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형 사회로 가는 한국’ 시리즈의 첫 번째로 저성장 시대 진입을 예측한 글을 올린 후 많은 분들의 질문이 있었습니다. 최근 급락한 서울 등 수도권 아파트 가격이 어떻게 될 것이냐는 문의가 가장 많았습니다. 필자가 부동산 전문가는 아니어서 직접적인 답변을 못했습니다.

지난달 한국이 일본의 1990년대 초 버블 붕괴기처럼 장기 침체기에 접어들 수 있다는 필자의 지적 이후 비슷한 톤의 기사들이 주요 언론에 연일 등장하고 있습니다. 일부 독자들로부터 가뜩이나 실물 경제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지나치게 비관적인 내용으로 일반인들의 근심을 키우는 게 아니냐는 항의성 지적도 받았습니다.

개인적인 커뮤니티 글이라 저의 시각을 다루고 있지만 미래를 예측하는 일은 조심스러운 것도 사실입니다. 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에게 저의 ‘선의’와 달리 조금이라도 피해를 주지 않을지 염려도 됩니다. 다만 이웃 나라인 일본의 경제 발전 과정을 지켜본 관찰자인 기자 입장에서 다루는 글들인 만큼 저의 ‘짧은 지식’의 산물이며 ‘사견’이란 점을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세계의 어떤 뛰어난 경제 전문가도 주식이나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의 미래를 예측할 수 없습니다. 경제는 워낙 변화무쌍해 미래를 전망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일본이 1990년께 사상 최고의 호황을 누린 뒤 장기침체를 겪으면서 이런 저런 일들이 있었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전해드릴 뿐입니다. 독자 여러분들도 우리의 경제 상황을 판단하는 하나의 단초로만 생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서론이 잠시 길어졌습니다. 저의 두 번째 글로 ‘디플레 시대로 가는 한국, 아파트 가격 전망’을 다뤄볼까 합니다.

2012년 여름 들어서도 유럽발 경제 위기가 이어지면서 한국 경제도 연일 요동치고 있습니다. 주식과 부동산의 동반 하락이 이어져 많은 중산층 국민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중산층의 경우 2000년대 중반 아파트 가격 급등기에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투자한 분들이 가격 하락의 고통이 더 심한 것 같습니다.

오늘은 아파트 가격, 특히 서울의 아파트 가격에 대한 저 나름대로의 생각을 정리해 봅니다. 우리나라에서 서울 및 수도권 아파트 가격은 1997-1998년 외환위기 직후 잠시 하락한 시기를 제외하면 고도 경제성장기에 접어든 1970년대 이후 상승세를 이어왔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중년층 이상 분들은 아파트나 부동산하면 의례 오르는 ‘투자처’로 판단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도 아파트 가격이 주춤해지거나 내리면 곧 오를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런 아파트 가격이 최근 일부 수도권 지역에서 최고가 대비 50% 가까운 수준으로 떨어져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가계 부채는 1000조 원을 앞둘 정도로 심각한 수준입니다. 게다가 한국은행이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을 3.0%로 하향 조정할 정도로 한국경제가 쉽사리 상승 국면으로 회복될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유럽이나 미국, 중국 등 세계 경제를 이끌 주요 경제대국의 경기 침체도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실제로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경우 주요 선진국들의 경제 상황에 큰 영향을 받습니다. 우리나라의 상반기 수출액은 2752억 달러로 전년 대비 0.6% 증가에 그쳤습니다. 올 6월엔 2009년 10월 이후 2년8개월 만에 처음으로 원자재, 자본재, 소비재 수입이 동반 감소했다. 국내 투자 위축과 내수 침체 등 수요 부진이 깊어진 탓입니다.

경기에 민감한 주식은 물론 부동산, 골프장 회원권 등 자산 가격 하락세가 확산되는 양상입니다. 한동안 천정부지로 치솟았던 골프장 회원권 가격도 고점 대비 3분의 1토막 난 곳도 생겨났습니다. 일본도 버블 붕괴기에 골프장 회원권 가격이 폭락한 사례가 있습니다.

