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을 버렸어요. 즐기자고만 생각했는데….”박채윤(25)은 ‘우보천리(牛步千里)’란 말을 좋아한다. 성격이 느긋하면서도 꼼꼼하다. 천천히 걸어도 끝까지 목표를 이뤄낸다는 이 말에 딱 들어맞는다. 급히 가지 않고 다져가는 꾸준함이 장기다. 이번 시즌 상반기만 봐도 그렇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서 단 한 차례 우승이 없었다. 그럼에도 상반기 내내 줄곧 대상 포인트 1~2위를 달렸다. 시즌 초부터 5월까지 11개 대회에 출전해 ‘톱10’에 아홉 차례 들어간 덕분이다. 최혜진(20)과 조정민(25), 이다연(22) 등 다승자들이 배출되면서 주요 부문 경쟁에서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지만 눈치 보지 않았다. “그 사이 멘탈과 스윙을 다졌다. 포기하지 않고 우직하게 가면 되는 일”이라고 그는 늘 말했다.우직한 길 천천히 걷는 ‘착한 거북이’박채윤이 해냈다. 우승 상금 3억5000만원, 대상 포인트 70점이 걸린 메이저 대회에서 6타 차를 뛰어넘는 대역전 드라마를 썼다. 1일 막을 내린 하반기 첫 메이저 대회 한화클래식(총상금 14억원)이 그 무대다. 그는 이날 강원 춘천 제이드팰리스GC(파72·6737야드)에서 열린 최종 라운드에서 버디 4개와 보기 1개를 묶어 69타를 쳤다. 최종합계 5언더파 283타를 적어내며 2위 그룹을 한 타 차로 따돌리고 ‘메이저 퀸’으로 거듭났다. 105개 경기 만에 지난해 맥콜용평리조트에서 생애 첫 우승을 신고한 이래 다시 32개 대회(427일) 만에 KLPGA투어 정상에 섰다. 개인 통산 2승이자 이번 시즌 첫 우승이다. 지난주 하이원리조트 여자오픈에서 준우승한 아쉬움도 씻게 됐다. 박채윤은 “16번홀 버디 할 때까지만 해도 1위는 7언더 정도일 거라고 혼자 생각할 만큼 우승은 꿈꾸지 않았다. 내 순위를 전혀 모르고 친 게 결과적으로 도움이 된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이번 우승으로 박채윤은 대상 포인트 374점으로 1위에 올라섰다. 상금 순위는 13위(약 2억9836만원)에서 2위(6억4836만원)로 11계단 뛰어올랐다. 이 대회 전까지 1위를 달리던 ‘톱10 피니시율’(57.8947%)은 한층 굳건히 했다.승부 가른 20㎝ ‘귀신 러프’발목까지 잠기는 ‘지옥러프’가 승부를 갈랐다. 러프 길이가 20㎝에 육박해 페어웨이를 지키지 않으면 버디를 잡기는커녕 타수를 지키는 것도 여의치 않았다. 언더파를 기록한 선수가 첫날 21명, 둘째날 18명, 셋째날 13명에 이어 최종 라운드를 마치고는 11명으로 쪼그라들었다.이날 2타차 단독 선두로 최종 라운드를 시작해 우승 가능성이 높았던 넬리 코르다(미국)도 ‘희생자’ 중 한 명. 그는 이날만 4타를 잃어 우승과 멀어졌다. 티샷이 덤불로 들어간 6번홀(파4)에서 ‘언플레이어블 볼’을 선언한 영향으로 더블보기를 범한 게 컸다. 15번홀(파3)에서 깃대를 맞힐 정도로 정교한 티샷을 한 그는 버디 1개를 잡아내 재역전의 발판을 놓는 듯했다. 하지만 17번홀(파4) 티샷이 우측 러프로 들어가면서 세컨드 샷이 그린을 놓쳤고, 결국 보기를 내주면서 먼저 선두로 경기를 끝낸 박채윤과의 연장 가능성이 사실상 날아갔다.코르다는 최종합계 4언더파를 적어내며 이정민(27), 김소이(25)와 함께 공동 2위로 대회를 마쳤다. 이정민은 지난해 9월 이데일리 대회 이후 1년여 만에 다시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부활의 발판을 다시 한 번 다졌다. 최혜진(20)은 이날 두 타를 줄이며 뒷심을 발휘했지만 3언더파 단독 5위에 만족해야 했다. 김효주(25)는 이날만 4타를 잃어 1언더파 공동 8위로 대회를 마쳤다. ‘루키 돌풍’을 기대하게 했던 이가영(20)은 3타를 잃는 바람에 공동 6위로 뒷걸음질 쳤다.한화클래식은 1990년 6월 열린 서울여자오픈골프선수권대회가 전신이다. KLPGA투어 최초의 국제 대회다. 오늘날 한국 여자 골프가 ‘글로벌 최강’으로 도약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다. 그 기여도와 역사를 인정받아 2017년 메이저 대회로 승격됐다. 스폰서는 (주)한화에서 태양광셀 세계 1위 기업 한화큐셀로 올해 바뀌었다. 11명의 선수를 후원하는 한화큐셀은 올해 한국, 미국, 일본 3개국 투어에서 5승을 합작했다.춘천=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
