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훈의 골프확대경] '스피스 친구' 토머스 대신 '토머스 친구' 스피스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저스틴 토머스(미국)에게는 늘 조던 스피스(미국)의 '절친'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1993년 동갑내기인 스피스와 토머스는 고교 시절부터 전국 무대에서 경쟁하던 사이였다.

그렇지만 승자는 주로 스피스였다.

대학 때도 토머스에게 스피스는 넘기 힘든 벽이었다.

토머스는 앨라배마대학에 다닐 때 미국대학골프 결승전에서 스피스가 이끄는 텍사스대학에 진 걸 '가장 가슴 아픈 패배'라고 꼽는다.

프로 무대에서도 스피스는 토머스를 한참 앞질렀다.

2013년 PGA투어에 뛰어든 스피스는 존 디어 클래식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고, 2015년에는 US오픈과 마스터스를 포함해 5승을 쓸어 담아 세계랭킹 1위까지 꿰찼다.

2017년 디오픈 제패까지 스피스는 메이저대회 3승을 비롯해 11승을 따내 '차세대 골프 황제'라는 찬사를 받았다.

PGA투어에 직행한 스피스와 달리 토머스는 2부 투어를 거쳤다.

2015년 가을에야 PGA투어 첫 우승을 이뤘다.

스피스는 이미 우승 트로피를 8개나 모았을 때였다.

2016년 토머스는 2승을 달성했지만 둘 다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가을 시리즈에서 거둔 수확이었다.

당시 스피스의 8승에는 메이저대회 2승과 투어챔피언십에 토너먼트 오브 챔피언스 등 특급 대회가 즐비했다.

토머스가 투어에서 막 뜨려는 그때, 스피스는 그야말로 슈퍼스타의 반열에 올라 있었다.

2017년 토머스가 특급 대회로 꼽는 토너먼트 오브 챔피언스에서 우승했을 때 미국 언론은 그를 '스피스의 친구'라고 표현했다.

아직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토머스를 설명하는 데는 스타 플레이어 스피스의 친구라는 사실만큼 적당한 게 없었다.

PGA투어에서 토머스의 존재감은 스피스의 그림자나 다름없었다.

이때 토머스는 심지어 "스피스의 조언을 받았냐"는 다소 모욕적인 질문도 받았다.

'스피스 친구'의 수모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2017년 더CJ컵에서 우승한 토머스에게 기자가 "내년엔 친구 스피스와 출전할 의향이 없냐"고 물었다.

그는 "그가 뭘 하든 나하고는 상관없다"고 다소 짜증 섞인 답변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제 '스피스 친구' 토머스가 아니라, '토머스 친구' 스피스라는 게 더 어울리게 됐다.

지난 6일(한국시간) 센트리 토너먼트 오브 챔피언스에서 우승한 토머스는 통산 12승으로 스피스의 11승을 추월했다.

만 27세가 되기 전에 PGA투어 통산 12승 고지에 오른 선수는 타이거 우즈, 샘 스니드, 잭 니클라우스(이상 미국)에 이어 토머스가 네 번째다.

스피스가 오르지 못한 경지를 토머스가 먼저 오른 것이다.

토머스가 스피스를 추월한 건 2016년부터 올해까지 3년 동안 11승을 쓸어 담은 덕이다.

같은 기간 스피스는 3승에 그쳤다.

세계랭킹도 극적으로 뒤집어졌다.

스피스가 처음 세계랭킹 1위에 올랐던 2015년 가을에 토머스는 세계랭킹 75위였다.

지금은 토머스가 4위, 스피스는 43위다.

스피스가 프로 경력 초반에 폭죽처럼 화려한 불꽃을 피워올렸다면, 토머스는 굵은 장작에 비로소 불길이 붙어 오른 형국이다.

토머스는 "앞서가는 친구가 부러웠다"면서 "내가 더 나은 선수가 되도록 이끌어준 고마운 존재"라고 자신의 성공에는 스피스의 도움이 컸다는 사실을 털어놓기도 한다.

실제로 둘은 경기장 안팎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한다.

그리고 둘의 경쟁은 끝난 게 아니다.

지금은 토머스의 활약이 눈부시지만, 5년 만에 메이저대회 3승을 포함해 11승을 올린 스피스의 재능과 감각, 열정은 분명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스피스가 얼마든지 다시 토머스를 앞지를 수 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게다가 둘은 아직 이제 고작 27살이다.

앞으로 10년 이상 코스에서 경쟁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지난해 하반기부터 스피스의 경기력이 서서히 살아나고 있어 2020년 PGA투어는 두 동갑 친구의 경쟁으로 더 흥미로워질 전망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