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인들은 세부적으로 분류하는 것을 즐겨 했다. 그중, 그리스인들이 분류했던 사랑은 6가지가 있다.

– 에로스 : 분별없는 불 같은 사랑
– 필리아 : 우정( 친구간, 이성간, 사업상)
– 루투스 : 놀고 즐기는 애정의 사랑
– 프라그마 : 성숙한 사랑(노 부부의 사랑)
– 아가페 : 불특정 다수에 대한 사랑
– 필라우티아 : 자기에 대한 사랑

오늘날, 우리는 상대로부터 성적 욕망의 충족은 물론이고, 필리아의 깊은 우정, 루투스의 유희, 프라그람의 안정감을 제공하면서, 나를 위해 희생하는 아가페적인 사랑까지도 기대하고 있다.

인류 역사상, 과거 어느 문명에서도 유래가 없는 새로운 관점이고, 이 많은 사랑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대단한” 사람을 찾을 수는 있을까?

우리는 상상이나 영화에서 존재하는 어마어마한 사랑이 실존한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고 있다. 그리고, 나의 옆보다는 먼 곳을 바라보며 갈증을 느끼며 살고 있다. 이것은 필라우티아의 부족으로 이어지며, 내가 가진 모든 것에 대한 가치를 부정하는 단계로 이어지게 된다.

이제 나의 옆을 둘러 볼 시간이다. 부인과 아이들을 보며, 내가 이들에게 무엇을 기대했는지를 반성할 시간이다. 그리고 나에 대한 사랑을 회복할 시간이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에 빠지는 것”과 “사랑안에 머무는 것”을 구별하라고 조언하고 있다. 이제 가족이나 친구, 동료와의 사랑에 빠져서 무언가를 기대하지 말고, 그들과의 사랑에 머물면서 말없이 바라보는 서로를 느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