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를 논하자니 딱히 할 얘기도 없거니와, 살아온 궤적을 정리해서 타인에게 얘기할 연배나 위치도 아니다. 그래도 남들과 다른 독특한 분야가 있으니 바로 ‘온라인 커뮤니티’와 관련된 이야기다.

필자가 본격적인 ‘CEO연구가‘의 길에 들어선 것은 벤처기업 재직시의 경험이 시발이 되었다. 대기업 10년 생활을 접고, 벤처열풍의 끝물이던 2000년 정보통신기기를 제조하는 벤처기업에 입사를 했다. ’모럴 해저드(Moral hazard)’란 단어가 알음알음 퍼지던 시절 우리 회사의 대표가 대형 사고를 치고 날라버렸다. 뉴스에서나 봄직한 장면이 내 눈앞에서 펼쳐졌던 것이다. 나는 사전에 그런 징후를 감지하고 다른 회사로 옮겼지만, 회사는 바로 결단이 났고 직원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CEO로서 아니 사람이 양심이 있다면 도저히 그럴 수 없다고 생각했다. 사회적으로 CEO란 용어가 생소한 때에 CEO의 길을 가고자 했던 나는 심한 충격에 휩싸였다. 그 사건이후 CEO란 ‘올바르게 생각하고, 올바르게 행동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분식회계, 배임, 횡령 등 CEO와 기업의 도덕성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 것도 그런 연유에서였다.

더불어 CEO의 꿈을 가진 젊은이들에게 올바른 CEO의 모습을 설파하고 싶었다. 그래서 2002년 1월 ‘나도 최고경영자(CEO)가 될 수 있다’라는 이름의 온라인 커뮤니티를 만들고 활동하기 시작했다.

당시 게재한 운영취지 중에서 내용 하나를 소개한다. “인간의 유한성은 우리에게 때론 좌절과 상처 그리고 나약함을 주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커뮤니티가 힘과 용기를 주고 따뜻한 위로를 함께 나눌 수 있는 그런 인간미가 물씬 풍기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커뮤니티를 만든 후 회원으로 가입하는 사람도 증가하고 이곳에 투여되는 시간도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다. 처음 2년간은 하루에 3~4시간을 커뮤니티 운영에 할애했다. 지인들은 농담반 진담반으로 “돈도 안 되는 것을 왜 그리 열심히 하느냐”고 나무랐다. 그렇지만 뭐 어떤가,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말이다.

처음 커뮤니티를 시작했을 때 운영방법을 잘 몰라 2년 정도 이웃 커뮤니티 행사에 순례를 했다. 타 커뮤니티 시삽들과 인적교류도 나누고 더불어 각 분야 전문가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다. 이 시기를 통해 경영에 대한 개인적인 관점과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뚜렷한 비전을 얻게 되었다. 많은 분들에게 권고하고 싶은 것이 바로 이 점이다. 커뮤니티 활동을 꾸준히 하다보면 갑자기 무슨 성공을 얻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래 생각하고 있던 꿈과 비전이 정교하게 세공되어 결국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명확하게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대학시절 종교 다원주의자로 돌아섰지만 아직도 나의 바탕에는 기독교라는 종교가 깔려있다. 커뮤니티 운영철학은 이렇다. “내가 크게 잘난 것도 없고 사회적인 영향력을 가진 사람도 아니지만, 내 수준에서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면 즐겁고 기쁘지 아니 한가”라는 생각이다. 온라인 시대 내 방식의 기독교적 ‘사랑의 실천’인 셈이다.

자기 것을 내놓지 않으면 올바른 커뮤니티 운영을 할 수 없다. 회원들을 위해서 CEO를 초청해서 강연회도 해야 하고, 이웃 커뮤니티와의 유대도 만들어야 하며, 지속적으로 회원들의 요구사항에 응대해야 한다. 회사에 다니면서 명사를 섭외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섭외기술도 없었거니와, 내 이름을 누가 알 것이며, 우리 커뮤니티가 그리 유명하던가. 회사일 외의 시간은 커뮤니티 운영에 쓰였고, 행사에서 강사비나 뒷풀이 비용이 모자르면 내 호주머니에서 충당해야 했다.

