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모두가 잠든 시간,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 새벽에 홀로 일어나,

오래 된 책을 읽거나 하얀 종이에 펜으로 글씨를 써 보는 시간.



그 때 앉아 있는 책상을 “존재의 테이블”이라고 누군가 말했습니다.

존재의 테이블은, 자기를 발견하고, 자신을 생각하고, 자아(自我)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의 장소라고 합니다.

꼭, 그런 새벽이 아니라도 존재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는 시간과 장소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며칠 전, 청와대 넘어 평창동 가는 언덕, 아마 부암동 근처인듯 합니다.

깊숙히 들어가고 높이 올라간 비탈 길 옆에, 지은지 얼마 되지 않은 한옥집에서 개최하는 음악회에 초대되어, 물어물어 찾아 갔습니다.

그 안에, 30명도 채 들어 가기 힘든, 비좁은 음악당이 있었습니다. 2m 앞에 오보에와 기타, 첼로가 놓어 있었습니다. 꽁지머리를 한 사회자(오보에 연주자)의 진행으로 “모짜르트의 마술피리를 위한 변주곡(?)”을 기타 연주로 듣고, 바하의 무반주 첼로 독주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듣기만 한 게 아니라 보기도 했습니다.

아름다운 모습과 미칠듯한 열정으로, 온몸을 떨면서 연주하는 선율을, 그렇게 가까이 보면서 들은 건 처음이었습니다.

두어시간의 음악회가 끝나고 간단한 음식을 먹으며 시(詩) 낭송이 이어졌고, 음악가의 생애와, 예술가들의 만남을 이야기 하는 걸 보았습니다. 오보에 연주자께서 “예술은 우정”이라는 말을 전해 주었습니다. 아주 오래된 옛날의 음악가를 만날 수 있고 그들과 친해질 수 있고, 그들을 아는 사람들과 사귈 수 있고, 거기엔 詩와 그림과 사진을 함께 담을 수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어느 병원의 원장선생님께서 유명한 방송 MC의 저서를 수십 권 사서 나누어 주셨습니다. 출판 기념회 겸, 음악회 겸, 좋은 분들과의 만남 겸…



그렇게 소중한 자리를 무료로 마련해 주신 분은 오보에 연주자의 부인이신데 호스피스 활동(병약자, 빈민층, 말기 환자, 그들의 가족 등을 무료로 돕는 일)을 하고 계신답니다.



그곳은 “존재의 집”이었습니다.





오늘,



충북 보은 근처, 관기라는 마을의 서당골에서 강의가 있어 다녀 왔습니다.

산 중턱에쯤 올라 가는데 할머님 두 분이 시장에 다녀 오신다며 보따리를 길 옆에 쌓아 놓은 채 차를 세우셨습니다. 가는 방향이겠거니 하며 태워 드렸는데, 가다 보니 방향이 달랐습니다. 이왕 태워 드렸으니 그분들의 집까지 모셔 드려야 할 것 같아 산길을 따라 끝없이 올라 갔습니다. 4~5 km 정도 올라 가니 마을이 보였습니다.



40 여채의 집들이 모여 사는 산 꼭대기, 비탈엔 마을회관이 두 개나 있는 마을이 있었습니다. 길을 사이에 두고 한 쪽은 경상도 마을이요 다른 한 편은 충청도 마을이라고 합니다. 할머님들의 자세한(?) 설명을 들으며, 작은 마을을 꼭 그렇게 나뉘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마을회관을 짓고 운영하는 예산(재정)이 다르기 때문에 할 수 없다고 할머님들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각 도(道)의 예산을 그냥 합해, 한 채의 집만 지어서, 어른들이 한 곳에 모여 말씀 나누게 만들고, 들어 간 재정은 인원 수(數) 대로 나누어 계산하면 될 텐데. 얼마 되지도 않을 돈을 매번 나누고 쪼개고 하니, 그런 일에 들어 가는 인건비가 더 들 것 같았습니다.



마음이나 행동, 함께 협력해야 할 일에서도, 매일 매일 살아 가는 일상에서 “항상 경상도와 충청도를 인식하고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어처구니 없게 여겨졌습니다. 함께 어울려 모를 내고, 밭을 매고, 풀밭을 뜯고 소를 기르며, 산나물을 캐고 씨앗을 뿌리며 함께 일하는 사람들끼리 자나 깨나 경상도와 충청도를 이야기 한다고 상상하니 정말 답답했습니다.



누가 그런 언덕에 지도를 그리면서 도계(道界)를 그어 놓았는지 모르지만, 보이지도 않는 선(線)에 의해 돈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고, 생각과 행동을 나누고 살아 간다고 생각하니 정말 딱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거기 사시는 어른들은, 소견머리 없는 제가 지레짐작으로 여기듯이, 그렇게 작은 생각이나 좁은 소견으로 생활하지 않을 거라고 믿습니다. 거기에 놓인 산은 높고 웅장했습니다. 거기 사시는 어른들의 마음과 생각의 크기 또한 그만큼 웅대하고 장엄하리라 여겨집니다.

봄이 오면 가족들과 꼭 한 번 다시 가고 싶습니다.



좁은 마당에서 차를 돌려 나올 때까지 발걸음을 떼지 않으시던 할머님들께서는 꾸부정한 허리를 억지로 펴신 채, 손을 흔들며 여름에 놀러 오라고 하셨습니다.



천천히 내려 오면서 “존재의 마당” 을 느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