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섭 코치 은퇴로 '한국 경보의 맏형' 된 최병광
"경보가 비인기 종목이지만, 힘써 주시는 분 많아…그분들 위해서라도 최선을"
'5회 연속 세계선수권' 최병광 "20대의 나보다 지금이 강하다"
2013년 모스크바 세계육상선수권대회부터 지금까지 육상 메이저대회가 열리는 장소에는 늘 최병광(31·삼성전자)이 있었다.

최병광은 7월 15일 미국 오리건주 유진에서 개막하는 세계육상선수권에도 출전한다.

그가 출전하는 남자 20㎞ 경보는 한국시간으로 16일 오전 7시 10분에 열린다.

2013년 모스크바(38위), 2015년 베이징(45위), 2017년 런던(31위), 2019년 도하(21위)에 이은 5회 연속 세계육상선수권 출전이다.

최병광은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57위), 지난해 열린 2020 도쿄올림픽(37위)에도 출전했다.

속초에서 훈련 중인 최병광은 27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꾸준히 기준 기록을 통과하며 메이저대회에 출전한 건 내게도 무척 의미 있는 일"이라고 말하면서도 "이제는 '메이저 대회 출전'에만 만족할 수는 없다.

이번 세계선수권에서는 성과를 내고 싶다"고 했다.

최병광은 올해 4월 19일 대구에서 열린 전국종별육상경기선수권대회 경보 20㎞에서 1시간20분29초의 개인 최고 기록을 세우며 유진 세계선수권 기준 기록(1시간21분00초)을 통과했다.

그는 "30대에 접어들었지만, 20대의 나보다 더 빠르고 강해졌다"며 "1시간19분대 진입을 목표로 유진 세계선수권을 준비하고 있다.

7월 유진의 날씨는 덥고 습하지 않다고 한다.

유진 세계선수권을 '과거의 나를 넘어선 대회'로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5회 연속 세계선수권' 최병광 "20대의 나보다 지금이 강하다"
앞선 네 차례 세계선수권에 출전할 때 최병광의 옆에는 '한국 경보의 역사' 김현섭(37)이 있었다.

김현섭은 2007 오사카(20위), 2009 베를린(31위), 2011 대구(3위), 2013년 모스크바(9위), 2015년 베이징(10위), 2017년 런던(26위), 2019년 도하(37위) 등 한국 육상 사상 최다인 '7회 연속 세계선수권 출전'의 기록을 썼다.

김현섭은 세계육상선수권에서 메달을 딴 유일한 한국 선수이기도 하다.

'한국 최초 세계선수권 3연속 톱10' 기록도 세웠다.

하지만, 김현섭은 여전히 최병광 옆을 지키고 있다.

지난해 은퇴한 김현섭은 삼성전자 코치로 부임했고, 현재 속초에서 최병광과 함께 훈련하고 있다.

김현섭 코치는 "최병광은 국제대회 경험이 많은 선수다.

유진 세계선수권대회에 맞춰 몸 상태를 끌어올리고 있다"며 "올해 기록도 좋고, 훈련 성과도 만족스럽다.

유진에서 좋은 기록을 낼 것"이라고 기대했다.

'5회 연속 세계선수권' 최병광 "20대의 나보다 지금이 강하다"
김현섭 코치가 은퇴하면서 최병광은 '한국 경보의 맏형'이 됐다.

그는 "주요 국제대회에 나선 '1세대' 박칠성 선배, 김현섭 코치님 덕에 나도 '세계 무대'를 바라봤다"며 "김현섭 코치께 내가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코치님의 기록을 넘어서는 것 아닐까.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내가 국제대회에 꾸준히 출전하고, 기록을 경신해나가야 한다"고 '맏형의 책임감'을 화두에 올렸다.

남자 20㎞ 경보 한국 기록은 김현섭 코치가 2015년 3월에 작성한 1시간19분13초다.

최병광은 "솔직히 지난해까지만 해도 '내가 1시간19분대에 진입할 수 있을까.

1시간20분대가 내 한계가 아닐까'라고 생각했다"고 털어놓은 뒤 "올해 4월 내 개인 기록을 깨고, 훈련에서도 성과가 보이면서 '19분대'가 보이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는 "유진 세계선수권에는 나보다 빠르게 걷는 선수, 나와 기록이 비슷한 선수들이 출전한다.

그 선수들과 경쟁하며 '한 바퀴 한 바퀴 1초씩 줄여나가면' 1시간19분대 진입이 가능할 것"이라며 "1시간19분대에 진입하면 다시 체계적으로 훈련해 18분대, 17분대까지 노려보겠다"고 다짐했다.

'5회 연속 세계선수권' 최병광 "20대의 나보다 지금이 강하다"
경보는 비인기 스포츠 육상에서도 주목도가 떨어지는 종목이다.

최병광은 올림픽 세계선수권 등 메이저 대회에 출전한 '1세대' 박칠성, 김현섭을 보며 외로움을 견뎠다.

사실 그는 서울체고 1학년 때까지 800m를 주 종목으로 하는 중거리 선수였다.

고교 2학년 때 경보 코치가 "경보 선수에 어울리는 체형이다"라고 조언했지만 경보 선수를 특기자로 뽑지 않는 현실 탓에 종목 전환을 고민했다.

하지만 경보 전환 후 성적이 두드러지자 경보 전문가가 모인 삼성전자 육상단이 관심을 보였고, 최병광은 진로에 대한 고민 없이 경보에 전념했다.

최병광의 부모는 선교사다.

최병광이 서울체중 2학년 때 아버지 최호식 씨와 어머니 김애식 씨는 선교활동을 위해 중국으로 떠났다.

부모는 "중국으로 가서 공부를 시작하자"고 했지만 최병광은 육상을 택했다.

최병광은 부모와 동생들이 중국에서 머문 5년 동안 홀로 지냈다.

그는 "가끔 외로움을 느끼긴 했지만 서로의 신념에 따라 생활한 것"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5남매의 장남인 최병광은 길고 고독한 레이스를 견뎠고, 이제 자랑스러운 '첫째'가 됐다.

한국 경보에서도 최병광은 '첫째 아들' 역할을 하고 있다.

최병광은 "김현섭 코치님이 7회 연속 세계선수권에 출전했고, 내가 이번에 5번째 세계선수권에 출전하는 걸 아는 분이 많지 않을 것이다.

경보가 비인기 종목인 건 사실이고,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는 "그래도 한국 경보를 위해 힘써주시는 분이 많다.

최준우 삼성전자 육상단 단장님이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셔서, 훈련 환경이 좋아졌다.

이런 분들을 위해서라도 힘을 내겠다"고 다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