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박팀장은 고민이 많다. 다음 달이 연말이다. 국내경기기 L자형 침체에 접어들었다는 기사가 심심찮게 보도되고 있다. 실적이 예전보다 못하다. 박팀장은 개인적으로 내년도에 승진도 내심 기대하고 있다. 또한 푸짐한 성과급을 받아 팀원들에게 생색도 내고 주름진 가정살림에도 보탬이 되려고 했던 계획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는 걱정이 앞서고 있다.

예전 같으면 이런 것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저녁에 소주잔을 기울이며 회유와 협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2018년도 7월부터 시행한 ‘주52시간 근무제’와 금년도 7월 16일부터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되었다. 박팀장은 이 두 가지 제도가 자신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박팀장은 팀원 시절을 기억해 본다. 팀장께서 월말에 다급하게 실적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이면, 모든 것을 뒤로 하고 목표 달성을 위해 밤새도록 최선을 다했다. 이제는 한 편의 역사드라마가 되었다. 요즘 야근하자고 하면 퇴출대상 1호가 된다. 또 업무처리가 미흡하다고 야단맞은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아픈 만큼 성장한다’라는 말로 위로를 받았다. 과연 상처 입은 만큼 나의 발전이 있었던 것일까? 어떻게 보면 이런 반문도 사치스러울 수 있다. 그냥 당연한 것이라고 여겼던 시절이었다. 요즘 이렇게 한다면 ‘직장내 괴롭힘 방지법’ 위반이 된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임에는 틀림이 없다.

어제의 진실이 오늘은 아닐 수도 있다. 빠른 변화의 속도는 무섭게 느껴질 때도 있다. 박팀장은 어떻게 이 난국을 헤쳐 나갈 것인가 곰곰이 생각해 본다. 몇일 전 김팀장이 저녁을 먹으면서 울먹이며 하소연하던 일이 기억났다. 사무실에서 “일을 이렇게 밖에 못해. 이렇게 해서 어떻게 험지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어?”라고 팀원에게 호통을 쳤다고 토로했다. 후배의 앞날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그랬다고 한다.

다음날 사무실 분위기는 벌통을 건드린 것처럼 여기저기서 웅성거렸다. 억울함 또는 부당함을 무기명으로 게시하는 블라인드에 어제 장면이 고스란이 재연되어 있었다.

“그 팀장이 누구야?”

“그렇다고 그것을 블라인드에 올리는 그 친구는 또 누굴까?.”

“세상 무서워서 이제는 팀장도 못할 것 같애.”

“차라리 나 혼자 일하는 것이 훨씬 더 편하지”

박팀장은 어떻게 해야 할지 방향 감각을 잃었다. 최근 밀레니얼 세대와 소통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함께 고민하는 컨설턴트를 찾았다. 사정 얘기를 가감없이 했다. 컨설턴트는 빙그레 웃으며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컨설턴트가 첫 번째로 꺼낸 질문은 ‘조언과 잔소리의 차이는 무엇인가?’였다. 해법으로 TV 프로그램을 보여주었다. ‘유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한 초등학교 학생이 “잔소리는 왠지 모르게 기분 나쁜데, 충고는 더 기분 나빠요.”라고 명쾌하게 정의를 내렸다. 조언과 잔소리 두 가지 모두 하지 말아 달라는 부탁까지 덧붙였다.

리더는 조언과 충고라는 명분으로 지시를 합리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모종건의 시에서도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하면 ‘충고’를 하거나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안된다’고 말한다고 지적한다. 화자(話者)의 마음을 짓뭉갠다고 한탄을 한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 얘기만 들어주세요.’라고 애원하는 듯한 시 구절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악보에는 숨표와 쉼표가 있다. 숨표는 숨을 쉬는 곳이다. 쉼표는 소리를 내지 않고 음악을 표현한다. 리더는 쉼표가 필요하다. 쉼호흡 한 번 하자. 하고 싶은 말은 정제된 말로 전달하자. 조신영은 ‘경청’에서 ‘말을 배우는 데는 2년이 걸리고, 침묵을 배우는 데는 60년이 걸린다’고 표현하였다. 리더가 무조건적으로 말을 먼저 해야 하는 건가? 리더의 말이 반드시 해법이 될 수 있을까?

