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여제’ 박인비(32)의 전성기는 2013년이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6승을 거뒀다. 그중 메이저 3승이 포함돼 있다. 한 해 4개 메이저를 제패하는 ‘캘린더 그랜드슬램’ 문턱까지 갔던 해다.

당시 박인비와 함께했던 게 캘러웨이 오디세이사에서 만든 ‘세이버투스(saber-tooth)’ 퍼터다. 현재는 단종된 모델. 세이버투스는 약 1만 년 전 멸종한 것으로 알려진 고양이과 맹수 ‘검치호(劍齒虎)’를 뜻한다. 헤드 모양이 검치호의 송곳니와 닮았다. 검치호는 주로 영화나 만화에서 두려움의 대상으로 등장한다. 이 퍼터는 박인비가 그해 메이저 3연승을 달성할 때 써 국내에서도 불티나게 팔렸다. 그린 위에서 세이버투스를 들고 퍼터를 홀 안에 꽂아 넣는 박인비의 위압감은 경쟁자에겐 검치호 이상이었다.

20승 잡고 올림픽 간다

올림픽 2연패 도전을 공식화한 박인비가 다시 선택한 퍼터는 세이버투스였다. 박인비는 이 퍼터와 함께 새해 첫 대회부터 ‘버디쇼’를 펼쳤다. 17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레이크부에나비스타의 포시즌 골프앤드스포츠클럽올랜도(파71·6645야드)에서 열린 LPGA투어 다이아몬드리조트챔피언스토너먼트(총상금 120만달러) 1라운드에서다.

박인비는 보기 없이 버디만 6개를 몰아쳤다. 단독 선두 재미동포 대니엘 강(8언더파·28)에게 2타 뒤진 공동 2위다. 평소 겸손이 몸에 밴 그조차도 “굉장히 좋았다”며 “오늘 라운드에 만족하고, 남은 세 라운드도 잘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준우승만 두 번 했던 박인비는 2018년 3월 뱅크오브호프파운더스컵 이후 1년10개월 만에 우승을 노린다. 우승하면 ‘아홉수 트랩’을 뚫고 LPGA투어 통산 20승을 달성하게 된다.

라운드 전체 퍼트 수는 25개에 불과했다. 77.7%(14/18)에 달하는 높은 그린적중률을 기록했기 때문에 더 빛나는 기록이다. 평균 드라이브 비거리는 221야드였으나 경기력에 거의 영향을 주지 못했다. 이날만큼은 박인비에게 ‘드라이버는 쇼, 퍼트는 돈’이 됐다.

그는 비시즌 때 아주 작은 변화를 줬다고 했다. 박인비는 “크게 바뀐 것은 없고 얼라인먼트만 약간 바꿨다”며 “그동안 왼쪽을 겨냥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오프시즌 때 알게 됐고 이 점을 약간 고쳤다”고 했다. 그는 또 “(얼라인먼트를 바꾸면서) 오른쪽으로 몇 번 빗나갔지만 차라리 이게 낫다”고 했다.

올림픽 국대 후보 김세영 공동 5위

도쿄올림픽 출전권은 6월 세계랭킹 기준으로 국가별 상위 2명이 얻는다. 15위 안에 같은 국가 선수가 3명 이상 있으면 해당 국가는 최대 4명을 올림픽에 출전시킬 수 있다. 현재 세계랭킹 16위인 박인비 앞에는 고진영(25)과 박성현(27), 김세영(27), ‘핫식스’ 이정은(24), 김효주(25)가 있다. 하루라도 빨리 세계랭킹을 끌어올려야 하는 게 박인비로선 마음이 급한 형편이다. 박인비가 LPGA 개막전부터 서둘러 시즌을 시작한 건 4년 만이다.

박인비보다 세계랭킹이 높은 선수 중 유일하게 출전한 김세영은 버디만 5개를 잡아 5타를 줄이며 공동 5위에 이름을 올렸다. 양희영(31)이 3언더파 68타로 공동 11위, 허미정(31)은 2언더파 69타로 공동 16위다.

전인지(26)는 이븐파로 공동 22위에 있고, ‘디펜딩 챔피언’ 지은희(34)는 3오버파 74타로 부진해 26명 중 25위에 그쳤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