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와 갈등을 겪고 있다는 어머니이다. 그동안의 마음고생이 심했을까. 나이가 30대 후반이라고 하나 40대 중반은 족히 되어 보인다. 마치 독기 품은 코브라처럼 바짝 고개를 쳐들고 눈앞의 적을 노려보고 있는 듯한 모습은 왠지 모를 부담감을 준다.

명국命局에서 유독 돋보이는 자리는 자존심뿐이다. 삶의 유일한 낙樂은 돈을 희롱하는 일이지만 자생력 없는 경제력이라 이리저리 눈치가 보인다. 더구나 자신의 낙樂을 채워주고 이해해줄 남편 자리는 소크라테스 부인 못지않은 악부惡夫의 모습이니 새삼 고개 쳐든 코브라의 모습이 이해가 된다.

충국沖局의 머리라 좋다. 좋은 머리로 학창시절 공​부 좀 하였다고 자랑스러워한다. 좋은 문門을 만나지 못한 정화丁火는 바른 생각보다는 잔머리나 임기응변에 능하다. 이러한 임기응변은 어쩌다 사용하면 삶의 기지가 되지만, 자녀를 키우는 어머니의 입장에서는 자주 사용할수록 결국에는 양치기 엄마가 되고 만다. 구천九天 또한 마음 급한 성질을 더하고 있으니 열 번 잘하다가도 한번 잘못하는 우를 범하는 성품이다.

깨진 그릇은 나름 열심히 채워주지 않으면 항상 허기가 진다. 자연 인생이라는 여정 또한 고달플 수밖에 없다. 그릇이 채워지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자신이 채우는 방법과 타인이 채워주는 방법이다. 남편의 사랑이라도 받는다면 그나마 위로가 되겠지만 언급한 대로 타고난 남편 복은 없으니 결국 자신이 채워야만 한다. 생각이라는 그릇을 바꾸거나 수리하여 주변 환경과 어울리는 노력이 절실하다. 하지만 명국에 타인과의 교감交感에 제일 중요한 소통의 자리가 보이질 않으니 이 또한 쉽지는 않을 것 같다. 허기진 밥그릇을 채워준다고 하는 인생의 멘토를 만나고 있다고 한다. 무늬가 공空맞고 흉凶 문괘門卦에 자형살自刑殺의 멘토라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

삶의 반전이 있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남편의 명국命局을 살펴보았다. 공空 맞은 가택家宅이니 동가식東家食 서가숙西家宿이요 이는 곧 집에 안주인이 없음을 의미한다. 남편 사주에 나타난 아내의 자리는 그저 꿔다 놓은 보릿자루요 천형天型마저 걸렸으니 제 역활은 고사하고 혹시나 하는 기대감은 역시나 맥이 풀려 버린다. 부부간에 있어 남편에게는 아내 자리가 아내에게는 남편의 자리가 제 역활을 못할 때에는 당연 가정생활이 편안할리 없다.

자기 것을 빼앗기기 싫어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타고난 본능에 충실하다는 것이다. 자신의 삶에 유일한 자존감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자연히 오기와 깡이라는 단어와 친해지기 마련이다. 자신의 본능에 충실한 사람들은 함께 사는 주변인들이 피곤하다. 자신이 일방적 지위 관계에 있는 관계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파장이 더하다. 자녀와의 관계는 대표적인 예이다.

여인은 달콤한 이야기만 원할 뿐 쓴 이야기는 도리질을 치면서 거부한다. 어린 시절 부모에게 사랑이나 인정에 굶주렸던 사람들에게서 주로 나타나는 배고픔의 현상이다. 무無자식에 소통 자리가 없는 어머니가 보여주는 당연한 모습이지만 아이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다.

상담 시간이 지날수록 느끼는 점은 대화 속 여인의 언행들이 마치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인생이라는 팔자 방정식을 스스로 꼬이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꼬인 실타래는 때로는 과감히 자르고 다시 매듭을 이어줘야 한다. 문제는 자신을 들여다보는 여유가 없음이다.

무손無孫 무관無官 무인無印인 팔자의 여인에게 가정생활이란 삶의 보너스와도 같다. 어쩌면 결혼이라는 보너스를 선택하지 않는 것이 더 자신의 인생에서 더 좋은 일일 수도 있었다. 사실 이러한 팔자는 수도자修道者라는 삶이 더 어울리기 때문이다.

본성은 쉽사리 변하지 않는다. 지금 이 어머니에게 필요한 것은 현재의 생각에 브레이크를 밟아 방향을 바꾸는 사고의 전환이다. 내비게이션에 잘못 입력된 번지수는 엉뚱한 길이 나오기 마련이다. 인생에도 번지수가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