리더가 먼저 듣자. 왜 실적이 이렇게 되었는지, 앞으로 계획은 어떠한지 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의사가 먼저 처방을 내리지는 않는다. 환자가 자신의 상태에 대해 의사에게 시시콜콜 설명한다. 그런 다음에 의사는 진단을 하고 처방전을 써 내려간다. 리더도 의사이다. 말하는 것을 절제해 보자. 밀레니얼 세대도 생각이 있다.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와 원인이 무엇인지 들어보고 처방을 내려도 늦지 않다. 정말 야근을 해야 한다면 함께 방법론을 찾아 보자. 밀레니얼 세대가 무조건 야근을 배척하는 것은 아니다. 밀레니얼 세대는 합리적이며, 공정을 최우선 가치로 꼽고 있다. 이 점을 인정하자.

둘째, 업무처리절차의 다이어트이다. 지금까지 해 왔던 관행을 고집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보자. 책상에 오래 앉아 있다고 공부를 잘 하는 것은 아니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문서 작성을 최대한 줄이자. 논의가 우선이다. 최대공약수를 찾아 방향성을 설정하자. 다양한 아이디어가 창출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자. 이래야 밀레니얼 세대의 말문이 열린다. 주52시간 제도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말하는 것은 지식의 영역이다. 듣는 것은 지혜의 영역이다.’라는 말이 있다. 빙산의 구각(九角)에 잠재된 지혜를 일깨워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하는 것이 리더의 할일이다. 리더에게는 경청이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리더의 과부하’는 지적사항으로 자주 거론된다. 열심히 들어 주고 함께 고민하는 ‘리더의 경청’을 왈가왈부하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 아라비아 속담에 ‘듣고 있으면 내가 이득이고, 말하고 있으면 남이 이득을 얻는다.’라는 말이 있다. 말을 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값진 것은 상대방의 말을 잘 듣고, 바르게 이해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경청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게 하는 속담이다. 리더의 경청은 밀레니얼 세대의 사기를 북돋아 주는 훌륭한 ‘동기부여’ 방법이다.

셋째, 지식의 유효기간이다. 이제까지 박팀장이 학습하고 경험하였던 지식과 지혜는 4차 산업혁명시대의 문제해결방법으로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3차 산업혁명까지는 흔히 불편(不便)과 불만(不滿)사항을 주로 개선하였다. 사람의 힘을 대신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4차 산업혁명은 불안(不安)한 것이 중점이다. 사람의 지능을 발전시키고 있다. 3차 산업혁명까지는 육체적 노동을 대신한 것이었다면, 4차 산업혁명은 기하급수적으로 생성되고 있는 데이터를 중심으로 사람을 이해하려고 한다. 그 만큼 세상이 달라진 것이다. 내 지식의 유효기간이 만료되었다면 이타적 지식과 지혜를 빌려야 한다. ‘Latte is horse(나 때는 말이야)'라는 웃질 못할 꼰대적 표현은 이제 훈계로서 가치를 잃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밀레니얼 세대는 ‘디지털 원주민’이다. 박팀장은 ‘디지털 이주민’이다. 자라 온 환경이 다르다. 다름을 인정하자. 잘 하는 것은 배우자. 내 것이 최고라는 아집을 버리자. 한 번의 졸업장으로 평생 우려먹던 시절은 끝났다. 평생교육시대이다. 70여년 남짓 하던 평균수명이 이제는 100세를 향하고 있다. 많은 것이 변했다. 변한 것을 인지해야 한다. 직장에서 만나는 밀레니얼 세대는 가정으로 돌아가면 자녀일 수도 , 동생일 수도 있다. 일로 만나는 관계에 앞서 인간적인 면을 이해하자. 밀레니얼 세대와 원활한 소통을 위해 사회적 선배인 리더가 먼저 마음을 문을 열자.

 

박창동 HRD박사(KDB산업은행 전문위원/한국HR협회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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