“철저히 준비하면서 때를 기다리는 중이다.”국가대표 출신 루키 이가영(20·사진)의 말이다. 30일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시즌 세 번째 메이저 대회인 한화클래식(총상금 14억원) 2라운드가 끝난 뒤 “신인상 경쟁자들의 우승 소식이 자극이 됐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에 앞서 부러운 맘이 더 컸다”며 이같이 답했다.이가영은 2016~2017년 국가대표를 거쳐 프로로 전향했다. 데뷔 첫해인 2018년 드림투어에서 상금 랭킹 3위에 오르며 이번 시즌 정규투어에 입성했다. 올 시즌 4승을 수확한 최혜진(20)과 아마추어 시절 경쟁 구도를 형성했을 정도의 실력파였지만 이번 시즌 상금 순위 45위(약 8849만원), 신인상 포인트 6위(937점)에 머물러 있다.그런 그가 ‘루키 돌풍’에 합류했다. 러프 길이만 20㎝에 달해 ‘지옥 러프’로 악명 높은 강원 춘천 제이드팰리스GC(파72·6737야드)가 무대다. 이날 버디 3개와 보기 1개를 묶어 2언더파 70타를 쳤다. 중간합계 5언더파 139타로 김소이(25)와 함께 리더보드 최상단에 이름을 올렸다. 전날에도 3언더파를 쳐 공동 2위에 자리하는 등 이틀 연속 선두권을 놓치지 않고 있다.이가영은 “남은 이틀간 페어웨이 적중률을 높이는 데 신경 쓰겠다”며 “우승보다는 내 게임에 집중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번 시즌 그의 목표는 신인상과 상금 순위 30위 이내 진입이다. 신인상 포인트 1위(1685점) 조아연(19)과는 아직 격차가 다소 크다. 그러나 이 대회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신인상 포인트 310점을 거머쥔다면 추격의 고삐를 죌 수 있다는 평가다.이가영과 어깨를 나란히 한 김소이는 이날 이글 1개와 버디 3개를 잡고 보기는 2개를 내줬다. 2013년 정규투어에 데뷔한 이래 6년 만에 생애 첫 우승 도전이다. ‘매치 퀸’ 김지현(28)과 최혜용(29)은 각각 4개 홀, 3개 홀을 남겨둔 채 4언더파 공동 2위를 기록했다. 5개 홀을 남겨둔 김효주(24)도 4언더파를 적어냈다. 이번 시즌의 루키 돌풍 주역 중 한 명인 이승연(21)은 3언더파 공동 6위로 2라운드를 마쳤다. 일몰로 끝내지 못한 경기는 3라운드 시작 전 치를 예정이다. 전날 악천후에 이어 이날 오전엔 짙은 안개 때문에 경기가 1시간30분가량 지연된 영향이다.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
“비가 와서 경기가 중단돼 흐름이 끊긴 측면이 있다.”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시즌 세 번째 메이저대회인 한화클래식(총상금 14억원)에서 루키 박현경(20)이 전날 1라운드를 마치고 한 푸념이다. 샷감이 괜찮았는데 악천후로 경기가 지연된 게 아쉽다는 얘기였다. 1라운드엔 번개를 동반한 악천후로, 2라운드엔 짙은 안개로 경기가 또 한 차례 지연됐다. 아침 일찍부터 안개가 자욱해 전날 경기를 끝내지 못한 선수들이 잔여 경기를 당초 일정보다 1시간30분 늦게 시작했다. 2라운드 출발도 그만큼 늦어졌다.불규칙한 날씨는 베테랑과 루키를 가리지 않고 선수들을 괴롭혔다. 전날 3언더파 공동 2위였던 루키 박현경은 30일 오후 4시30분 현재 5번홀(파3)까지 보기만 2개를 내줘 공동 15위로 순위가 13계단 내려갔다. 2라운드도 일몰 때문에 많은 선수가 경기를 다 마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KLPGA협회 설명이다.올 시즌 2승을 올린 조정민(25)도 흔들렸다. 커트 탈락을 걱정할 처지다. 이날 버디 1개와 보기 4개를 묶어 3오버파 75타로 2라운드를 마쳤다. 중간합계 4오버파 148타로 공동 64위에 머물렀다. 이번 대회 예상 커트 기준은 3오버파다. 반면 이번 시즌 ‘루키 돌풍’의 주역 중 1명인 이승연(21)은 이날 1타를 줄여 3언더파 공동 4위로 2라운드를 마쳤다.‘매치 퀸’ 김지현(28)은 5번홀(파3)까지 버디만 2개를 골라내 4언더파 3위를 달리고 있다. 오지현(23)도 모처럼 상승세다. 후반 10번홀(파4)에서 출발해 15번홀(파3)까지 버디 2개와 보기 1개를 묶어 1타를 줄였다. 중간합계 3언더파 공동 4위를 기록 중이다. 두 선수 모두 리더보드 상단에 포진해 있어 ‘지현 시대’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올릴지 관심이다.리더보드 최상단은 김소이(25)가 꿰찼다. 이글 1개와 버디 3개를 잡고 보기는 1개만 내줬다. 중간합계 6언더파 140타로 1위를 달리고 있다. 후반 9개 홀만 지금 같은 컨디션을 유지하면 2013년 정규투어 데뷔 이래 ‘무관의 한’을 떨쳐내고 생애 첫 우승을 거머쥘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역시 루키인 이가영(20·사진)이 이날만 2타를 추가로 덜어내 선두권으로 뛰어올라 루키 돌풍을 예고했다.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