활동 초기에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명함을 나누는 일에 욕심이 많았다. 그런데 얼마 지나고 나서 뭔가 허전하고 이것이 아닌 것 같았다. 얼마 전 한근태 한스컨설팅 대표의 강연 내용 중에 “인맥을 활용하지 않으려고 할 때, 인맥의 가치는 더욱 올라간다”라는 말을 들고 크게 공감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의 역량을 키워 인맥이 더 이상 필요 없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더 나아가 자신의 역량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나누면 더욱 가치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온라인 커뮤니티는 인간관계의 무한한 확장을 가져 올 수 있다. 회원 중에는 해외에 거주하는 분도 많다. 얼마 전 일본에 거주하는 커뮤니티 회원이 내가 하는 비즈니스에 도움을 주고 싶다며 한국의 지인을 소개시켜 준 기억이 있다. 정기모임에는 부산, 대구, 광주 등 전국에서 회원들이 모인다. 중․고등학생, 대학생, 직장인부터 남녀노소의 다양한 사람들이 교류하고 나눔을 가진다. 이런 만남 속에서 새로운 삶을 모색하기도 하고, 새로운 직장과 창업의 길에 뛰어 들기도 한다.

커뮤니티 운영을 하면서 가장 애착을 가지는 부분이 있다. 바로 ‘Future CEO 미래를 꿈꾸는 10대들’이라는 청소년 소모임이다. 나의 청소년 시기에는 인생을 논할 소통창구가 전혀 없었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청소년에 달려있고 또한 빌 게이츠 같은 세계적인 인재도 현재의 청소년에서 태동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각별하게 잘 해주려고 노력한다. 매년 방학 때에는 전국의 청소년들이 모여 오프라인 모임도 가지며 그들만의 네트워크를 만들어 간다.

“저는 세계최고의 CEO를 꿈꾸며 대한민국 모든 기업의 CEO를 한번쯤 다 해보고픈 17세 소녀랍니다. 꿈만 크고 아직 많이 아주 많이 부족하지만 열심히 노력 중입니다. 비록 철없는 10대 소녀이지만 모든 것을 포용할 만큼 큰 꿈이 있기에 결코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 인생을 성공적으로 경영함으로써 기업을 경영하고 나아가 사회를 경영할 겁니다, 그리고 세계를 경영할 겁니다. 대한민국을 세계 최강국으로 만들 겁니다.”- 청소년 회원의 글에서 발췌

커뮤니티의 또 다른 장점은 바로 ‘평등’이다. 오프라인 모임에서 회사의 CEO도 신입사원도 그리고 남녀노소의 구분 없이 계급장 떼고 평등하게 만난다. 경영자는 타 회사 직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자신의 기업을 돌아보게 된다. 직원들도 타 기업의 CEO를 만나면서 기업의 애로사항에 경청하면서 경영자의 입장을 알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렇듯 상호 평등함 속에서 배우고 깨달으며 이것을 각자 현재와 미래를 위한 삶의 자양분으로 축적한다.

3년 전 부터는 이웃 커뮤니티와 매월 공동으로 모임을 갖는다. 많은 운영자들이 커뮤니티를 자신의 소유 개념으로 보는데 반해, 열린 마음으로 회원들을 위해서 다양한 분야의 명사들을 초청하여 강연 등 행사를 진행한다.

이제 커뮤니티는 내 삶과 띄어놓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다. 현재 만나고 이루어지는 많은 일들은 크던 작던 커뮤니티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내가 처음 공식적으로 칼럼을 게재한 인연도 커뮤니티에서의 만남이 시초가 되었고, 신문에 내 글을 게재한 것도 커뮤니티 인연 덕분이다. 그리고 앞으로 이루어지는 일도 많은 부분이 커뮤니티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경영과 CEO를 연구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얻는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의 정체성을 언급하라고 하면 자신 있게 ‘타인을 도와주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타인을 도움으로서 나 자신이 더욱 풍요로워지고 오히려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나눔도 은근히 중독성이 있다.

치기 어린 시절에는 대박의 환상이나 수십억의 자산가를 동경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소박한 성공’과 더불어 ‘일상의 행복’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주변에 사세가 확장되면서 오히려 걱정, 고민이 늘고 힘들어 하는 경영자들을 많이 본다. 그리고 성공을 만들어 가고 입지를 잡아가지만 자신을 도와준 지인들을 외면하거나 망각하는 분들도 본다.

내 이름 석 자 뒤에 많은 타이틀이 붙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바라는 것이 하나 있다면 커뮤니티 시삽 정도 일 것이다. 그 일이 가장 마음에 들고 뿌듯하다. 열심히 노력해서 어느 정도 경제적인 안정이 되면 전국을 순회하면서 회원 분들과 대화하고 그 분들을 도와드리고 싶다.

마지막으로 커뮤니티에 올린 글을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YOU are the C.E.O. of your LIFE ! 우리는 모두 각자 삶의 최고경영자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