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도 안 들어오는 텅 빈 5만석…황량한 레바논전
레바논과의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4차전이 열린 레바논 베이루트의 스포츠시티 스타디움은 해도 해도 너무한 곳이었다.

14일 취재진은 레바논전 시작 3시간 전 스포츠시티 스타디움에 도착했다.

경기장 주변엔 장갑차들과 군용 차량이 10여대 서 있어 얼핏 봐서는 경기장이 아닌 군부대로 보였다.

현지 안내를 맡은 선교사 A씨는 "이곳은 사실상 스포츠 경기장이 아닌 군부대로 기능하는 곳"이라면서 "언제나 군 차량과 병사들이 이곳에 주둔해있다"고 설명했다.

베이루트에서는 왓츠앱 등 메신저 프로그램에 대한 정부의 세금 계획에 대한 반발로 시작된 반정부 시위가 한 달째 이어지고 있다.

밤이면 주요 도로 곳곳에서 시위대가 타이어를 태우는 냄새가 진동한다.

12일에는 군 총격으로 사망자까지 발생했다.

A씨는 "레바논은 정치권의 무능 탓에 정치, 경제적으로 밑바닥에 다다른 상황"이라고 말했다.

스포츠시티 스타디움은 '레바논의 몰락'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4만9천500여 관중석은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았는지 완전히 낡아 있었다.

기자들이 앉을 자리에 있는 콘센트에서는 전기가 안 들어왔다.

기사 작성을 할 기자실에도 취재진이 전기 이용이 가능한 콘센트는 한 개뿐이었다.

한국 취재진은 멀티탭 2개를 활용해 겨우 업무를 볼 수 있었다.

화장실에는 악취가 진동했고, 그라운드에서 지하의 공동취재구역으로 향하는 철제 나선형 계단은 삐걱거려 언제 무너질지 불안할 정도였다.

레바논의 경제적 사정이 지금보다는 나았다는 2011년 브라질 월드컵 3차 예선 맞대결 때 이곳을 방문한 적이 있다는 한 관계자는 "마치 몰락한 문명의 유적 같다.

영화 인디애나 존스를 찍고 있는 기분이다"라며 혀를 내둘렀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축구 대표팀은 지난 '깜깜이 평양 원정'에 이어 2경기 연속으로 무관중 경기를 치른다.

수만 관중이 경기 뒤 과격 시위대로 변할 것을 우려한 레바논축구협회의 제안으로 경기 시작 4시간을 앞두고 전격적으로 무관중 경기가 결정됐다.

대표팀은 황량한 사막 같은 경기장에서 관중도 없이 2차 예선 성패의 7할을 좌우할 일전을 펼치게 됐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