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러니다. 세상의 속도는 무섭게 빨라지는데 인간의 조급증은 되레 심해진다. 컴퓨터 부팅 몇 초 늦다고 모니터를 째려보고, 자판을 두들겨댄다. 컴퓨터가 ‘요즘 인간들 왜 저러나’하고 쑤군대지 않을까 싶다. 인공지능(AI)으로 무장한 컴퓨터 눈치가 좀 빠른가.

맹자의 호연지기(浩然之氣)는 바르고 큰 마음이다.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한 정기(精氣), 한치의 부끄러움 없는 용기, 자잘함에 매이지 않는 자유다. 부동심(不動心)과 호연지기는 맹자 사상의 별미다. 맹자를 성인으로 추앙한 제자 공손추가 스승에게 호연지기를 여쭸다. 몰라서 묻기보다 스스로를 재차 다잡으려는 뜻이 아니었나 싶다. 맹자가 답했다.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렵다. 호연지기는 기의 됨됨이가 지극히 크고 강하고, 올곧으며 의와 도를 짝으로 삼는다. 의와 도는 꾸준히 쌓여서 생기는 것이니. 행위 하나가 부합한다 해서 호연지기를 지니게 되는 건 아니다.”

그러면서 맹자는 공손추에게 송나라 농부 얘기를 들려줬다. 송나라 한 농부가 자기가 심은 곡식의 싹이 이웃집 곡식보다 빨리 자라지 않음을 안타깝게 여겨 그 싹들을 일일이 뽑아올렸다.  그가 집으로 돌아와 말했다. “오늘은 피곤하다. 싹 올라오는 게 더뎌 하나하나 빨리 자라도록 도와줬다.” 아들이 놀라 이튿날 밭으로 달려가 보니 싹들은 이미 말라죽어 있었다. 맹자가 농부 이야기 말미에 한 마디 덧붙였다. “호연지기를 억지로 조장하는 것은 싹을 뽑아 올려주는 것과 같다. 조장하면 무익할 뿐 아니라 해까지 끼친다.”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바람직하지 않은 일을 더 심해지도록 부추긴다는 뜻의 조장(助長)은 《장자》공손추편이 출처다.
무르익기를 기다리지 못하는 조급증이 어디 송나라 농부만의 증상이겠는가. 황금알 낳는 거위 배를 가른 농부,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나그네, 부팅 몇 초 늦다고 모니터 째려보는 당신…. 모두 조급증 환자다. 씨앗의 법칙은 단순하다. 씨앗을 심어야 싹이 트고, 싹이 자라야 꽃을 피우고, 꽃이 져야 열매를 맺는다. 열매 늦게 맺는다고 꽃을 흔들어 지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만물은 익혀야 한다. 와인은 익혀야 명품이 되고, 자식도 익혀야 제구실을 한다. 익힌다는 건 때를 아는 지혜, 참고 견디는 인내,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다.

인간은 늘 안달이다. 이념으로 지역으로 편을 가르려 안달이고, 패거리를 짓지 못해 안달이고, 그제 씨 뿌리고 오늘 싹트지 않는다고 안달이다. 기업은 이미지를 조작해 소비를 자극한다. 필요가 아닌 조작과 조장이 소비욕구를 부추긴다. 조작되고 조장되면서 인간은 하나 둘 ‘나’를 잃어간다. 기다리다 지치는 게 아니라 기다리기도 전에 지친다. 믿음이 작으면 의심이 커진다. 인내가 짧으면 희망이 멀어진다.

조금 더 여유롭자. 조금 더 기다리자. 몇 초에 안달하지 말고, 몇 년에 한숨짓지 말자. 오늘은 아닌 인연이 내일은 귀한 인연이 되고, 오늘 작은 상처가 내일 큰 병을 막아준다. 중턱을 밟지 않고 정상에 오르는 길은 없다. 알이 클수록 오래 품어야 한다. 그래야 생명이 태어난다. 나흘이 길다고 사흘 만에 알을 쪼는 새는 없다. 조금 늦추면 삶이 넉넉해진다. 가볍고 행복해진다. 기다림의 미학이란 이런 거다.

신동열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바람난 고사성어] (8)조장(助長)-무르익기를 기다리지 못하는 조급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