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부산행’은 개봉도 하기 전, 이미 흥행질주를 예고했다.
온갖 매체가 앞다퉈 홍보 공세에 가담했고, 또 유료시사회라는 이름으로 정식 개봉 며칠 전에 변칙 상영도 했다. 이는 초반 반응을 살펴 개봉관 수를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려는 배급사의 꼼수로 이해 될 수밖에. 이런 변칙상영은 대개 주말 두어 타임이 고작이었는데 ‘부산행’은 달랐다. 금요일까지 하루 더 끼워 넣었다. 100억 원대의 제작비가 투입된 한국형 블록버스터라 투자배급사의 통 큰 지원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물량공세 홍보에 현혹된 필자는 정식 개봉 닷새 전, 불금 퇴근길에 ‘부산행’을 감행했다. 상영 10분 전인데 보란듯이 만석이었다.
'좀비' 그리고 '님비'와 '핌피'
‘부산행’은 국산 영화로는 첫 시도되는 좀비 액션 블록버스터다. 전대 미문의 바이러스가 퍼져 극한 혼란 상황이 전개되는 가운데 부산행 열차에 오른 사람들, 폭 1,435㎜ 궤도 위를 달리는 비좁은 열차 안에서 끔찍하고 처절한 사투가 스피디하게 펼쳐진다. 오로지 살아남기 위하여…
이 영화를 통해 “나의 안전을 위해 너가 죽어라”라는 이기적 심리의 끝을 보았다. 어린아이 앞에서 펼쳐지는 어른들의 얍삽함이 한없이 부끄럽기도 했다. 자신의 안위와 이익만을 위하는 님비(NIMBY)적 성향도 보았다. 님비에서 자유롭지 못한 소시민들의 모습이 좀비(Zombie)를 통해 껍질이 벗겨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부산행’은 이렇듯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개인적, 집단적 이기주의에 좀비를 떼거지로 등장시켜 물고 뜯고 할퀴면서 인간이 어떤 식으로 생존의 윤리를 취해야 하는지 화두를 던지고 있다.
영화에서처럼 좀비(Zombie)는 떼거지로 몰려 다니며 무한 증식한다. 중국에서 좀비는 ‘행시주육(行尸走肉)’으로 표현된다. 즉 ‘나돌아 다니는 고깃덩어리’이다. 당연히 무뇌이며 사람을 물면 물린 사람도 좀비로 변한다.
좀비(Zombie)는 원래 서아프리카 지역의 부두교(Voodoo cult)에서 뱀처럼 생긴 신(Snake-god)을 가리키는 말로, 콩고어로 신을 뜻하는 Nzambi에서 나온 말이다. 이후 일부 아프리카, 카리브해 지역 종교와 공포 이야기들에 나오는 되살아난 시체를 뜻하는 말이 되었고, 비유적으로 반쯤 죽은 것 같은 무기력한 사람을 일컫는 말로 쓰이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현대인이 무방비로 접하는 인터넷과 미디어가 바로 현대의 좀비”라고도 평했다. 이처럼 온라인 상에서 무조건 자신의 의견만을 일방적으로 주장하며 거침없는 내용의 글을 올려 불특정 다수에게 상처를 주는 키보드 전사들 역시 좀비나 다름없다.
'좀비' 그리고 '님비'와 '핌피'
때를 같이하여 사드배치를 놓고 내홍이 깊다. 패가 갈려 설왕설래다. 배치 장소로 지목된 경북 성주 지역민들은 일전도 불사할 태세다. 현지 거리는 온통 ‘사드배치 결사반대’ ‘NO THAAD’로 도배되어 있다. 사드배치와 관련하여 찬반논쟁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사드배치는 찬성하나 내 동네엔 절대 안돼”는 글쎄다.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나 아닌 남의 마당에 설치되기만을 바라는 것은 다분히 자기중심적인 공공주의 결핍 증상, 즉 님비(NIMBY) 현상은 아닌지. 이와는 반대로 얼마 전 신공항을 서로 유치하려고 지역민들끼리 갈등을 겪어가며 ‘제발 내 집 앞마당에 해달라’는 핌피(PIMFY)현상도 지켜 보았다.

현지 지역 주민들의 열불나는 심정은 백번 이해하나, 소신은 엿바꿔 먹은 일부 정치꾼들을 비롯, 지역과 관계없는 전문꾼들이 합세해 무조건 딴지부터 걸고 나오는 것은 옳지 않다. 이런 점에서 님비적 사고에 갇힌 분들께 이기주의의 끝을 잘 보여주는 납량 좀비 블록버스터, ‘부산행’을 강력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