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모비스에서 좋은 일만 많았다…나는 복이 많은 사람"
"선수들, 조동현 감독 잘 따라 팀 문화 지켜줬으면"
한발 물러서는 '만수' 유재학 감독 "숨 한 번 돌릴 때가 됐죠"
"오래 했잖아요.

이제 숨을 한 번 돌릴 때가 됐죠."
18년간 잡아 온 프로농구 울산 현대모비스의 지휘봉을 내려놓는 유재학(59) 감독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현대모비스는 20일 유재학 감독이 사령탑에서 물러나 총감독의 역할을 수행한다고 발표했다.

조동현 수석코치가 신임 감독, 양동근 코치가 수석코치를 맡는다.

'만 가지의 수를 가졌다'고 해서 '만수'로 불리는 유 감독은 2004년부터 현대모비스를 이끈 KBL 단일구단 최장수 사령탑이다.

하지만 약 1년의 계약 기간을 남겨놓고 돌연 감독직에서 물러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1998년 역대 최연소인 35살의 나이에 대우증권(현 대구 한국가스공사) 감독으로 선임된 뒤 24년간 한 시즌도 쉬지 않았던 그가 정든 벤치를 떠나는 것이다.

현재 가족과 미국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유 감독은 21일 연합뉴스와 국제 통화에서 "지난 시즌부터 숨을 돌릴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약 기간이 1년 남았는데, 나도 그 이후에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할 시간도 필요했다"고 털어놨다.

감독으로서 '은퇴'를 하는 것이냐는 질문에는 "아직은 모르겠다.

아내와도 이야기하고 있다"며 "총감독을 하면서 1년의 시간적인 여유가 있을 텐데, 머리를 식히며 상황을 보려고 한다.

그동안 너무 앞만 보고 달렸다.

여유를 가질 시간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한발 물러서는 '만수' 유재학 감독 "숨 한 번 돌릴 때가 됐죠"
단순히 휴식만이 이유는 아니다.

유 감독은 "사실 우리 팀에서 이우석, 신민석, 서명진 같은 선수들이 주축이 될 텐데, 이 친구들이 내년 시즌이 끝나면 군대에 가야 한다.

그때 새 감독이 부임하면 팀을 꾸리기가 어렵다"며 "부임 첫해에 어려움을 겪으면 힘들 수 있다.

올 시즌에는 멤버가 괜찮으니 이때 신임 감독이 와서 잘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깊은 속내를 드러냈다.

KBL의 대표적인 명장으로 거듭난 그는 현대모비스에서 정규리그와 챔피언결정전에서 각각 6번씩 우승을 경험했다.

2012-2013, 2013-2014, 2014-2015시즌에는 KBL 최초로 챔프전 3연패를 일궈냈고, 지난해 감독 최초로 통산 700승(724승) 고지를 밟기도 했다.

유 감독은 현대모비스에서 감독으로 보낸 18년을 "꿈 같은 시간"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10살에 운동을 시작해서 올해 한국 나이로 60살이다.

50년 동안 농구만 했는데, 선수일 때도 좋았고, 연세대 코치를 할 때도 좋았고, 대우에서 코치할 때도 좋았다.

젊은 나이에 프로 감독이 돼 쓴맛도 봤지만, 현대모비스에 오면서 다 좋게 마무리가 됐다"고 돌아봤다.

이어 "아마 성적이 안 좋았으면 잘렸을 거다"라며 웃고는 "성적이 좋은 것도 있지만, 같이 일해주신 단장님들이 뒷바라지를 잘 해주셨다.

좋은 선수들도 있었고, 회사의 지원도 있었고, 좋은 코치들도 보좌를 해줬다.

나는 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는 챔피언결정전에서 3연패를 했을 때와 2006-2007시즌 첫 (통합) 우승을 했던 때를 꼽기도 했다.

한발 물러서는 '만수' 유재학 감독 "숨 한 번 돌릴 때가 됐죠"
2022-2023시즌부터는 새로운 역할을 맡게 될 유 감독은 "팬들의 응원 소리가 그리울 거다.

솔직히 상상이 잘 안 된다"면서도 "그래도 새로운 일에 적응해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유 감독은 "쉽지 않은 위치다.

'총감독', '고문'이라는 단어가 농구장에서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마땅히 붙일 말이 없으니 총감독이라는 직함을 쓴 건데, 사실 내가 특별하게 뭔가 할 수 있는 건 없다"면서 "그래도 코치진에 대한 지원은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자신의 뒤를 이어 팀을 이끌 후배들에게 '멘토' 역할을 하겠다는 의미다.

다만, 먼저 입을 열지는 않겠다고 강조했다.

유 감독은 "내가 말을 많이 하면, 조동현 감독이 방향성을 잃을 수 있다.

되도록 말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멘토 역할을 할 수 있다.

옆에만 있어도 든든한 존재가 되려고 한다"며 "코치진이 먼저 질문이 생겨 나를 찾을 수도 있다.

그때가 되면 이야기를 해주고 논의를 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선수들과도 한 걸음 멀어질 그는 "뒤에서 지켜보고만 있으면 입이 간지러워서 어떻게 참나 싶다"고 농담을 던졌다.

그러면서도 "시간 약속 지키는 것, 아침 식사를 다 같이 하는 것, 코트에서 집중력을 유지하는 것 등 현대모비스만의 문화가 있다.

자리가 잡혀 있어 한 번에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조동현 감독이 이를 잘 유지할 거로 생각한다.

선수들이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조 감독을 잘 따라주면 좋겠다"고 애정이 어린 당부를 덧붙였다.

한발 물러서는 '만수' 유재학 감독 "숨 한 번 돌릴 때가 됐죠"
유 감독은 마지막으로 그간 응원을 보내준 팬들을 떠올렸다.

그는 "긴 시간 동안 보내주신 응원과 사랑을 절대 잊지 않겠다.

그 덕분에 내가 롱런하고 오랫동안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다.

감사드린다"며 "코트를 떠나도 기억에 남는 농구인이 되고 싶다.

현대모비스도 앞으로 많이 사랑해주시면 좋겠다"고 인사를 건넸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