짜 절반은 마무리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이다. 2%가 부족해 98%를 망치는 일이 허다하니 말이다.

중국 남북조시대 양나라에 장승요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우군장군과 오흥 태수를 지냈지만 화가로 더 유명했다. 붓만 들면 세상 모든 것을 마치 사진처럼 그렸다. 벼슬을 마친 뒤엔 그림만을 그리며 지냈다. 어느 날 안락사 주지가 그에게 절 벽면에 용을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장승요는 붓을 들어 구름 속에서 곧 날아오를 듯한 용 두마리를 그렸다. 꿈틀대는 몸통, 갑옷 같은 비늘, 날카로운 발톱 그 어디를 봐도 살아 움직이는 용 같았다.

한데 이상하게도 그는 용에 눈동자를 그려넣지 않았다. 사람들이 궁금해 그 이유를 물었다. 그가 답했다. “용에 눈을 그려 넣으면(畵龍點睛) 용이 하늘로 날아가 버릴 것이오.” 하지만 사람들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오히려 눈동자를 빨리 그려넣으라고 독촉했다. 성화에 못이긴 그가 한 마리 용에 눈동자를 그려넣자 바로 용이 벽에서 뛰어나와 비늘을 번뜩이며 하늘로 날아올랐고, 벽에는 눈동자를 그려넣지 않은 용만 남았다. ≪수형기≫에 나오는 얘기다.

화룡점정(畵龍點睛)은 용 그림(畵龍)에 눈동자(睛)를 그려넣는다(點)는 뜻으로, 가장 요긴한 데를 완성해 일을 마무리함을 의미한다. 사소한 것이 전체를 돋보이게 한다는 비유로도 쓰인다. 전반적으로 잘 되었지만 어딘가 한 두 군데 부족한 듯하면 ‘화룡에 점정이 빠졌다’고도 한다.

화룡점정하면 흔히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를 떠올린다. 그 천장화는 미켈란젤로의 재능보다 혼이 담긴 작품이다. 미켈란젤로가 거꾸로 메달려 천장 구석에 한땀한땀 그림을 채워가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친구가 말했다. “여보게, 그 좁은 구석에 그리 공을 들여 그림을 그리는 걸 누가 알아주겠나.” 미켈란젤로가 답했다. “그거야 내가 알지.”

시작은 좀 초라해도 끝이 창대한 게 좋다. 좀 어설퍼도 마무리는 짓는 게 좋다. 매듭을 지어야 그걸 딛고 조금씩 높이 올라간다. 2%가 부족해 98%를 망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끝이 가까울수록 더 마음을 쏟아라. 초심은 시작의 마음이자 끝의 마음이다.
신동열 한경닷컴 칼럼니스트/작가/시인
[바람난 고사성어] 화룡점정(畵龍點睛)-시작보다 끝이 더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