디플레이션(물가하락) 현상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곳이 주택시장입니다. 올 6월 전국의 아파트 거래량은 모두 3만7069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32.9% 감소했습니다. 전체 주택 거래량도 29.3% 줄었습니다. 거래량 감소로 서울의 강남권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실거래가도 크게 하락했습니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수도권 주택은 올 6월까지 전월 대비로 8개월째 내리막을 탔습니다. 추가 하락 국면이 예상되면서 매수세가 실종됐기 때문입니다. 가계부채가 급증한 상황에서 주택가격이 하락하면 큰 충격이 예상됩니다.

한국은행 통계를 보면 올 3월 말 가계신용 잔액은 911조4000억 원을 기록했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8년 1분기 677조2000억 원에서 34.6%(234조원) 증가했습니다. 5월 말 국내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은 2006년 10월 이후 가장 높은 0.85%까지 올라 5개월째 상승했습니다. 경기침체 속에 디플레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중산층들이 가계 부채에다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씀씀이를 줄이면서 내수 시장도 꽁꽁 얼어붙고 있습니다. 매년 두자릿수 성장세를 누려온 고급 백화점은 물론 대형 할인점들도 매출이 마이너스로 접어들어 소비시장 위축도 심각한 수준입니다.

그렇다면 자산 디플레 현상이 얼마나 오랜 동안, 어느 수준으로 더 진행될까요. 올 2분기 이후 지인 중 한 두분은 서울의 아파트 가격을 바닥권으로 판단해 새로 구입한 분도 나타났습니다. 이런 분들은 향후 자산 디플레가 그렇게 심하게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일 겁니다.

최근 식사 모임이나 술자리에선 향후 아파트 가격을 놓고 종종 의견이 오갑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경기전망이 워낙 좋지 않아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서울 강남의 경우 고점 대비 20-30%, 용인 수지 일산 등 수도권 외곽의 경우 고점 대비 40-50% 가량 가격이 떨어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본의 예를 들어 저의 답변을 드립니다.

일본 도쿄의 경우 1991년께부터 아파트 가격이 내리막을 탔습니다. 원 ·엔 환율 100대 1000으로 기본으로 하겠습니다. 최근 엔화 강세로 100엔 당 1400원을 넘고 있지만 지난 20여년간 평균 1000원 선을 기본으로 해야 쉽게 가격 비교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도쿄 시내도 지역이나 건축 연도에 따라 워낙 아파트 가격이 달라 일률적으로 가격을 매기긴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도쿄 시내의 고가 아파트 30평을 기준으로 해서 비교해 보겠습니다. 주변의 일본인 지인들의 얘기를 종합한 실제 가격으로 단순화 한 것입니다.

1990년 정점일 경우 도쿄 시내 30평 고가 아파트의 경우 1억 엔(10억 원)을 넘었다고 합니다. 이들 아파트는 경기 침체가 시작된 1991년께부터 슬금슬금 떨어지기 시작해 흔히 ‘잃어버린 10년’으로 불리는 2000년대 초반 평균 30% 수준까지 떨어져 3000만 엔선에 거래됐습니다. 2000년대 중반 고이즈미정권 시절의 짧은 경기 회복기에 50000만-6000만엔 선으로 회복된 후 최근에도 이런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다고 합니다.

정리하자면 20여년의 장기 경기침체기 동안 고점 대비 3분의 1 수준까지 떨어졌다가 3분의 2 수준으로 회복된 후 가격이 유지되고 있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경제 상황이나 부동산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도, 투자 의지 등이 다르기 때문에 아파트 가격이 일본을 따라간다고 장담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경제 발전론이나 경기 싸이클로 볼 때 최근 우리나라 경제가 일본 경제 구조를 10여년 늦게 따라가는 경향이 매우 높은 건 사실이라고 하겠습니다.

지금 아파트를 처분하려는 분이나, 또는 사려는 분들께 약간의 정보가 될 것으로 봅니다. 다만 글로벌 경기 침체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지금이 바닥권이라고 대출을 받아 투기성으로 부동산을 매입하는 것은 삼가하는 게 좋다고 판단됩니다.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