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에서 언제든 대선 경쟁에 가세할 수 있는 잠재적 후보군인 이른바 ‘잠룡’들이 꿈틀대고 있다.” 어느 신문 기사의 한토막이다. 현재 매스컴에서 사용되는 잠룡이란 개념의 의미는 ‘대권을 노리고 있는 정치인’쯤으로 정의될 수 있다. 아직 대통령은 아니다. 그러나 대통령을 꿈꾸거나 기회를 노리고 있는 야심만만한 정치인이면 우리 사회에서는 잠룡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는 본래 주역이란 책의 맨 첫부분에 나오는 乾卦 初九爻辭에 나오는 말로 ‘잠겨있는 용이나 아직 쓰지 말라(潛龍勿用)’는 문장에서 따온 말이다. 潛龍이란 글자의 뜻 그대로는 물속에 잠겨있는 용이란 뜻으로서, 그것이 뜻하는 의미는 간단히 말해서 아직 때가 아니니 지금은 흉하다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잠겨있는 용이니 아직 쓰지말라고 표현한 것이다. 때가 아니라는 말은 전통사회에서 많이 쓰던 말로, 한마디로 말하면 현재의 운수는 흉하다는 것이다. 이를 잠겨있는 용에 비유해서 다음의 때를 기약하며 덕을 기르면서 은인자중하고 있으라고 충고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 潛龍勿用은 흉하다는 듣기 싫은 말을 절대로 상대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 상대에게 힘과 꿈을 잃지 않게 해준다. 이런 면에서 이는 내가 아는 한 주역의 괘효사에서 가장 후덕한 말중의 하나이다.

진정한 잠룡은 성현의 덕을 지닌 은군자를 말한다. 잠룡에 대해 공자는 주역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初九曰潛龍勿用은 何謂也오. 子ㅣ曰龍德而隱者也ㅣ니 不易乎世하며 不成乎名하야 遯世无悶하며 不見是而无悶하야 樂則行之하고 憂則違之하야 確乎其不可拔이 潛龍也ㅣ라.

초구에서 잠긴 용이니 쓰지 말라(潛龍勿用)함은 무엇을 말함인가?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용의 덕을 지녔으되 은둔한 자이니 세상에 의해 자신의 신념을 바꾸지 아니하며 이름을 이루지 못하여 세상에서 은둔해있어도 근심하지 아니하며 인정을 받지 못해도 근심하지 아니하여 자신이 즐거우면 누가 뭐라든 행하고 걱정스러우면 남들과는 달리 소신대로 해서 확고하여 움직일 수 없는 이가 ‘잠룡’이라.




그런데 대권을 노리는 정치인이면 이 말을 쓸 자격이 있을까? 현재에 쓰이는 맥락에서의 잠룡이란 대권을 꿈꾸는 야심가들이나 기회주의자들일 뿐이지, 그들은 결코 용이 될 수 없다. 대부분은 그저 욕망의 명령에 따르고 있을 뿐, 물러나 은둔하면서 용의 덕을 기르고 있는 잠룡은 아니다. 이것이 잠룡과 정치꾼의 가장 큰 본질적인 차이이다.

또 위에서 보다시피 잠룡은 시대에 영합하지 않는 특성을 지닌다. 그만한 덕성과 역량을 지니고 현실에 물러나 숨어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인기에 영합하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대중의 스타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사실 잠룡은 스스로 시대를 버리고서 잠룡의 길을 택한 것이다. 이에 비해 대권주자들은 시대에 영합하지 못해서 안달이다. 맨날 여론조사 결과만 가지고 만지작거리고 있을 뿐이다. 이것이 잠룡과 대권주자들과의 가장 큰 행태상의 차이이다.

그래서 그들은 시대에 따라 명멸하는 작은 부나방들일 뿐이다. 왜냐면 位勢는 있지만 가장 중요한 덕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꼭 그들의 행태는 유행에 따라 피고지는 연예인들의 속성을 닮아가고 있다. 반짝 등장했다가 인기가 시들면 어디로 갔는지 흔적이 없어진다. 아직 나설 때가 아니라면 물속에 잠겨서 덕을 기르고있는 잠룡이 되거나, 욕심을 버리고 국정을 자문하는 원로의 역할을 하지도 못한채, 그저 쓰레기통속에 쳐박힌 일회용품처럼 그 존재가 없어져버린다. 천민민주주의의 한 단면이자, 우리 사회의 불행이다. 현재에 불만만을 갖거나 허황된 욕망에만 사로잡혀있지 말고, 잠룡이 되는 지혜를 배울 필요가 있다. 그래야 다음에 -건괘의 九四와 九五에 이르는- 飛躍의 기회를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