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氣죽인 '메이저 사냥꾼'…켑카, 우즈 보란듯 폭풍 버디쇼
“오늘도 머릿속이 마치 정전된 듯 쳤는데, 경기가 잘 풀렸네요.”

프로선수, 그중에서도 ‘스타’로 분류되는 최정상급 선수들은 경기에 몰두할 때 초인적인 집중력을 발휘한다. ‘무념무상’ ‘무아지경’에 이르는 단계를 일컫는 이른바 ‘존(zone)’에 진입한다고 한다. 메이저대회에만 출전하면 존에 자주 드나드는 선수가 있다. ‘메이저 사냥꾼’ 브룩스 켑카(미국)다. 그는 지난해 10월 한국경제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공을 치고, 공을 찾고, 다시 공을 친다”며 “라운드 내내 내가 하는 생각은 이것이 전부”라고 했다.

17일(한국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남자골프 메이저대회 PGA챔피언십 1라운드는 켑카의 집중을 방해할 요소로 가득했다. 난코스로 악명 높은 파밍데일의 베스페이지스테이트파크 블랙코스(파70·7459야드)에서, 하필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미국)와 한 조로 묶였다. 우즈를 향한 갤러리들의 일방적인 응원은 물론 마스터스를 제패한 ‘황제’의 위압감을 이겨내야 했다. 이 대회에서만 5승을 거뒀고 이곳에서 열린 2002년 US오픈에서도 우승을 차지한 경험이 있는 우즈다.

결과는 켑카의 완승이었다. 그는 이날 버디만 7개를 기록, 7언더파 63타의 스코어카드를 제출했다. 그는 뉴질랜드 동포 대니 리(한국명 이진명·6언더파)를 1타 차로 따돌리고 대회 2년 연속 우승을 향한 첫 단추를 잘 끼웠다. 63타는 이 코스의 최저타 신기록이다. 2오버파(공동 51위)를 친 우즈를 9타 차로 밀어냈다.

켑카는 “우즈가 (마스터스가 열린) 오거스타에서 우승한 건 매우 훌륭한 일이지만 우리는 이제 새로운 경기 주간에 들어섰다”며 “나는 지난해 이 대회에서 우승했고 오늘도 좋은 경기를 했다”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또 “주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잘 신경쓰지 않는다”며 “뉴욕에 있는 모두가 그(우즈)를 응원하겠지만 계속해서 싸워 이겨내야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미친 코스’로 불리는 베스페이지골프장의 블랙코스에서 선수들이 고전할 것으로 예상했다. 2002년 이곳에서 열린 US오픈에서 언더파를 적어낸 선수는 우승을 차지한 우즈(3언더파)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주최 측은 코스를 2002년보다 245야드 더 길게 세팅했다. 하지만 켑카는 첫 홀인 10번홀(파4)부터 버디를 낚아채더니 이후 6개의 버디를 추가하며 코스를 지배했다.

지난 13일 끝난 미국프로골프(PGA)투어 AT&T바이런넬슨 우승자 강성훈(32)이 2언더파 공동 4위로 1라운드를 마쳤다. 김시우도 1언더파 공동 9위로 산뜻하게 출발했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