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얘기는 냄비, 냄비를 닦는 필자에게 여동생이 한마디 하면서 시작되었다.


   “언니! 이제 그 냄비는 좀 버려!”

 “왜? 아직 쓸 만한데.”

 “코팅이 벗겨지면 중금속 오염되고 발암 물질이..”

 “겉만 좀 벗겨졌지. 속은 괜찮아!”

 “언니 아낄 걸 아껴. 스텐으로 된 걸로 사.”

 “야, 이 냄비 꼭 지금 너 네 형부, 삼식이 같지 않니?”

 “깔깔깔.”

 부인들이 남편들을 향해 집에서 밥 먹는 횟수를 따져 부르는 호칭이 있다. 뿐만 아니라 횟수에 따라 존칭이 달라진다. 집에서 밥 한 끼를 먹으면 “일식씨!”이고 두 끼를 먹으면 “두식이!”로 불린다. 필자 남편처럼 삼 시 세 끼를 집에서 먹으면 “삼식이 00”이라고 한다. 여기서 가장 재미있는 것은 한 끼도 안 먹는 남편을 “영식님(?)”으로 모신다는 것이다.

  필자 남편도 소위 아주 잘나가던 시절, 바쁜 때엔 “영식님!”이었다. 그러다 점차 “일식 씨”가 되고 “두식이”가 되더니 급기야 “삼식이”가 됐다. 그러고 보니 남자의 일생을 생각해 보면 이 네 가지 호칭을 모두 듣는 것 같다. 들을 땐 재미있었는데 글로 써보니 웃을 일이 아니라 좀 씁쓸한 마음이 든다. 이 보다 더 심한 경우도 있는데 은퇴 후 집에 칩거하는 남편을 가리켜 ‘마포불백’이라고 부른다. ‘마포불백’을 풀면 ‘마누라도 포기한 불쌍한 백수’라는 뜻이다.

  “한국 사람은 밥을 먹어야 친해진다.”는 말이 있다. 이렇듯 사람들과의 관계 중심에는 밥이 꼭 있어야 할 정도로 ‘밥’, ‘끼니’에 민감한 편이다. 그렇다보니 이런 저런 <밥>, <끼니>관련해 공감하는 이야기가 많은 것이다. <혼밥>이 그렇다. 혼자 먹는 밥, <혼밥>이라는 새로운 문화가 이슈가 되었고 이제는 식사문화의 한 형태로 자리 잡은 모양새다.

  최근 결혼 정보업체 듀오는 <혼밥>이미지를 알아보기 위해 2030미혼남녀 262명(남116명, 여 146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미혼 남녀가 혼밥을 생각했을 때 가장 많이 떠오른 이미지는 ‘편하고 간편하다(42.4%)’로 가장 많았고 이어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다(23.7%)’, ‘외롭다(18.7%)’와 ‘혼자 즐길 수 있는 멋진 사람이다(5.7%)’가 나왔다. 이외 ‘솔로들이 하는 식사’라고 답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전체 응답자의 71%가 이미 밥을 혼자 즐겨먹는 편이라고 한다. 그 중 남성 78.4%, 여성 65.1%로 혼밥을 즐긴다는 것이다. 그리고 혼밥 횟수는 남성 ‘월 평균 11회 이상’이 38.5%로 1위를 했다. 여성은 ‘매월 2회에서 4회’ 정도라고 한다. 이 조사 결과를 통해서 <혼밥>은 하는 이유와 상황은 다르지만 <혼밥> 하는 사람에 대한 이미지가 과거보다 긍정적으로 변한 것을 알 수 있다.

  문제는 <혼밥>에 부정적인 5060은퇴세대다. 위와 같은 ‘삼식이’ 풍자가 이들을 빗댄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2030세대는 혼밥이 간편해 즐기는 식사문화가 되었는데 5060세대에겐 아직도 낯설고 어색한 것이다. 가령, 부인이 외출 전 정성들여 국물과 반찬을 ‘데워만 먹는 상태’로 준비해 두어도 이들은 밥을 차려 먹는 것에 매우 불편해 한다. 대놓고 노골적으로 싫어한다.

  이는 남편과 부인이 생각하는 <밥>이 근본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이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부인에게 <밥>은 오랫동안 차려온 수많은 밥 중에 그냥 한 끼니를 채우는 밥일 뿐, 다만 부인이 없을 때 먹는 <혼밥>이다. 그래서 남편이 <혼밥>에 자연스럽게 응하고 낯설어도 도전해주길 바란다. 그런데 남편에게 <밥>은 다르다. 남편에게 <밥>은 부인에게 받는 존경심이고 사랑이고 배려라고 믿기 때문이다.

  필자 남편 삼식이도 그렇다. 필자가 외부 강의를 가거나 외출을 했을 때 어김없이 컵라면이 어디 있는지 알면서도 “컵라면 어디 있어?”라고 문자를 보낸다. 이어서 3단 콤보 문자를 보낸다. “어디냐? 뭐하냐? 언제 오냐?” 한마디로 “빨리 와서 밥 주라”는 이야기다.

 냄비 이야기 하다 너무 멀리 온 것 같다. 동생이 버리라는 이 냄비는 코팅이 좀 벗겨지고 낡았지만 처음엔 코팅이 잘된 새 냄비였다. 지금은 삼식이가 된 남편도 처음엔 그랬다. 열심히 살다보니 쭈그러지고 색이 바랜 것이다. 그만큼 필자가 오래, 많이 사용했기 때문이다. 냄비든 삼식이든.

  “개그는 개그일 뿐!”이라는 유행어가 있다. 재미있는 말로 남편이든 아버지든 풍자하여 깊이 공감하며 크게 웃는 것은 참 좋다. 그러나 “개그는 개그일 뿐!” “삶은 삶이다!” 우리가 감사해야할 것들은 잊지 말고 꼭 기억하자. 그 삼식이 덕분에 내가 살아왔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삼식이 알아서 <혼밥>잘 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어쩔 텐가. 하다못해 오래 쓴 낡은 냄비를 쉽게 버리지 못하는 ‘주부의 마음’을 삼식이에게 적용하는 수밖에 방법이 없다.

  냄비를 버릴까?  남편을 버릴까? 언젠가 버리고 헤어지겠지만 지금은 아니기에 다시 그 냄비를 닦고 삼식이가 좋아하는 닭볶음탕을 끓인다. Ⓒjslee3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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