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사진=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생존 투쟁은 진화를 낳는다는 말 들어보셨죠. 비거리가 짧은 일명 ‘짤순이’들이 우드샷에 강하거나, 아이언샷 정확도가 낮은 골퍼들이 그린 주변에서 공을 홀에 착착 붙이는 놀라운 쇼트게임 ‘신공’을 펼쳐 보이는 일이 꽤 많은 걸 보면 틀리지 않은 말인 듯합니다.

허리 부상으로 터득한 비기(秘技)

미국에서 어린 시절부터 골프를 배우다 보니 잔디 골프장을 좀 더 일찍 접했고, 남학생 골퍼들과 놀이처럼 내기 골프를 하면서 교과서에 없는 다양한 샷 메이킹을 시도해볼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습니다. OB(아웃오브바운즈)를 내지 않는 정석 샷에 집중하느라 트러블 샷을 자주 접하기 힘든 한국과는 사뭇 다른 환경 덕분이었죠. 하지만 제 문제 해결 능력의 대부분은 허리 부상으로 신음하던 ‘암흑기’에 완성됐다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합니다. 그중 하나가 길고 질긴 러프에서의 하이브리드(유틸리티)샷입니다. 얼마 전 한 국내 메이저대회 방송 해설을 맡았는데요. 그때 깜짝 놀란 게 하나 있었습니다. 대개 메이저대회는 러프를 길게 기르고 페어웨이를 좁게 만들죠. 샷 능력을 변별해 좋은 샷과 나쁜 샷에 대한 ‘보상과 징벌’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러프에 공을 떨군 선수 대다수가 제가 알고 있는 하이브리드 러프 탈출 샷을 하지 않는 겁니다. 아이언으로 공을 빼내려다 코앞의 더 깊은 러프로 공을 밀어넣고 고개를 떨구는 후배들을 보면서 ‘다양한 상황 대처능력’은 골프를 접하고 배우는 환경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다시 한번 절감했습니다.

창의적 샷 메이킹, 골프의 또 다른 세계

하이브리드로 깊은 러프에서 벗어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고수의 반열에 들어가기 위해 반드시 알아둬야 할 기술이자 골프의 또 다른 묘미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오히려 손과 팔에 ‘힘이 꽉!’ 들어간 아마추어 골퍼들이 하기도 쉽습니다. 간단히 말해 벙커샷처럼 스탠스를 열고(사진①) 그립을 꽉 잡고(평소 그립 강도보다 좀 더 세게) 클럽을 평소보다 바깥쪽으로 들어올려 백스윙한 뒤(사진②) 공을 가파르게 내려찍는것입니다. 강력한 다운블로 커트샷(깎아 치기)이라고 보면 틀리지 않습니다.

주의해야 할 것은 릴리즈가 없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사진③처럼 클럽 페이스를 그대로 타깃 방향을 바라보도록 밀어주는 게 중요합니다. 그러지 않고 사진④처럼 일반 스윙같이 릴리즈를 하면서 피니시하면 러프에 클럽이 감겨 거리가 확 줄고 방향도 흐트러집니다. 클럽 페이스를 컨트롤해야 하므로 릴리즈가 사실은 잘 되지도 않을 겁니다.

하이브리드를 쓰지 않고 아이언을 강력하게 잘 쓰는 미국 투어 선수도 많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그립을 잡는 악력과 몸통 회전력이 약한 아마추어 골퍼들은 힘 외에도 클럽의 고유한 기능을 최대한 끄집어내 도움을 받는 게 현명합니다. 아이언으로 한두 클럽 더 긴 채를 잡고 강하게 찍어 친다 해도 목표한 거리의 3분의 2도 못 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130m에서 평소 8번을 쳤다면, 긴 러프에선 잔디의 브레이크 작용을 감안해 6번, 7번을 잡겠죠. 하지만 러프의 감속 기능은 생각보다 강합니다. 결국 공은 많이 가야 100m 안팎일 게 뻔합니다. 대개는 60~70m로 거리가 쪼그라들고요.

대학(애리조나주립대) 골프팀에서 남학생들이 자주 구사하던 하이브리드 러프샷을 처음 시도할 때 저도 ‘그게 될까’ 싶었습니다. 하지만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은 뒤부터는 ‘이렇게 좋을 수가’로 바뀌게 됐죠.

아침저녁 일교차가 큰 10월 말입니다. 타수 줄이기에 매달리는 ‘팍팍한 싱글’보다 다양한 샷을 구사해 즐길 줄 아는 ‘창의적인 싱글’에 한번 도전해보세요. 험한 곳에 공이 떨어져도 짜증 대신 기분 좋은 호기심이 발동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골프의 새로운 맛은 덤입니다.

박지은 < 골프칼럼니스트·前 LPGA 투어 프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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