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혼불의 배경지에 세워진 혼불문학관
남원시에서 조금 더 들어가 사매면 노봉리 조용한 시골마을에 있는 혼불문학관에 다녀왔다.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가며 창밖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시골풍경을 사진으로 찍다보니 혼불문학관이다. 노봉리는 나이든 어르신들이 농사지으며 살아가는 노적봉 아래 조용하고 한적한 농촌마을이다.

작가 최명희의 혼불은 명성만 듣고 읽지 못했다. 그래도 실제 공간에서 한 작가와 작품을 생생하게 만나리라는 기대와 호기심이 즐겁게 했다. 혼불문학관에는 소설 혼불의 즐거리가 디오라마 조형물과 오디오로 작중 인물들의 운명과 갈등, 고뇌가 시대적 어려움과 함께 생생하게 재현되 있어 금방 작품세계로 빠져들게 했다.

“나는 원고를 쓸 때면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만 같다
날렵한 끌이나 기능 좋은 쇠붙이를 가지지 못한 나는 그저 온 마음을 사무치게 갈아서
생애를 기울여 한 마디 한 마디 파나가는 것이다.
세월이 가고 시대가 바뀌어도 풍화 마도되지 않는 모국어 몇 모금을 그 자리에
고이게 할 수만 있다면 그리하여 우리 정신의 기둥 하나 세울 수 있다면.”

만년필로 원고지에 글을 썼던 작가 최명희는 말년에 암으로 고생하며
치열하게 작품활동을 하다 52살의 젊은 나이로 사망했다.그녀의
치열한 작가정신과 문학혼이 절절한 기운으로 전달되었다. 가치있는 작품을 만드는 일은
목숨을 걸만큼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에 치열하게 품격있는 작품을 남기셨던
분들에 대한 존경심과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운명이 함께 떠올랐다.
소설 혼불의 배경지에 세워진 혼불문학관
혼불문학관을 나와 소설속 이야기가 담긴 주변 공간을 하나씩 돌아보았다.
노적봉의 기운을 받으며 위풍당당하게 양지 바른 곳에 있는 종가집은 마을이 한눈에 조망되는 곳에 있었다. 가뭄에 대비해 종가집 청암부인이 만든 청호저수지와 대보름에 소원을 비는 달맞이 동산도 보였다. 과거의 모습으로 복원되 남아있는 서도역과 높은분들 위세에 눌리고 가난에 찌들려 살았던 아랫마을 사람들이 살았던 위치를 짚어보며 혼불을 떠올리니 이야기속 등장인물들의 운명과 인생의 짐이 하나씩 보였다.

소를 살피고 들어가는 마을 어르신에게 노봉서원의 위치를 물었더니 지금은 없어졌다며 몇가지 애기를 들려주셨다. 동네어르신 이야기를 통해 소설속 이야기의 맥락을 짚어내고 공간속에
담긴 이야기를 맞춰가며 인물들의 운명과 삶을 파고들어가다 보니 그들 중 어디쯤에 나도
함께 움직이고 있는게 보였다.

동네분과의 대화를 통해 소설속 이야기와 현실이 묘하게 어울리며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야기는 평범한 공간을 특별한 곳으로 만들고 혼불의 노봉리가 내게도 소중한 공간으로
다가왔다. 마을을 천천히 내려가며 소설속 공간을 걷고 싶은 생각에 사매면까지 걸어갔다.

남원시에 의해 옛모습으로 복원된 서도역을 비롯해 이야기속에 공간을 걷다보니 문학소녀 시절로 돌아간 듯 했다.

인간들의 삶과 운명을 세심하게 그려낸 소설을 통해 시대와 사람들의 정신과 운명을 만나고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과정을 통해 문학의 힘과 작가 최명희씨의 열정과 혼불을 느낄 수 있었다.
밤에는 지리산 아래 마을 구례로 이동할 생각으로 남원시로 돌아가는 길 내내 최명희님의 문학혼이 밤하늘의 별처럼 빛을 발하며 감동으로 마음을 채웠다.
소설 혼불의 배경지에 세워진 혼불문학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