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A 혼다클래식서 생애 첫 승

악명높은 '베어트랩'서 승부수
50번째 대회 만에 첫 수확
최초·최연소 기록제조기
임성재가 50번째 도전 만에 거머쥔 첫 미국프로골프(PGA)투어 트로피를 들고 미소짓고 있다. 그는 2일(한국시간) 막을 내린 혼다클래식에서 최종합계 6언더파를 적어내며 1타 차 우승을 완성했다. 이번 우승으로 세계 랭킹 25위로 올라선 그는 다가오는 도쿄올림픽 골프의 강력한 금메달 후보로 떠올랐다. 임성재는 키 180㎝, 85㎏의 건장한 체격을 갖췄다. AFP연합뉴스

임성재가 50번째 도전 만에 거머쥔 첫 미국프로골프(PGA)투어 트로피를 들고 미소짓고 있다. 그는 2일(한국시간) 막을 내린 혼다클래식에서 최종합계 6언더파를 적어내며 1타 차 우승을 완성했다. 이번 우승으로 세계 랭킹 25위로 올라선 그는 다가오는 도쿄올림픽 골프의 강력한 금메달 후보로 떠올랐다. 임성재는 키 180㎝, 85㎏의 건장한 체격을 갖췄다. AFP연합뉴스

“이곳에선 승리 혹은 패배뿐.”

미국 플로리다주 미국프로골프(PGA)내셔널 챔피언스 코스(파70). 15번홀(파3)에 들어서면 이런 문구가 골퍼들을 맞이한다. 문구 아래는 이 코스를 재설계한 ‘황금 곰’ 잭 니클라우스(80·미국)의 서명이 함께 있다. 16번홀(파4), 17번홀(파3)까지 이어지는 ‘베어 트랩’의 시작이다. 니클라우스에 대한 헌정의 의미가 담겨 있지만 너무 어려워 ‘곰 잡는 덫’으로도 해석된다. 니클라우스는 “1000야드를 보낼 수 있는 골프공을 가져와도 베어 트랩 앞에선 소용없을 것”이라고 했다. 2년 전 타이거 우즈(44·미국)가 “구제란 없다”며 고개 숙인 곳도 이곳이다.

공포의 ‘베어 트랩’과 정면승부

외환위기 때 박세리처럼…우승 선물한 임성재 "국민에 힘 됐으면"

2일(한국시간) PGA투어 혼다클래식(총상금 700만달러) 최종 라운드. 15번홀 앞에 선 임성재(22)도 베어 트랩의 공포를 잘 알고 있었다. 전날 두 개의 보기를 베어 트랩에서 범한 터였다. 그는 평소 성공률이 50% 이하라고 판단되면 과감하게 포기할 줄 안다. 쌓아온 커리어도 ‘확률주의’ 성격 덕이었다. 그럼에도 타수를 2타나 잃었다. 베어 트랩은 무서웠다.

그는 그러나 작심한 듯 핀을 향해 샷을 했다. 지난해 이 대회에서 2라운드까지 우승을 다투다 3라운드에서 고꾸라졌던 그다. 다시 우승 기회가 오면 물러서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기회가 왔고, 임성재의 선택은 ‘올인’이었다.

임성재가 한참을 바라보던 공은 한 뼘 차이로 그린에 떨어진 후 홀 옆 2m 지점에 멈춰 섰다. 임성재는 이 버디를 앞세워 박차 오르더니 베어 트랩의 종점인 17번홀에서 버디를 추가하며 리더보드 상단 자리를 꿰찼다. 임성재는 “15번홀 버디가 나오면 우승 기회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두 개의 버디가 그를 정상으로 이끌었다. 그는 이날 열린 대회 최종 라운드에서 4언더파 66타를 쳤고, 최종 합계 6언더파 274타를 적어내며 선두 경쟁을 벌이던 매켄지 휴스(29·캐나다)를 1타 차로 따돌리고 우승을 차지했다. 휴스와 또 다른 경쟁자인 토미 플릿우드(29·영국)는 나란히 18번홀(파5)에서 이글을 잡아 전세를 뒤집으려 했다. 하지만 샷은 모두 물속으로 향했다.

‘49전 50기’로 꿈에 그리던 PGA 챔프에

2018~2019 PGA투어 신인왕을 차지하고도 우승이 없어 ‘무관의 신인왕’으로 불린 그였다. 이 우승으로 지난 아쉬움을 한 번에 씻어냈다. PGA투어 50개 대회(정식 데뷔 후 48개) 만에 이뤄낸 성과다. 한국 선수 중에선 최경주(50·8승) 양용은(48·2승) 배상문(34·2승) 노승열(29·1승) 김시우(24·2승) 강성훈(32·1승)에 이어 일곱 번째로 PGA투어 우승자 반열에 올랐다. 한국인 선수가 이 대회에서 우승한 건 2009년 양용은 이후 임성재가 11년 만이다. 임성재는 이번 우승으로 부와 명예를 손에 쥐었다. 우승상금 126만달러(약 15억2000만원)을 챙겨 시즌 상금 3위(322만468달러)로 도약했다. 34위인 현 세계 랭킹은 25위로 9계단 올라섰다.

임성재는 “공격적으로 친 것이 내 뜻대로 잘 갔다”고 말했다. 또 “지금 한국에선 많은 사람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힘들어하고 있다”며 “한국 선수로서 한국인 모두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소식을 전하게 돼 기쁘다”고도 했다.

손가락 휘도록 연습한 ‘될성부른 떡잎’

“올해 2승을 거두고 세계 랭킹 10위(현 34위)에 오를 것이다.” (폴 에이징어)

이 평가가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임성재는 ‘될성부른 떡잎’이었다.

1998년생인 그는 양용은, 강성훈과 같은 제주 출신이다. 6세 때부터 골프채를 휘둘렀다. 한라초(제주), 계광중(충남 천안), 천안고, 한국체육대를 거치면서 국가대표에 선발(2014년)되는 등 빠르게 성장했다.

미국 무대를 처음 노크한 게 2017년. “실패하더라도 큰물에서 놀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던 그였다. 데뷔 무대를 제패하는 사고를 친 뒤 ‘최초’ 수식어를 달고 다녔다. 2018 웹닷컴투어 최고 상인 ‘올해의 선수상’을 한국 선수 최초로 받았다. 웹닷컴에서는 역대 최연소 수상자라는 기록도 남겼다. 웹닷컴투어는 좁았다.

PGA 정규투어 입성 첫 시즌에 그는 한국인 최초, 아시아인 최초로 ‘신인상’을 받는 기염을 토했다. 그해 그는 루키 중 유일하게 페덱스컵 플레이오프 최종전에 진출했고, 프레지던츠컵에선 US오픈 챔피언인 게리 우들랜드(미국)를 4홀 차로 꺾는 이변을 연출해 팬들의 믿음에 보답했다.

이번 우승도 ‘예고된 결과’라는 평가다. 이번 대회에 앞서 12개 대회에 출전한 그는 딱 한 번 커트 탈락(제네시스인비테이셔널)을 빼고는 모두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