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왕암으로부터 직선거리상으로 1km남짓 될까 하는 서쪽의 절벽에 利見臺는 위치해있었다. 이견대의 난간에 기대어 본 조망은 포말을 일으키며 부딪치는 푸른 바다와 정겹게 둘러쳐진 나지막한 산들 그리고 초승달모양의 백사장이 한눈에 들어오는 절경이었다.

 

대왕암쪽의 아래쪽 바닷가에서 올려다본 모습이나 이견대에서 대왕암쪽의 바닷가를 바라다본 느낌은, 그 위치나 전망이 꼭 해신당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까 보았던 굿거리의 선입관이 있어서인지는 모르지만, 이전에 祈雨壇으로 쓰였다는 사실이 나로서는 바로 이해가 되었다.

이견대는 주지하다시피 󰡔삼국유사󰡕의 「紀異」편에 실려있는 신라 신문왕과 부친 문무왕의 전설이 얽힌 고적이다. 전설은 오래되었지만, 그동안 이견대는 실전되었다가, 1967년 발굴대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필자도 아주 소싯적 이야기이지만 그 당시 문무대왕해중릉의 발굴내용이 당시의 신문지상이나 매스컴에 대서특필되었던 기억이 남아있을 정도이다. 이견대의 내부에 걸려있는 당시 조사단장 김상기박사가 쓴 <利見臺記>에 의하면 신라五嶽조사단의 발굴로 문무대왕해중릉이 대왕암으로 고증되면서 역사의 부침속에 까맣게 잊혀진채 祈雨壇이나 譯院으로 쓰였던 이곳 이견대도 함께 중건되었다는 내력을 전하고 있다.

 

利見이란 주역의 첫 번째 괘인 乾卦의 九二효사와 九五효사에 나오는 구절이다. 九二효사에서는 용이 밭에 나타났으니 대인을 봄이 이롭다(見龍在田利見大人)라고 했고, 구오효사에서는 용이 하늘위에 날고 있으니 대인을 봄이 이롭다(飛龍在天利見大人)라고 했다. 구이는 밭에 나타난 용이고 구오는 하늘을 훨훨 나는 용으로 구이도 구오도 모두 인간세상에서의 대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구이효와 구오효는 주역의 용어로 應하는 관계에 있다. 다시말해서 서로 정식으로 상응하는 짝으로서, 개인적으로 말하자면 부부의 사이이고 국가적으로 말하자면 군신간의 관계가 이에 해당한다. 그래서 구이효의 대인과 구오효의 대인이 서로 잘 응해서 가정을 화목하게 다스리고 국가를 평화롭게 다스린다는 뜻이다.

바로 이 건괘의 구이효와 구오효의 이상을 우리의 아름다운 전설로 승화시킨 곳이 바로 이견대 대왕암의 전설이다. 삼국유사 紀異편의 만파식적의 고사에 보이는대로, 왜적의 침입을 막다가 스스로 호국의 용이 된 아버지 문무왕은 구오의 비룡이고 아들 신문왕은 見(현)龍에 해당한다. 그래서 신문왕이 선고 문무왕이 계신 대왕암을 바라보니, 바로 구이효사에 見龍在田利見大人이 되고, 또 입장을 달리해서 대왕암에 있는 문무왕의 입장에서 저 멀리 이견대에 찾아온 아들 신문왕을 바라보니 구오효사의 飛龍在天利見大人의 격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 감응의 상서로서 동해룡이 바친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부니 온 나라가 평안해졌다는 萬波息笛의 고사는, 구이와 구오가 상응하고 두 대인이 서로 합심하여 온 천하를 화평하게 다스린다는 건괘의 뜻과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다. 건괘는 여섯 용이 조화를 이루지 못해서 대립 갈등하는 양상을 늘 걱정하지만, 이견대의 고사는 갈등을 넘어선 위대한 조화를 말하고 있다. 진심은 통한다. 그것이 인간 세상이고, 이 세상이 아름다운 까닭이다.

그동안 보고 싶었던 이견대를 觀光하는 동안 이천년의 시간을 넘어 그 뜨거운 마음이 전해왔다. 돌아오는 길 내내 내마음속에는 이견대에 얽혀있는 효심과 애국심과 불심에 온 천지가 다 감응하는 만파식적의 아름다운 전설이 처음부터 끝까지 주역의 건괘를 배경으로 아름답고 장엄하게 펼쳐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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