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마을 구례와 섬진강과의 짧은 인연
<섬진강의 옛 문척교 모습>
지금까지 여행을 별로 다니지 않았다. 국내외를 두루 다니며 여행을 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면서도 자주 이동하는 낯선 삶이 피곤할 것이라 생각했다. 청소년기에는 시골 할머니댁에 가끔 갔지만 어른들이 돌아가신 후 나의 시골이 없어었다. 부모님은 내가 중학교 때부터 계속 같은 곳에 살고 계시고 나도 결혼 이후 계속 부천에 살고 있다. 내 삶은 고여있거나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다.

어디든 삶은 비슷하다지만 조금은 다르지 않은가. 아파트와 빌딩이 빽빽히 들어선 도시의 삶과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은 다르지 않은다. 청소년기에는 여행과 방랑을 통해 인생의 깨달음과 구도를 통해 현자가 되는 소설을 즐겨 읽었다. 나도 언젠가 인생을 배우기 위해 여행을 떠나야지 생각했는데 살다보니 그런 시간이 좀체 오지 않았다. 세상을 탐구하고 모색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가까운 일상에 붙잡혔다. 이제라도 낯선 곳으로 떠나온게 다행스럽다.

떠날 때는 유적지나 기념관보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일상과 사람들을 만나고 카메라에 담고 싶었는데 겨울의 자연은 메말라있고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계절 변화없이 비슷하고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와는 달랐다. 자연속에서는 계절이 더욱 뚜렷했다. 하얀 설경을 목표로 떠나지 않았기에 눈덮힌 아름다운 설경은 어디에서도 만나지 못했다.
지리산마을 구례와 섬진강과의 짧은 인연
<구례군 거리에서 >
돌아다니다 보면 오래된 시간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을 만나게 된다. 옛모습을 간직하는 것은 가치를 지키는 것일까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일까. 최근 어느 때보다 시대의 흐름과 트렌드가 빨리 변하고 있지만 흐름을 쫓아가는 일은 힘에 부치다. 제때에 변하지 못하고 옛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떤 운명을 맞게될까.
지리산마을 구례와 섬진강과의 짧은 인연
<섬진강을 흐르는 신, 구 두 개의 문척교>
구례를 올 때 섬진강이 있다는 것을 몰랐는데 가까운 곳에 섬진강이 흐르고 있다고 했다. 말로만 듣던 섬진강이 반가워 구례군청에서 십분 정도 걸어갔다. 수줍어 하면서도 생명력 넘치고 다정한 시골 여인같은 섬진강이 보였다. 강을 가로지르는 오래된 정겨운 다리와 크고 튼튼하게 새로 놓인 또 하나의 다리가 보였다. 정겹지만 낡은 것과 새로운 상황에 맞는 쓰임새와 위용을 갖춘 새 다리 가운데 나는 어디쯤 일까. 안개속에서 뿌옇게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것처럼 나의 미래도 잘 보이지 않았다.
지리산마을 구례와 섬진강과의 짧은 인연
<구례를 흘러가는 섬진강>
안개속에서 깊은 생명력을 품고 흘러가는 섬진강 모습에 빠져 강을 바라보니 자연의 깊은 너지가 느껴졌다. 이름만 듣던 섬진강에 왔다는 기쁨에 신나게 사진을 찍다보니 길고 긴 섬진강의 한부분만 뚝 떼어 잠깐 담는 일이 우스워졌다. 그래도 어느새 섬진강의 정기로 충만해져 자리를 뜨기 아쉬웠지만 다음을 기약하고 돌아 나왔다. 의미있는 만남에는 준비가 필요하다. 언제가 섬진강의 시작과 구비구비 깊은 흐름을 찍게될 날이 있기를 기대하며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