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 한시로 만나다] 내 안의 당신, 김영재
내 안의 당신



김영재



강을 건넜으면 나룻배를 버려야 하듯


당신을 만났으니 나를 버려야 했습니다


내 안에 자리한 당신


바로 나이기 때문입니다



[태헌의 한역]


吾中吾君(오중오군)



渡江應捨舟(도강응사주)


逢君已棄吾(봉군이기오)


吾中吾君兮(오중오군혜)


吾君卽是吾(오군즉시오)



[주석]


* 吾中(오중) : 내 속의, 내 안의. / 吾君(오군) : 그대, 당신.


渡江(도강) : 강을 건너다. / 應(응) : 응당. / 捨舟(사주) : 배를 버리다.


逢君(봉군) : 당신을 만나다. / 已(이) : 이미. / 棄吾(기오) : 나를 버리다.


兮(혜) : ~야! ~여! 호격(呼格) 어기사(語氣詞).


卽是(즉시) : 바로 ~이다, 곧 ~이다.



[직역]


내 안의 당신



강을 건너면 응당 나룻배를 버리듯


당신을 만나 이미 나를 버렸습니다


내 안의 당신이여!


당신이 바로 나이기 때문입니다



[한역 노트]


이 시의 제1행 “강을 건넜으면 나룻배를 버려야 하듯”은, “언덕에 오르면 뗏목을 버려야 한다.”는 뜻의 사벌등안(捨筏登岸)이라는 성어(成語)와 일맥상통한다. 불교에서 유래한 이 성어는, 열반의 언덕에 이르면 그제까지 방편으로 삼았던 정법(正法)이라는 뗏목도 버려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와 비슷하게 장자(莊子)는, “물고기를 잡고 나면 통발을 잊어야 한다.”는 득어망전(得魚忘筌)을 설파(說破)하였다. 이런 개념들은 기본적으로 모종의 근본을 확립하면 지엽적인 것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과, 사소한 일에 얽매여 큰일을 그르쳐서는 안 된다는 점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그런데 이 시는, ‘사벌등안’이나 ‘득어망전’이 현시(顯示)한 ‘목적과 수단의 관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람의 관계’로까지 그 외연(外延)을 확장시켰다는 데에 그 묘미가 있다. ‘내’가 ‘당신’의 사랑을 얻기 위한 수단인 것은 아니지만, ‘내’가 ‘당신’에게 사랑을 얻고자, 혹은 이미 얻은 사랑을 지키고자 ‘나’를 기꺼이 버린다는 것이다.


제2행의 “당신을 만났으니”는, “당신을 알게 되었으니”에서 “당신을 사랑하게 되었으니”라는 의미까지 함축하고 있는 말이다. 이 대목에서 역자는 엉뚱하게도 시적 화자(話者)가 ‘당신’을 사랑하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를 생각해보다가 불현듯 학창시절에 읽은 적이 있는 아래와 같은 옛시조 하나를 떠올려 보게 되었다.



꽃이면 다 고우랴 무향(無香)이면 꽃 아니요


벗이면 다 벗이랴 무정(無情)이면 벗 아니라


아마도 유향유정(有香有情)키는 님뿐인가 (하노라)



님의 사랑을 노래한 무명씨의 이 시조가 역자의 기억에 떠오른 것은 실로 우연이었지만, 역자로서는 정말 너무도 반가운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들뜬 마음에 굳이 이 시조를 빌어 위의 시를 표현해보자면 ‘내’가 사랑하게 된 ‘당신’은 아마도 꽃과 벗을 겸한, 다시 말해 어떤 때는 꽃과 같고 어떤 때는 벗과 같은 사람일 것이다. 이처럼 향기가 있고 정이 있는 사람 앞에서 누가 거친 ‘나’를 고집할 수 있을까? 또한 향기와 정을 품고 있는 그 사람인들 어찌 자기를 고집할까? ‘당신’에게 아집(我執)이 없어 ‘나’도 아집을 버렸으니, 그리하여 내 마음 속에 있는 당신은 이미 나와 마찬가지인 존재가 되었을 것이다. 역자는 원시의 3행과 4행의 뜻을 이렇게 이해한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자니 꼭 남녀 간의 사랑만 그러한 것이 아닌 듯하다. 따지고 보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형태의 사랑이 다 그렇지 않은가? 나를, 혹은 내편만 고집해서는 그 어떠한 사랑도 이룰 수가 없다. 또한 그런 사람에게서는 향기도 정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자기를 버리지 못하는 사람은 그 어떠한 분야에서도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자기는 물론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미안한 얘기지만 그런 사람은 그저 골방에 들어앉아 무엇인가를 깊이 파고들며 연구나 할 일이다. 나도 그런 부류의 사람이 아닐까 싶어 새삼 두려울 따름이다.


역자는 4행으로 된 원시를 오언고시 4구로 재구성하였다. 각 짝수 구에 동자(同字)로 압운하였으며 그 압운자는 ‘吾(오)’이다.


2020. 6. 30.


강성위 한경닷컴 칼럼니스트(hansh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